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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Jul 18. 2024

[내게 다정한 기억] 임시 보호

5주 간의 아기 고양이 임시 보호

 ‘아깽이 사총사 임보처 급구’


 작년부터 종종 봉사활동을 가던 동물보호단체의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아기 고양이 네 마리의 수유를 도와줄 임시 보호처를 구한다는 공고였다. 서너 시간의 수유 간격을 지켜야 하는 새끼 고양이의 특성상 보호단체에서 추가적인 손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마침 여러 가지 사정이 맞아 임시 보호를 신청했고 네 마리중 두 마리를 내가 잠시 책임지기로 했다. 일정을 조율한 후 드디어 이 개월 차에 접어든 고양이 둘이 보호소를 떠나 우리 집에 왔다.


 보호소에서 지어준 이름이 있었지만 일곱 살 아들은 고양이들을 보자마자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다. 귀요미의 줄임말인 ‘요미’, 순하다는 뜻의 ‘우유’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단다. 아이가 고양이에게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이름을 바꾸는 데 동의했고 순식간에 둘은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수컷 고양이 요미는 전체적으로 하얀 털을 갖고 있지만 등과 다리에는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동그란 고등어 무늬가 있다. 긴꼬리는 검은색 고등어 무늬로 덮여 있고 눈가 주위에 조로 가면을 반으로 자른 것 같은 얼룩무늬가 있는 게 특징이다. 우유는 99퍼센트가 암컷이라는 삼색 고양이로, 얼굴에 가운데는 하얀색, 가장자리로는 노란색, 머리 쪽은 검은색 털이 자리 잡았다. 몸 전체는 하양, 노랑, 검정 털이 큼직하게 구역을 나누며 섞여 있고 요미와 달리 무늬 없는 검은 꼬리를 가졌다. 턱에 있는 검은 무늬는 마치 턱수염처럼 보여 우유의 개성을 만들었다. 요미는 아깽이 사총사 중 가장 큰 고양이이었고 우유는 가장 작은 고양이였다. 어쩌다 보니 가장 튼튼한 고양이와 가장 약한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됐다. 요미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케이지에서 나와 탐색을 시작할 정도로 활발하고 친화적인 성격이지만 우유는 한동안 케이지 구석에서 웅크린 채 눈치를 볼 정도로 주변을 경계했다. 대범한 요미와 소심한 우유의 행동을 보면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다른 자식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임시 보호 기간 동안 나의 가장 큰 미션은 매 끼니를 챙겨주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 오기 직전 고양이들은 분유를 먹는 수유를 끝내고 부드러운 식감의 습식 사료를 먹기 시작했는데, 아직 위가 작아 마치 신생아처럼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마다 때를 맞춰 사료를 챙겨줘야 했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의 외출은 고양이의 밥과 밥 사이의 시간에만 가능했고 혹여라도 늦는 일이 생기면 기다리고 있을 고양이를 생각하며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첫 일 주일 동안 고양이들은 새로운 장소가 불안했는지 사람만 보면 달라붙었다.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야옹야옹’ 울며 다리를 기어오르는 고양이들을 내칠 수가 없어 불편한 자세로 고양이를 사이에 끼고 앉아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듬어주면 고양이들은 불안함이 가셨는지 골골거리며 잠이 들었다. 가장 긴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내가 고양이를 전적으로 책임졌고, 나에게 의지하는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몸은 점점 지쳐갔다. 누군가를 돌볼 때 나에겐 필요 이상의 희생정신이 발휘되곤 하는데 고양이를 돌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컨디션보다 고양이의 일정에 집중하며 초반에는 사료를 주는 시간 간격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밤을 새웠고, 몸이 피곤한 날이면 나도 몰랐던 고양이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 목이 간질거리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약을 먹어가며 고양이 곁을 지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야옹거리며 나를 반기는 소리에 힘을 냈고, 가족이 모두 잠든 늦은 밤 마지막 끼니를 챙겨주고 활발히 노는 고양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하루의 마지막 활력소가 됐다.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은 삶의 기쁨이자 무게였다.    

