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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Jun 25. 2024

[내게 다정한 기억] 케이크

케이크가 없었던 생일날

    

   생일이나 기념일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어떤 케이크를 살지 고민한다. 이번에는 어떤 맛있는 케이크로 특별한 날을 기념할지 생각하며 맛있다고 유명한 케이크 가게의 후기를 열심히 찾아 헤맨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검색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맛있는 케이크 가게를 추천받기도 한다. 겨우 맛있는 동네 빵집을 찾아놨는데 작년 말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케이크 맛집을 찾아 다시 방황 중이다. 예전에는 대형 프렌차이즈 빵집의 케이크도 맛있다고 느꼈지만 맛있기로 유명한 가게들의 케이크를 몇 번 먹고 나니 나의 케이크 입맛이 높아져 버렸다.


 내 생일이 있는 봄에는 딸기 케이크, 달콤한 걸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선 초코케이크,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에겐 티라미수 케이크, 특별한 기억을 선사하고 싶은 부모님께는 망고 케이크, 기분 전환을 위해서 꾸덕꾸덕한 치즈케이크 등 상황에 맞게 다양한 맛을 고르다.     


 케이크는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화룡점정 같은 존재다. 기념일을 축하하는 맛있는 식사 후 맛없는 케이크를 먹으면 특별한 날을 덜 챙긴 기분이 든다. 배가 불러도 손이 저절로 가는 맛난 케이크는 기념일의 하이라이트기 때문이다. 초에 불을 붙이고 주변을 어둡게 만든 다음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끄는 행위는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 위에서 일어나야 완벽하다. 나는 왜 이렇게 케이크에 집착하게 된 걸까.     





  어릴 적 나의 생일엔 케이크가 없었다. 그때는 빵집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덩달아 케이크도 흔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생일을 며칠 앞둔 때였다. 내 추억 속 생일이 특별한 날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기대한 최초의 생일이었던 만 7번째 생일날 나는 꼭 하얀색 케이크를 보고 싶었다. 그 전에 케이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으니 먹고 싶었다보다 생일상에 올린 하얀 케이크를 보고 초를 불고 싶었다는 마음이 맞는 것 같다. 생일상을 장식하는 예쁜 케이크를 기대하며 동네 친구 집에서 열심히 놀다 저녁을 먹기 위해 집에 돌아온 생일상에는 맙소사. 케이크가 없었다. 대신 초코파이를 쌓아 만든 케이크를 앞에 두고 엄마 아빠가 나를 반겨줬다. 부모님의 환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도 초에 불을 붙이고 생일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끄는 한 명의 주인공이 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주택가가 몰려있는 골목의 단칸방에 살았는데, 창문이 없는 집이었기에 불을 끄면 깜깜해졌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을 환하게 밝히던 초코파이 위의 촛불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1학년의 가을,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입주를 막 시작한 대단지 아파트의 상가에는 다양한 가게가 들어섰는데 상가의 가장 좋은 코너 자리에 빵집이 있었다. ‘라몬트 베이커리’라는 이색적인 이름을 가진 이 빵집의 진열장에는 항상 대여섯 개의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두 살 터울의 동생과 나는 상가를 갈 일이 생길 때면 돌아오는 길에 꼭 빵집 앞에 서서 유리 진열장에 있는 케이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열장에 놓인 케이크는 시트지를 하얀 크림으로 감싸고 그 위에는 연초록색 잎을 단 분홍 장미들이 중앙을 장식하며 화려한 모양새를 뽐냈다. 장미의 옆에는 빨간 체리가 포인트로 놓여 있었는데, 이는 체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설탕에 절인 젤리였다. 케이크의 크기에 따라 꽃의 숫자는 달라졌고 케이크의 가장자리는 모양틀로 짜놓은 화려한 크림장식이 감싸고 있었다.

 장미 케이크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과일 케이크도 있었다. 설탕에 절인 여러 종류의 과일들은 케이크의 크기에 따라 여러 조각으로 구획을 나누며 케이크 위를 빼곡하게 채웠다. 동생과 나는 빵집 앞에 서서 케이크를 바라보며 상상의 세계에 빠졌다. 자의 생일에는 어떤 케이크를 먹을지, 진열장에서 제일 멋있는 케이크는 무엇인지, 가장 큰 케이크는 몇 명이 먹을 수 있을지 등 눈에 보이는 케이크로 할 수 있는 여러 대화를 나눴다. 진열장 속 수많은 케이크 중 하나가 우리의 어느 특별한 날 등장하길 바라며 어린 나와 동생은 케이크를 보는 것만으로도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 내내 생일날 케이크가 상 위에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사촌 동생이나 학교 친구들 생일에 초대받아 가면 생일상 가장 한 가운데 케이크가 있곤 했다. 그때 먹어본 케이크는 상상만큼 맛있지 않았다. 요즘처럼 촉촉한 생크림이 아닌 묵직한 버터크림이었기 때문에 입안에서 크림과 시트지가 사르르 녹는 맛이 없었다. 보는 것만큼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지만, 케이크는 축하의 순도를 높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어린 생각에 생일날 부모님이 케이크를 사준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고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하는 성대한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엄마는 케이크를 사주지 않았다. 케이크는 맛도 없고 비싸다는 엄마의 합리적 설득으로 롤케이크가 내 생일상의 가운데 놓였다. 이것도 맘모스빵에 초를 꽂자는 엄마를 설득해 고른 대안이었다. 케이크가 없어 아쉬웠지만 큰 생일파티를 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대형 프렌차이즈 빵집들이 생기며 케이크가 예전보다 대중적으로 바뀌고 나서야 케이크가 우리 가족의 생일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내 생일날 케이크가 없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느낀다. 시골에서 자란 엄마에게 케이크는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이후에는 우리 집 형편이 좋지 않아 생일날 고기를 사면 고기를 샀지 케이크를 살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케이크에 대한 아쉬움이 차곡차곡 쌓였던지 대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후 가족의 생일날에는 케이크를 빠뜨리지 않고 샀다. 묵직한 케이크 상자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통해 내가 갖고 싶은 삶의 모습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케이크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 시절이 지나 이제 맛없는 케이크를 먹으면 슬퍼질 정도로 나의 세상은 바뀌었다. 시장에서 오천 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팔천 원짜리 망고 케이크 한 조각을 포장해 오는 사치를 부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케이크가 나에게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어릴 적 나에게 케이크는 결핍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멋진 케이크가 내 생일날 있어’라고 으스대고 싶었지만 한 번도 못 이뤄본 꿈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단칸방에서 초코파이를 쌓으며 딸을 기다렸을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린 딸의 욕심으로 반 친구 모두를 초대하는 큰 생일파티를 준비하며 온갖 음식을 만들던 엄마의 수고로움도 보인다. 케이크가 없는 자리를 채웠던 것들을 알고 나니 이제는 케이크가 없었던 생일이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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