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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Sep 30. 2022

[그림책으로 글쓰기] 사랑의 선택과 책임

나를 살게 하는 힘 <태어난 아이>, <여름의 잠수>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글, 그림/거북이북스(1990)

<여름의 잠수> 사라 스트리츠베리 글, 사라 룬드베리 그림/위고(2019)


         

만약 부모와 배우자가 동시에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구해야 할까요?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 만난 질문이었다. 아주 흔한 클리셰로 언급되는 이 질문은 개인이 가치를 두는 우선순위를 판단할 때 자주 쓰인다. 고민이 되는 이 질문에 대해 진행자인 정신과 의사는 정신과적 관점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바로 ‘배우자’입니다.      



어른은 자신이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부모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배우자를 물에서 구하는 게 맞는 행동이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삶의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수긍이 가는 답변이었다. 이 답의 범위를 확장한다면 ‘배우자와 자식이 동시에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구해야 할까요?’란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식이라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이었고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임져야 할 존재가 자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물어본다면 고민 끝에 말할 두 권의 책이 있다. <여름의 잠수>와 <태어난 아이>다. 두 권의 그림책 모두 살아가는 것, 사랑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전하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그림체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여름의 잠수>는 강렬한 색채를 갖고 있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태어난 아이>는 색은 단조롭지만 판화로 작업한 그림이라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 결은 다르지만 두 권 모두 아이를 통해 사랑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한 생명을 진정으로 태어나게 하는 사랑의 선택과 책임 <태어난 아이>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

.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 두 문장은 <태어난 아이>의 초반부에  계속 반복되어 나온다. 태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태어난 아이는 우주를 떠돌다 지구에 오게 된다. 아이는 지구에 와서 많은 새로운 것들은 접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태어나지 않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아이와 마주치고 둘 옆에 있던 개에게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여자아이가 물리게 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개가 물어도 아프지 않았지만, 태어나지 않았기에 아무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는 고통을 느끼며 엄마를 찾아간다. 여자 아이를 달래주는 엄마를 보고 태어난 아이는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갑자기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엄마’를 외치며 마침내 태어난다.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기고, 냄새를 느끼고, 감정이 생긴다.     

 <태어난 아이>를 처음 접한 사람은 다소 무거운 주제, 상징적 표현, 거친 그림으로 구성을 접하며 당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을수록 다양한 느낌이 전달되고, 책 속에 담긴 무게가 마음을 눌러온다. 누군가로 인해 태어난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삶의 이유를 갖게 하는 사람과 그로 인한 변화들. 그 당연한 것들이 기적과 놀라움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브런치의 글을 둘러보다 보호 종료 아동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함께 지내는 분의 글을 보게 됐다. 그분의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기관에서 자란 아이의 경우 일반적으로 당연히 알거라 생각하는 부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돈을 계획 있게 쓰는 법을 몰랐고, 전기를 아껴 쓰란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전기를 절약해서 써야 한다는 개념이 없고, 재활용을 제대로 하는 방법도 숙지하고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지냈다면 부모님과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익혔을 것들을 모른다는 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적극적인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는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태어나지 않았다고 자신의 정의 내리고 살아왔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태어난 아이>와 보호 종료 아동의 모습이 담긴 글을 통해 누군가로부터 관심과 책임을 받을 때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는 ‘책임’이 포함되어 있다 말한다. 책임은 자발적 행동이며 다른 인간 존재의 요구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태어난 아이>의 아이는 사랑에 눈뜨고 관심을 받으면서 드디어 세상에 응답하기 시작한다. 한 생명을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것은 누군가의 선택과 책임일 것이다.  


    

나를 살게 하는 힘은 사랑 <여름의 잠수>     



<여름의 잠수>는 소설을 주로 쓰는 스웨덴 작가 ‘사라 스트리츠베리’가 글을 썼고, ‘사라 룬드베리’가 그림을 그렸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접하는 스웨덴 문학이다. 사라 스트리츠베리는 소설 <사랑의 중력>의 한 부분을 각색해 그림책 <여름의 잠수>로 재탄생시켰다. <여름의 잠수>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아마도 아빠의 병은 우울증으로 추정된다, 어린 소녀 소이가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아빠는 가족의 면회를 거부하게 되고, 소이는 만나주지 않는 아빠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한 다른 환자인 사비나와 시간을 보낸다. 상처받았을 소이의 마음을 사비나는 자연스레 어루만져준다. 사비나는 낯선 장소에 떨어진 소이에게 손길을 내밀고 다양한 놀이를 하며 슬픔을 희석시킨다.      



<여름의 잠수>에 나오는 인물들의 역할은 역전되어 있다.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줘야 할 사람은 그 사랑을 차단하려 애쓴다. 소이는 아빠에게 무한한 사랑을 전달한다. 아빠가 면회를 거부한 후 엄마는 아빠를 포기하지만 소이는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사랑을 하던 세 사람이 있었다. 둘은 그 사랑을 빠져나갔지만 소이만이 유일하게 그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울타리를 다시 세우려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지나간 후 아빠는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소이의 아빠는 결코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삶을 살게 됐다.     


부모가 등을 돌렸다 느꼈을 때도 외면할 수 없는 것, 삶의 끊을 놓고 싶을 때 나를 땅에 발붙이게 하는 것, 바로 사랑이다. <여름의 잠수>의 인물들은 사랑을 배워간다.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힘든 세상의 무게에도 나를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좀 더 나아지리란 희망이 배제된다면 무엇이 나를 살게 할까? <여름의 잠수>는 이를 찾는 해답의 빛을 한 줄기 보여준다. 슬픈 날, 인생을 놓고 싶은 날, 우울에 빠져 허덕이는 나날을 구해주는 건 사랑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존재와 내가 없을 때 생기는 비극에 대한 상상이 힘든 날의 나를 살게 한다.        


결코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 그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며 사랑을 주는 아이, 외로운 아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위로해주는 타인. <여름의 잠수>는 어떤 인물에 나의 감정을 대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삶이 힘든 이에게는 외로운 아빠, 사랑이 필요한 이에겐 소이, 사람에 지친 이에겐 사비나의 마음이 와닿을 것이다. <여름의 잠수>는 결코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삶은 어떻게든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진 것들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며 삶에 대한 무게를 느낀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그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지는 것. 평범한 일이지만 과정에 새겨진 의미와 순간마다 느낀 마음을 되새겨보면 모든 일이 기적과도 같다. 나와 가족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선택, 책임 그리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이라는 단계가 존재한다. 그 많은 것들 중 내가 선택한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책임감, 감정의 복합체로서의 사랑이 나를 살게 한다.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고 살게 하고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모두 사랑의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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