 



  내게 의지하는 아기 고양이들을 보며 돌봄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봉사활동을 하던 동물보호단체는 일반적인 고양이 카페보다 쾌적한 환경을 갖고 있었다. 길고양이들의 삶과 보호소 고양이들의 삶을 비교하며 이곳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며 충분한 행복을 느끼고 지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공간으로 고양이를 데려와 보살피며 아무리 좋은 공간이어도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기본적인 것만 제공하는 보호소의 환경과 내가 책임지는 고양이에게만 집중하는 환경은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 마치 아무리 좋은 아동보호시설이라도 일반적인 주양육자가 있는 가정보다 안정적이지 못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낯선 공간이 익숙해지자 고양이들은 나에게서 떨어져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고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잔다는 아기 고양이답게 정말 많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집으로 데려오기 전 보호소의 케이지에서는 종일 울어대더니 이제는 밥 달라고 조를 때 빼곤 울지도 않고, 푹신한 장소를 찾으면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편하게 잠을 잤다. 밥을 먹고 난 후 놀다 긴 잠을 자는 규칙적인 패턴을 갖기 시작했고 처음 300그램이던 고양이가 1킬로그램 될 정도로 컸다. 보호 기간 동안 예방 접종을 위해 동물 병원에 데려갔는데 수의사가 주사를 맞히며 ‘역시 집에서 키우니 애들 때깔이 좋아졌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보호소에 방문해 잠시 고양이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과 내 공간으로 생명체를 데리고 와 정성을 쏟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마음 쓰임에 차이가 있었다. 보호소의 여러 마리 중 한 마리의 고양이가 아닌 나와 관계가 생긴 고양이가 되자 나와 고양이만의 이야기가 생겼다. 나의 생활 공간에 고양이의 흔적이 생겼고, 일과를 짤 때 고양이의 일정이 추가됐다. 진정한 돌봄이란 기본적인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고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신생아실에서 내 아이의 울음소리만 유독 달리 들리던 것처럼 작은 소리만으로도 두 마리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각각의 고양이가 어떤 사료를 선호하는지, 밥을 먹을 때는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한 사람의 서사에 대해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친숙해지는 것처럼 고양이의 특징을 알고 나니 나만의 고양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 전에 없던 나와 고양이 사이에 고리가 생겼다.


 고양이와의 사이가 깊어질수록 고민도 깊어졌다. 사실 임시 보호를 자처했을 때는 최종적으로 입양을 할 수 있다는 다짐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양이를 보호하는 동안 실제로 키우게 되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계속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은 고양이를 키울 수 있다는 쪽으로 마음의 무게가 기울었다가 몸이 지치거나 고양이가 집안의 물건을 망가뜨려 놓는 날이면 키울 수 없다는 쪽으로 중심이 바뀌었다. 고양이를 임시 보호한 오 주 동안 매일 생각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까? 간단해 보이지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한 결과, 결국 난 평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양이들을 보호소에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마지막 날, 사료를 잔뜩 먹이고 털을 열심히 쓰다듬어 줬다. 정든 고양이와 헤어지면 눈물이 날 거라 짐작했는데 헤어짐을 준비하는 동안 생각보다 슬픈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케이지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넣고 그간 늘어난 장난감과 스크래쳐등을 챙겨 보호소로 향했다. 보호소에는 이주 전 먼저 임시 보호를 끝내고 돌아온 나머지 두 마리가 먼저 와있었다. 다른 두 마리 고양이를 만나자 요미는 바로 적응하며 함께 놀았고 우유는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잡동사니 사이에 숨어 들어가 온몸에 먼지를 묻힌 우유를 억지로 끌어내며 ‘다음에 놀러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나 미처 정리하지 못한 고양이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박스로 만들어준 숨숨집, 보호소에서 받은 화장실을 씻어서 돌려주기 위해 잠시 만들어 둔 임시 화장실, 방울 소리가 나는 공 장난감들이 방구석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것들은 그대로인데 고양이만 사라졌다. 고양이가 남긴 흔적을 보는 순간 갑자기 펑펑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엉엉 울며 그제야 이별의 슬픔을 느꼈다. 임시 보호를 전제로 맺은 인연이었지만 내 공간에 남아있는 고양이들의 흔적을 보며 나는 마치 고양이를 유기한 듯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 사이에 생긴 고리를 내가 강제로 깨버린 것 같았다. 괜한 정을 줘서 사람을 믿지 못하는 고양이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유치원을 하원하는 아들을 맞이하러 집을 나섰다. 한껏 울었더니 머리가 띵했다. 눈이 부은 엄마를 맞이한 아이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눈치를 봤다. 밤이 되어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니 밤만 되면 활발히 거실을 뛰어다니던 고양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또 눈물이 났다.      


 요즘도 가끔 방 한구석을 멍하니 보면 고양이가 생각난다. 책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벌로 남은 자의 슬픔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이제는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는 동안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고 무엇이 나를 포기하게 했는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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