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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Kyron Oct 27. 2021

꿈 깨

꿈 꾸는 게 어때서!

“꿈 깨”


용재의 어이없다는 말투가 내 찬란한 미래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너한테만 특별히 내 기가 막힌 사업 아이디어를 알려주려고 했는데, 너만 아쉬운 거지 뭐. 용재는 헛웃음을 띄며 ‘사업하다 빚쟁이 되지 말고 그냥 월급쟁이나 해.’라는 냉정한 말로 내 입을 가로막았다.


“무슨 꿈도 못 꾸냐?”


아직 시작도 해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안 될 거라며 태클을 거는 용재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어 날카롭게 대꾸해버렸다. 나름 믿을만한 놈이라고 생각해서 큰 결심하고 알려준 건데…


용재는 어릴 적부터 특출나진 않았지만 모든 방면에서 평균 이상을 해내는 소위 ‘제네럴리스트’였다. 반에서는 줄곧 상위권이지만 전교에서는 20~30 등을 전전하는 뛰어난 범재라고 해야 할까? 범재란 말이 이미 평범하다는 걸 의미하고 있지만, 용재는 평범한 놈들 중에서는 제일 잘나갔기 때문에 뛰어난 범재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알맞은 표현인 거 같다.

여하튼 항상 천재라는 유리천장 바로 아래에서 살아온 범재라 그런지 용재는 세상 일에 있어서 시니컬했고, 모든 일에서 최대한 현실적인 결과를 계산해내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용재는 스타트업이나 유튜버 같은 모 아니면 도의 결과가 나오는 것에는 일체 관심을 주지 않고, 공무원이나 사기업 월급쟁이처럼 적어도 개, 걸 정도는 계속 나올 만한 일들에 주목했다. 대학 입시에서도 경영학과를 노리기보단 인문계열에 지원해서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이수할 계획을 짜던 놈이 바로 용재다.


“그래도 한 번 사는 인생, 올인해봐야 하지 않겠냐?”


 반면에 나는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몽상가였다. 어릴 적부터 난 나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적이 매번 들쭉날쭉했지만 잘 보는 날이면 전교 최상위권이었고, 언어는 못했지만 수리와 사회 과목은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예체능은 기본적으로 반 대표를 할 정도는 됐다. 이러니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수밖에. 그래서 난 항상 내 생각에 자신이 있었고, 이번 사업 아이디어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플랜이라고 확신했다.


“너 그럼 나랑 같이 안 할 거지? 그럼 너 나중에 나 성공해도 일자리 달라고 하지마라.”

“퍽이나. 그리고 네가 생각한 가구 렌탈 사업은 벌써 누가 시작했어.”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수년 간의 자취 경력과 이사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의 스페셜 원 아이디어가 이미 시중에 있는 기업이었다니…난 6년 간의 자취 생활 중 3번의 이사를 겪으면서 가구를 옮기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누가 가구를 일정 기간 빌려주고 돌려받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아주 획기적이라 사업 아이템으로 쓰면 대박이 나겠다 싶었다. 이제 영상이며 책이며 다 구독해서 빌려 쓰는 지금 가구도 구독형으로 대여해서 사용하면 말도 안되는 집값으로 이사를 밥 먹듯이 하는 전세와 월세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짜 벌써 누가 시작했어? 진짜로?”

“어, 그러니까 꿈 깨.”


 용재의 단호한 ‘꿈 깨’라는 말에 지금까지 고이고이 쌓아온 나의 꿈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아, 한 발만 더 빨랐더라면, 내가 그 사장보다 먼저 태어났더라면…! 꿈이 깨져 버린 마음 속에서 질투심과 의욕이 애매하게 섞인 모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젠장, 좀만 일찍 생각할 걸!”


용재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산산조각난 꿈조각들을 하나 둘 줍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라 ‘아 나도 이제 취직이나 해야하나?’라고 말하는 게 정상 아니야?”


오랜만에 보는 용재의 호기심 많은 얼굴에 나는 금새 방금 겪은 어처구니 없는 좌절을 머리 뒷편으로 넘겨버리고는 용재의 어깨에 내 팔을 올렸다.


“내가 누구냐? 나 정영주야. 천재 정영주라고. 아이디어가 하나뿐일 거 같아? 내가 조절하고 있는 것뿐이지 내 머리속엔 아주 무궁무진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고.”


 나의 허세 90, 자존감 10짜리의 답변을 들은 용재는 호기심 많던 눈을 거두고 다시 차갑고 냉정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난 안다. 저게 나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너답다라는 이해의 눈빛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너를 누가 막겠냐? 그래 꿈 꿔라, 꿈 꿔.”


 용재가 던진 ‘꿈 꿔.’라는 말에 나는 또 이상한 망상이 떠올라서 용재 어깨에 올린 팔에 힘을 풀고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 나를 본 용재는 또 피곤해지겠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생각에 잠긴 틈을 타서 빠른 걸음으로 내게서 도망쳤다. 하지만 내가 누군인가! 바로 정영주다, 정영주. 나는 금새 생각을 마치고 종종 걸음으로 내게서 멀어져가는 용재를 향해 소리쳤다.


 “야 용재야! 꿈을 꿔주는 장사를 하는 건 어때? 나중엔 꿈도 사고 팔고 하지 않을까? 꿈을 빌려주는 거지, 꿔주는 거야! 어때!”


 용재는 내 말을 듣고 종종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됐으니까 꿈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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