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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아빠 Apr 17. 2022

IKEA가 본드를 팔지 않는 이유

futurama

이케아에는 가구 조립에 필요한 거의 모든 공구와 자재를 판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정작 가구 조립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팔지 않음을 알게 된다.

바로 목공 본드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컵라면 마냥.

잠깐만 뚝딱거리면 금새 조립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가구를 사 들고 왔는데,

막상 조립해 보면 진땀을 빼며 밤을 새워야 한다.

여기저기 널려진 박스와 부품들 사이에서 가구를 조립하다보면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어느 순간 이케아에선 왜 본드를 팔지 않는지 깨달았다.

이케아가 본드를 팔지 않는건 아마도 이케아 가구의 최종 생산자가 고객이기 때문이다.

1. 고객에게 본드칠이라는 더러운 경험을 안겨주지 않아도 된다.

2. 고객이 자기가 묻힌 본드를 지우거나, 지워지지 않는 본드흔적 때문에 더럽혀진 가구를 볼 때마다 화가 나서 이케아 욕을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끝판왕으로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딱딱하게 굳어진 본드를 떼낼때 필름껍질이 벗겨져 톱밥가루를 뭉쳐 만든 흉측한 MDF부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이 역시 예방할 수 있다.

3. 본드를 발라서 가구가  튼튼해지면, 각각 따로 판매 중인 파츠를 재구매할 일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목공으로 무언갈 만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무 사이에 발랐을 때 목공 본드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접속 부위에 목공 본드를 한두 방울만 바르는 것만으로, 집어던져도 안 부서질 내구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이 역시 던져 본 사람은 알것이다.

접속부위에 본드를 바른 가구를 던져보면 부서지는 것은 접속 부위가 아닌 다른 쪽이다.

나는 집에 강도와 용도별로 세가지 종류의 목공 본드가 있다.

하지만 이케아 가구에는 한 번도 발라본 적이 없다.

조립을 할 때마다 생각은 한다.'본드를 바르면 좋을텐데..'

고작 몇 걸을 걸어가 공구함을 열고 목공풀을 꺼내는 간단한 일을 끝내 행하지 않는다.

광기어린 눈빛으로 육각볼트를 죄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내가 왜 본드를 가지러 가지 않는지 그 이유를 궁리해 볼 따름이다.

1. 이케아 가구는 본드를 바르지 않고 조립해도 충분히 화가 나기 때문이다.

2. 이 이케아 가구는 지금 당장 필요해서 산 것이거나, 필요하지 않은데 산 것이라 빨리 조립해서 치우고 싶기 때문이다.

3. 부서지면 그냥 통째로 버리거나 파츠를 사러가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분기마다 이케아에 가는 것이 즐겁다.

내게 이케아는 어른의 놀이동산과 같다.

아이들이 놀이동산에서 거울의 방이나 귀신의 집에 들어가듯이 나는 쇼룸을 헤맨다.

롤러코스터 의자대신 소파나 의자에 몸을 던진다.

멋지게 꾸며진 쇼룸을 돌아다니며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주택에서 사는 날, 그곳에 놓을 물건들과 공간들도 상상하거나

사지도 않을 물건을 품평하거나 필요는 없지만 너무 싸서, 왠지 사면 이득일 것만 같은(하지만 사면 세 달쯤 뒤에 폐기할) 초저가 가구를 보며 살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즐겁다.

그 짓이 조금 지칠 쯤이면 나타나는 푸드코트에서 북유럽에서 군생활하면 먹을법한 돈가스를 맛보는 것도 좋고 4,900원짜리 토마토 9파스타 속에서 연어 조각을 몇 점을 발견할 때면 희열을 느낀다.

가끔은 이케아 패밀리 가입만 되어 있으면 주는 공짜커피를 받게 되면, 맛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은 좋아진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 또 푸드코트가 있다.

게임으로 치면 보너스 스테이지나 미니게임과 같다.

그곳에선 맛은  그저 그렇지만  천 원밖에 하지 않아서 사 먹으면 이득을 본 듯 기분 좋은데 받아 들어보면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빵보다 훨씬 긴 소세지덕분에 왠지 따블로 이득인것만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핫도그.

종이 맛이 나지만 그래서 왠지 북유럽 감성이 드는 마르게리따.

맥도널드보다 더 저렴한 가격의 소프트콘 따위를 먹는 것도 기분이 좋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 옆의 공산품 판매코너에서 몇달뒤 두꺼운 얼음과 함께 냉동고 한켠에서 발굴될 핀란드 음식을 주섬주섬 담으면 핀란드의 기념품 가게에 온 기분마저 느껴진다.

결국 이케아가 내게 파는 것은 가구가 아니다.

일련의 경험이다.

경험과 모던한 가구나 주방용품 따위, 혹은 잘 구성된 그것들의 합을 구경하는 것이야 말로 이케아가 파는 것이고, 가구란 그저 '이케아 방문'에 따른 기념품에 불과하다.


아..또 하나.

여유분 목심이나 나사를 단 한 개도 더 주지 않는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다가

실수로 나사를 하나나 두 개쯤 잃어버리게 되면

지독한 구두쇠였다는 잉바르 캄프라드는 내게 준엄한 가르침을 준다.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야!

목심 값 1전, 나사값 1원도 아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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