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분실이 일상일지라도...’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좀처럼 마음이 달래지질 않았다.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 요즘 들어 자꾸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내 주변에 블랙홀이라도 있는 걸까. 분실하는 물건도 각양각색이다. 볼펜, 노트처럼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지갑, 핸드폰 등 값이 나가거나 소중한 물건들까지.
어떤 날은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준 음식을 버스에 놓고 내리는가 하면,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사다 준 카디건을 식당에 벗어놓은 채 그냥 오기도 했다. 물론 처음에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분실이 반복되자 갈수록 의기소침해졌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바쁜 하루를 보냈기에 특별한 저녁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었다. 뭘 먹을까 고민을 하다 망원시장을 찾았다. 곳곳에 맛집들이 포진해 있어서인지,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이 활기찼다. 나도 덩달아 힘찬 발걸음으로 유명한 수제 돈가스집과 고로케 가게를 차례로 찾았다. 따끈하고 맛있는 음식을 하나둘 포장하니 어느새 두 손이 묵직해졌다. 덕분에 오늘 저녁은 입이 즐거우리라 기대하며,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드디어 집에 도착해 바삭한 고로케를 맛보려는데 이게 웬일!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그 고로케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설마 또 잃어버린 거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포장해온 음식 봉지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고로케만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확인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린 거지? 정신을 집중해 고로케를 사던 순간을 되짚어보았다. 버스를 타기 전에 고로케가 담긴 봉지를 본 건 분명한데 그 후의 일은 암전. 아무래도 버스에 그냥 놓고 내린 모양이었다. 버스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고로케 봉지를 떠올리니, 내 마음도 함께 버려진 듯 울적해졌다.
이번 분실은 파장이 컸다. 하다하다 이제 고로케까지 잃어버리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니 내 자신이 너무 못나 보였다. 이 정도면 건망증 증세가 너무 심각한 것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특별한 저녁을 보내리란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저녁 내내 우울한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늘 그렇다. 크기가 작든 크든, 가치가 있든 없든 잃는다는 건 언제나 마음을 쓰리게 만드는 것 같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이번에는 영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로케뿐 아니라 이전에 잃어버린 것들도 다시 떠올랐다. 분실을 반복하는 나를 자책하다 어느새 밤이 되었고, 결국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첫 반응이 똑같았다.
“또 잃어버렸다고?”
그러고 나선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말들을 이어나갔다.
친구 하나는 “돈가스를 안 잃어버린 게 어디야”라며 나를 웃게 했고, 또 한 명은 “고깟 고로케 하나로 뭘 그래. 내일 또 사 먹으면 되지”라고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중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다름 아닌 ‘전부 잃어버리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한 친구의 의도는 이러했다.
“물건은 잘 잃어버리면서, 그 기억은 왜 안 잃어버리니. 그냥 잃어버린 건 다 잊어버려. 한번 지나간 일은 이제 생각하지 마!”
분실을 잊어버리라는 것... 묘한 위안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잃어버린 것에 너무 마음을 쓰다 보니, 더 많은 것을 잃고 있었달까. 어차피 잃어버린 고로케는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번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그러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두 가지인 것 같다. 나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 그리고 내일 사 먹을 고로케는 잃어버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