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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Feb 06. 2023

[30대의 자아찾기] 손에 쥘 것, 놓아줄 것

우선 가치에 집중하기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다.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난관들이 생각나고 쥐었던 것을 놓았을 때의 아쉬운 점들이 발목을 잡는다. 최근 1년 간 내가 쥐고 있던 것을 계속 쥐고 갈지, 아니면 놓아야 할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작년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초등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월 4회, 1년 간 총 48번의 수업과 토요일 출근이란 조건에 대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았다. 수업 초반부에는 낯선 환경에 긴장이 잔뜩 되어 일주일 내내 하루 4시간 이상 한 번의 수업을 위한 모든 아이디어를 짜내며 고민했다.       


이전에도 왕복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에서 4개월 간 수업을 한 경험이 있어 토요일 수업을 만만하게 봤었다. 하지만 단기간의 수업 일정과 달리 1년간 매 회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고 매주 출근하는 일은 예상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했다. 게다가 토요일마다 집을 비우니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기도 쉽지 않았고, 내가 집을 비운 공백 시간 동안 아이와 나간 남편이 쓰는 돈이 내가 벌어오는 돈 보다 더 많기도 했다.  

   

‘1 년을 채우면 일을 그만두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막상 마지막이 다가오니 아쉬운 마음도 컸다. 나를 잘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도 했고, 기관에서는 다음 해에도 내가 계속 일을 하리라 생각하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20%가량의 강사료 인상도 예고됐다. 고민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1년 더 수업을 하면 경력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고 지금의 수입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발목을 잡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계속 수업을 진행한다면 기존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이어나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나는 또 매주 새로운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프리랜서 강사는 보통 하나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 수업을 반복하며 수업 준비 시간에 대한 효율성을 높인다. 하지만 새롭게 1년을 수업하게 된다면 또다시 48개의 새로운 수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작년에 남편의 회사 직책에 변화가 생기며 가족 모두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평일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정시 퇴근을 하고 나머지 날들은 기본 저녁 9시가 넘어 집에 왔다. 한 달에 3-4차례는 출장을 갔고 1박을 하고 오는 일도 종종 생겼다. 그렇다 보니 주말을 제외하고 가족이 온전히 모두 모여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 낯선 일을 시작하며 나 또한 육아에 소홀히 하기도 했다. 올해도 남편의 업무 패턴에는 큰 변화가 없을 예정이고 내가 토요일에 일을 한다면 함께 보낼 시간이 여전히 부족한 건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내가 일에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에 집중하면 그 일에 깊이 빠져 주변의 상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작년 한 해는 주변보다 나의 세계에만 빠져 있었다. 풀타임으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집은 엉망인 날이 많았고 잘 먹지 않는 아이를 탓하며 대충 식사를 차려주는 일이 이어졌다.      

현실적인 조건들을 생각하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닿았다. 하지만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조건과 나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고민 끝에 기관에 내년에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일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한 윤곽을 잡았다. 


엄마가 되고 난 후 나의 일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동반된다. 그게 때론 나였고, 때론 남편, 때론 아이, 때론 친정 엄마가 됐다. 왜 나만 이렇게 양보하는 느낌이 들까 싶을 때도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나를 앞세우는 건 아직 순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아직도 미련은 남지만 지금은 잠시 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다시 바라보며 좀 더 단단한 나를 만들자고 다짐한다. 


바뀐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급하지 않게 성장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2년 전의 나는 1년 전의 나를 예상하지 못했고,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예상하지 못했다. 1년 뒤에는 또 어떤 내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놓는다고 해서 나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시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나의 현재를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보고자 한다. 놓고 나니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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