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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Dec 12. 2022

시키지도 않은 일 전담반

솔직히 말해서 회사는, 시키는 일만 하기를 원한다.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좋다 이거야. 태도만 좋다 이거야. 근데 그런 태도로 시키는 일을 잘 하라는거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열 올리지 말라는거다. 그게 설령 회사를 위한 일이었다고 해도, 심지어 회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해도. 


이에는 두가지 포인트가 있다. 먼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잘 해냈다는 것에서, "잘 해냈다" 보다 "시키지 않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작은 회사라면 대표부터 시작해서 큰 회사라면 관리자, 팀장, 혹은 하나라도 높은 직급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이걸 왜 했죠? 이거 해도 된다고 컨펌해준 사람이 없는데? 이거 이거 할게요 하고 미리 말했어봐라. 그럼 마치 즈그가 생각해낸 것 처럼 굴거 아닌가? 그럼 내가 주도적으로 기획해서 해놓고도 결국 시켜서 한 꼴이 된다. 그러니 말 할 리가 있나. 말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다. 어차피 문제라면, 그냥 안하고 말겠다.


두번째는 시키는 일이나 잘해, 라고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업무 성과는 가시적으로 수치적으로 환산하기 힘들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분야에 있기 때문이다. 당장 뮤직비디오만 생각하더라도, 어떻게 성과를 환산할건가? 조회수가 높은가? 댓글이 많은가? 앱스토어나 왓챠처럼 별점이라도 매겨야 하나? 그럼 그 많은 평가가 온전히 비디오의 역할인가? 음악의 역할과 어떻게 구분해서 판단하는가? 분석할 수 없다. 누군가는 대박이라고 생각하는 성과가 누군가에겐 시큰둥할 수도 있다. 그러니 시키지도 않은 일의 성과를 분석할 시간에, "시키는 일이나 잘해".


물론 시킨 일을 잘 하는게 우선이다. 시킨 일이라는 수동적인 형태에 반감이 가서 그렇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게 당연하잖아. "이번 주 마감은 못 지켰어요 다음 주까지 원고 보내드릴게요. 그런데 제가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단편을 하나 짜왔는데 보실래요?". 이미 역량 미달이다. 심지어 대부분은 남의 주머니의 돈 받아가는 일이다. 내가 받는 돈 만큼의 일은 해야 한다. 시킨 일을 잘 할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떼와서 설득하자. 시키지도 않은 일을 시킨 일로 만드는게 일 잘하는 사람의 역량이다. 


그럼 여기서 조금의 아이디어가 생기는데. 회사 차원에서 아에 <시키지도 않은 일 전담반>을 꾸리는건 어떨까? 예측 가능하고 컨트롤 범위 내의 업무에서 벗어나. 회사 돈 가지고 맨날 이상한 짓거리만 하게 만드는거다. 랜덤 변수를 하나 만들자 이거야. 월급 착실히 벌고 적금 꼬박꼬박 들면서도 매주 로또 만원치 사는 것 처럼. 획일한 업무 방식에서 벗어나 합법적으로 시키지도 않은 일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진다! 안 이루어지면 짤리니까! 


아 시키지도 않은 일 전담반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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