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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Mar 27. 2023

[그림책으로글쓰기] 나를 대하는 자세

<곰씨의 의자>, <나의 소중한 인생 친구>

   첫 회사를 다닐 때였다. 많은 사람들의 회사 생활이 그러하듯 일이 주는 스트레스보다 직장 동료 특히 나의 경우엔 상사와의 트러블 때문에 회사에 있는 시간이 힘들었다. 연초에 가고 싶었던 직종의 최종 면접까지 갔다 떨어진 후 일적으로는 많은 의욕이 상실된 상태였는데 사람 관계까지 복잡해지니 매일이 죽을 맛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타의로 인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상상 속으로 자주 도피했다. 아침 출근길에 오를 때면 교통사고가 나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쉴 수 있길 바랐다. 아파서 입원이라도 하면 마음 편히 현실에 곤두세워진 나의 신경의 잠시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손해를 입는 건 나인데 말이다. 다행인지 이런 마음은 결국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며 사라지긴 했다.      




혹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지 않나요? 

 

<곰씨의 의자> 노인경 글, 그림 / 문학동네(2016)


 하지만 이후로도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문제를 마주 보며 해결하려기보다 회피하는 쪽으로 생각이 향하는 나를 자주 발견했다. 사실 그러한 내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으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거라 추측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어느 날 노인경 작가의 <곰씨의 의자>에 나오는 곰씨의 행동을 보며 정당화하던 내 모습의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곰씨의 의자> 속 곰씨는 멋진 의자를 갖고 있다.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음악을 감상하고,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행복한 시간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의자 앞을 지나가던 탐험가 토끼를 만난다. 곰씨는 힘들어 보이는 탐험가 토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의자를 내어준다. 탐험가 토끼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곰씨에게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곰씨와 탐험가 토끼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슬픔에 빠진 무용가 토끼가 둘의 앞을 지나가게 된다. 무용가 토끼를 위로해 주던 탐험가 토끼는 무용가 토끼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기 토끼를 낳는다. 곰씨는 둘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하지만 불행은 그 이후 시작됐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곰씨의 평화를 방해했다. 곰씨가 자신만의 의자에서 누리던 조용한 평화는 사라졌다. 곰씨를 찾아오는 토끼들은 만남의 시간을 즐거워했지만 정작 자리의 주인인 곰씨는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끙끙댔다. 곰씨는 간접적인 방법들로 토끼들이 의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마지막엔 가장 소중한 의자를 스스로 엉망으로 만드는 방법까지 선택한다. 친절한 곰이 되고 싶었던 곰씨는 자신이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깊은 실의에 빠진다. 그런 곰씨에게 여전히 친절한 토끼들을 보며 곰씨는 커다란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자신의 마음을 길게 표현한다. 그리고 드디어 평화를 찾는다.          


나도 곰씨처럼 평소에 불편한 일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피하는 방법을 택하 는 타입이다.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고민하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기분을 해소하며 잊으려 했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라 생각하며 일을 내버려 두며 신경을 거뒀다. 주변 사람이 불편해질 때면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접촉하는 횟수를 줄이며 멀리했다.     


곰씨는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다 토끼가 오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의 소중한 의자에 배변까지 한다. 그 장면을 마주하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 탓을 하며 방향을 나에게로만 돌리는 일이 곰씨의 배변행위와 같다는 생각과 마주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망치는 행위를 하면서도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행동을 하며 마음이 놓이는 것도 아니라 계속 생각을 반추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엇하나 득이 될 것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감정을 들게 하느니 내가 힘든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맘이 편하다는 이유로 침묵과 회피를 선택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낼 뿐이다.



결국 가장 잘 챙겨야 하는 건 ‘나’     


<나의 소중한 인생친구> 앨리슨 팔코나키스 글, 네아르코스 다스카스 그림/행복한그림책(2022)


 살면서 모두 ‘남’과 잘 지내려 노력한다. 기본욕구가 채워진 인간이 향하는 사회적 욕구의 단계에서는 많은 욕망이 밖을 향한다. 많은 사람들은 남에게 잘 보이고,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큰 삶의 목표로 삼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지만 정작 욕망의 그늘에 가려 ‘나’를 잘 챙기지 않는 실수를 범한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외로워하며 외부에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내 마음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나의 소중한 인생 친구>에는 ‘시릴’이라는 친구가 나온다. 책 속에서 나무 막대로 형상화되는 친구 시릴은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함께 한다. 어릴 때는 해적놀이의 칼이 되어주고, 잔잔한 강가에서는 낚싯대가 되어주고, 나이가 들어선 지팡이가 되어준다.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고, 힘들 때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친구가 시릴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시릴이 어떤 대상을 빗대어 표현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나는 책 속 화자가 말하는 영원한 친구가 되고 싶은 시릴이 결국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함께 할 수 있고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된 주인공이 그려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의 노년을 상상했다. 할머니가 된 내가 나를 마음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의 욕구를 이해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낼 때 얼마나 행복할지, 이를 행한다면 나는 행복한 할머니가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와 잘 지내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잘 읽고 내가 편할 수 있도록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소하게 이뤄내는 사람, 모두 나에게 시선을 돌릴 때 가능한 것들이다.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낀다. 원하는 바를 모르기 때문에 주변과 나를 비교하고 비교로 인한 좌절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남만 신경 쓰다 보면 어느 순간 혼란이 찾아오며 나를 잃었단 좌절에 빠지고, 사랑을 할 때도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를 가장 생각해 주는 건 나라는 사실, 이를 마음에 다시 새기게 하는 두 권의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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