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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Dec 21. 2022

[그림책으로 글쓰기]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칼라하리사막에서 방울양배추까지

소녀시절의 나는 <소녀 기자 페기>, <플롯시의 꿈꾸는 데이트>, <요지경 파티>와 같은 지경사의 소녀 문고에 푹 빠져있었다. 방학이 되면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서 과자를 먹으며 책을 보던 그 기분 좋은 느낌은 아직도 마음에 선연하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막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오트밀, 앤초비, 롤스로이스’와 같은 단어들이 나올 때였다. 이야기의 배경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추측하고 넘어갈 뿐 정확한 느낌은 알 수 없었다.     


외국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그림책 한 권을 받아들일 때도 마찬가지다. 영국 작가 에밀리 그래빗의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은 책 속 여기저기 세세한 재미가 숨어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부가적으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에밀리 그래빗 글, 그림/비룡소(2020)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에 나오는 미어캣 ‘써니’는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다. 써니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던 와중 어느 날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이 적힌 잡지를 보게 된다. 칼라하리 사막에서는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없다 생각한 써니는 잡지에 적혀있는 완벽한 크리스마스의 조건을 찾아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완벽한 크리스마스의 조건을 가진 장소를 찾기 위해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써니는 가족에게 자신이 본 모습들을 카드에 적어 보낸다.       


써니가 잡지에서 읽은 완벽한 크리스마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완벽한 날씨 : 눈이 오는 날씨
2. 완벽한 트리 : 우아한 장식
3. 완벽한 선물 :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
4. 완벽한 저녁식사 : 푹 삶은 방울양배추 요리는 필수
5. 완벽한 음악 : 캐럴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책을 깊게 읽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다 보니 왜 이런 소재가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막히는 부분이 많다. 그림책 한 권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배경지식이 내가 갖고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도 했다. 책 한 권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칼라하리 사막과 미어캣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의 주인공은 미어캣 가족의 일원인 ‘써니’다. 써니는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다. 칼라하리 사막은 아프리카의 보츠와나, 나미비아, 앙골라, 잠비아, 짐바브웨에 걸쳐있는 세계에서 가장 모래가 길게 뻗어있는 사막이다.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사막의 모습에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써니가 칼라하리 사막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동경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대표적인 동물인 미어캣은 30마리 정도 무리 생활을 하며 굴에서 생활한다. 그렇기에 주인공 써니가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무리 생활을 하는 모습의 전제 조건이 된다. 에밀리 그래빗이 다른 작품 <Meerkat Mail>에도 미어캣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책도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써니의 여정과 팝업 카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2. 호주의 크리스마스     

출처:http://www.topdigital.com.au/news/articleView.html?idxno=941

써니가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찾기 위해 처음 방문한 곳은 펜팔 친구 코알라 케빈이 사는 호주다. 호주는 남반구에 위치해 계절이 우리나라와 반대다. 우리나라가 겨울일 때 호주는 여름이며, 크리스마스도 눈 내리는 겨울이 아닌 쨍쨍한 햇빛아래 즐겨야 하는 없는 환경이다. 사막에서 살다 온 써니에게 호주는 맛있는 음식이 있고 바다가 있다는 점을 빼면 칼라하리 사막과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작가는 호주의 모습을 통해 계절이 다른 크리스마스도 있음을 보여준다.     


3. 필리핀의 안경원숭이, 파롤

     

http://www.ecojournal.co.kr/real_time_news_view.html?uid=115923

https://www.tatlerasia.com/culture/arts/parol-the-christmas-d%C3%A9cor-that-has-lit-the-world-in-202



두 번째로 써니가 방문한 곳은 안경원숭이 트레버가 사는 필리핀이다. 안경원숭이는 필리핀에 주로 분포하는 작은 원숭이다. 동물에 관심이 많다면 안경원숭이의 등장만으로도 그림 속 배경이 되는 나라를 추측할 수 있다. 필리핀에는 써니가 기대했던 뾰족한 트리 대신 파롤이라는 별 모양 연등을 장식한다. 인구의 80%가량이 기독교인 필리핀은 9월 1일부터 파롤을 장식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고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가장 중요한 명절 중 하나로 여기며 성대한 12월을 미리부터 준비한다. 써니에게 필리핀의 크리스마스는 맛있는 메뚜기를 제외하곤 완벽하지 않다.     


4. 유럽 울새, 로빈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7/dec/12/robin-snowy-christmas-card-red-breast-festive

세 번째로 써니가 방문한 곳은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다. 그곳에는 많은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본문에 책 속 새를 ‘개똥지빠귀’로 번역했기에 호주의 코알라, 필리핀의 안경원숭이처럼 지역의 힌트가 될 거라 생각하고 계속 검색을 했지만 특정 지역으로 배경이 좁혀지지 않았다. 새의 분포지를 찾기 위해 ‘dusky thrush, christmas thrush, christmas bird’ 등 다양한 단어로 검색하다가 ‘울새’를 발견했고 영국 지역에서 울새를 ‘European robin’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의 이름인 ‘로빈’ 그리고 유럽 울새의 이름이 ‘European robin'이라는 지식이 연결되었다면 금세 알아차렸을 사실이었다. 

가슴 쪽이 빨간 울새는 예수님의 면류관 가시를 뽑으려다 피가 묻어 빨개졌다는 전설이 있어 크리스마스카드나 장식에 자주 등장한다. 책 속에 있는 카드의 표지에는 호랑가시나무 위에 앉아있는 울새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울새가 좋아하는 열매라 함께 자주 그려진다고 한다. 울새는 울음소리가 특히 예쁜 새라 써니의 완벽한 크리스마스의 조건 중 노래 조건에는 부합하지만 다른 조건들은 크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5. 방울양배추, 브뤼셀 스프라우트      

https://www.taste.com.au/recipes/caramelised-brussels-sprouts-buttered-breadcrumbs-dried-cranberries

써니의 완벽한 크리스마스 조건에는 방울양배추 요리가 들어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방울 양배추는 유럽에서 흔하게 요리해 먹는 재료다. 특히 영국은 방울양배추인 ‘브뤼셀 스프라우츠’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의 대표 메뉴로 방울양배추가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단독으로 삶거나 볶아 먹기도 하고 다른 재료와 함께 요리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하면 떠올리는 음식이지만 사실 이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면지에 삶은 방울양배추를 적어놓은 메모에 ‘우엑’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아마 동경하던 방울양배추를 먹은 후 실망한 써니의 감정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작가가 영국인이다 보니 영국의 크리스마스 문화가 책 속에 많이 녹아있음이 느껴진다. 소재가 책 속에 등장한 배경을 알고 나서 책을 보니 구석구석 숨은 그림이 더 재밌게 다가온다. 문화가 녹아있는 책은 배경 지식이 가미될 때 더욱 큰 즐거움을 준다. 그냥 가볍게 보고 넘겼을 책의 배경을 이해하고 그림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영국의 크리스마스 문화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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