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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Sep 02. 2022

[그림책으로 글쓰기] 면허도 있고 운전도 가능한 사람

너와 나의 홀로서기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채인선 글, 박현주 그림/논장(2021)

<내가 없는, 내가 있는> 조은지 글, 그림/비룡소(2022)    



나의 운전 성공기     


스물여덟. 늦었다면 늦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매년 버킷리스트에 적어둔 ‘운전면허 따기’를 미루고 미루다 첫 회사를 퇴사한 후 마찬가지로 면허가 없던 남동생과 함께 집 근처에 있던 운전학원을 방문했다. 당시 면허 취득이 매우 간소화되어 시험의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능 시험, 도로 주행에서 각 한 번씩 고배를 맞이한 후-이건 유전자의 영향인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면허를 취득한 후 난 운전을 하지 않았다. 운전을 연습하던 중 발생한 사고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도로 주행 시험을 앞두고 학원비를 아끼기 위해 아빠 차를 몰고 나갔다가 갓길에 주차한 트럭을 박아버렸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조수석 문은 완전 찌그러지고 말았다. 몇십만 원의 학원비를 아끼려다 백만 원이 넘는 자동차 수리비를 경험비로 지불하고 도로 주행 시험에서 한 차례 낙방한 후 난 결국 다시 운전학원에 추가 수업을 등록했다. 그동안 배운 노력이 아까워 어떻게든 면허를 따긴 했지만 그 후 나는 운전이 무서워졌다. ‘면허가 없어 운전을 못하는 사람’에서 ‘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못하는 사람’으로 바뀐 게 20대 시절 나의 운전면허 취득기의 새드엔딩이었다.    

 


그래도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 도로 주행을 다시 배우고 운전이 가능한 사람이 되리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리저리 미루다 결국 삼십 대 초반의 나는 뚜벅이 엄마의 인생을 시작했다. 차 없이 아이와 도보, 버스, 택시를 번갈아 이용하며 여기저기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운전이 무서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지듯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결심과 행동으로까지 연결됐다. 거의 십 년 간 쌓여온 불편함이 폭발한 것일까. 사 일간의 도로 주행을 마치고 마침 찾아온 추석 연휴 동안 남편을 옆에 태우고 실전에 돌입했다. 운전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내비게이션으로 미리 거리뷰를 보며 차선을 바꾸는 구간을 달달 외워 운전을 하고 다녔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나는 ‘면허도 있고 운전도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한 준비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운전을 못하던 작년 초,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며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을 함께 읽었다. 수업 도중 한 아이가 선생님은 운전할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면허는 있지만 운전은 못 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 아이는 자기 엄마도 그렇다며 나를 위로해줬다. 내 차를 운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전달하면서 내가 운전을 못한다는 건 괜히 부끄러웠다. 책이 남기는 이야기가 꼭 운전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아빠와 아이의 대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운전을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아빠는 운전을 하기 위한 조건들을 말해준다. 첫 번째 나이가 들어야 함, 두 번째 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미리 봐 둘 것, 세 번째, 자기 차에 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할 것.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은 어른이 되며 홀로 서는 성장 과정의 모습을 운전에 비유한다. 내 차를 온전히 운전하게 되더라도 항상 곁에 가족이 있을 거라는 따뜻한 한마디와 함께.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은 홀로서기에 마주쳤거나 마주칠 사람이 가까이에 있을 때 더욱 와닿는 책이다. 운전을 못하는 어른인 나는 책을 보다가 내심 운전을 못하는 나의 현실을 다시 마주하며 찔리는 마음이 크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실 초등학생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아직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 때가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나의 마음을 관통한 그림책은 구매하여 서가에 꽂아 둔다. 구입의 가장 큰 이유는 언젠가 사춘기를 맞이할 나의 아이의 마음에 태풍이 몰아칠 때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을 다시 꺼내 들고 책 안에서 새로운 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를 앞두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만큼 좋은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없는 너, 네가 없는 나를 상상해 <내가 없는, 내가 있는>

     

여태껏 나는 나의 홀로서기에만 집중하여 살아왔다. 학업을 수행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명의 그렇게 평범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내가 이뤄가는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신경 써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바로 나의 아이다.     


 

<내가 없는, 내가 있는>은 단순한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책 속 반복되는 나의 흔적이 없는 장면과 나의 흔적이 있는 장면을 보다 문득 내 주변을 돌아본다. 몇 년 전만 해도 없었던 장난감, 유아식기, 아이의 침대 등. 이제는 나만 있고 아이는 없던 장면이 어색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바닥 매트가 집안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집안의 인테리어를 가장 망치던 매트가 사라졌지만 이제는 부피가 큰 장난감 대신 작은 장난감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숨어있다.


이런 어지러움이 지긋지긋하다 말하지만 진짜 이 어지러움이 사라졌을 때 내 마음은 개운하기만 할까 싶다. 독립적인 아이를 원하지만 너무 독립적인 아이의 모습은 때론 약간 섭섭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사라진 풍경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직 먼 미래이긴 하지만 아마 그때 나에게 또 다른 홀로서기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가 결혼한 직후 엄마는 내가 쓰던 방에 들어가면 마음이 비는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서로가 서로를 놓아주는 것은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든 이는 각자 홀로서기를 해나가고 있다. 내 차를 운전하며, 네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며. 단단한 존재로 자신을 세우는 것은 평생의 과제다. 운전을 시작하고 도서관에 가고 싶을 때 가고, 비 오는 날 비를 맞지 않고 움직이고, 평일 전시회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진짜 어른이 됐다 느낀다. 운전을 하지 않았던 날을 후회할 정도로. 나와 아이 그리고 주변의 성장이 항상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이 더 좋은 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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