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극장 개봉용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꿈이 있다. 적당히 이루기 어렵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아서 좋다. 처음으로 이 생각 했던게 아마 대학생때 본 부산국제영화제 GV였는데, 웃긴게 그 사람의 영화는 보지도 못했다. 학교 과제 때문에 GV만 참석했고, 실시간 통역으로 산만하게 진행되던 자리였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뇌에 박힌 대답이 있었는데, 아마 정확하진 않지만 제작비에 대한 질문이었을꺼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 제작비를 마련했나요? 겨우 서른이 막 되었을 것 같아 보이는 감독의 대답은 놀랍게도 "엄마가 내줬다"였다. 순간 관객들은 소소하게 웃음이 터졌으며, 나도 이게 농담인가 긴가민가 했지만 감독의 표정은 그런게 아니었다. 아마 대답 그 자체보다, 그 대답을 하는 감독의 표정이 와닿았던게 아닐까 싶다.
대학교 등록금이나 서울 자취방 보증금. 결혼 자금을 지원 받는건 어쩔 수 없다 치면서 영화를 엄마 돈으로 찍었다는건 왜 웃길까? 예술하는 사람은 가난해야 하고, 특히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끼니 걱정부터 해야 하니까? 부모님이 잘 사는건 안 어울려서? 아니면 그 나이 먹고 아직도 부모님이 지원해줘서? 결혼식도 그 나이 먹고 하잖아요. 더클래스 청담 웨딩홀이 다큐멘터리 제작비보다 싸진 않을 것 같은데요. 뭐 사실 그 당시에 어린 마음에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묘한 이질적 가치관에 한참을 파고들었다. 나는 왜 이 감독이 멋있는가? 왜 10년 넘게 지나도록 그날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가? 영화는 본 적도 없는데!
그리하여 추측컨대.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걸 활용하는 감독의 뻔뻔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다큐멘터리 소재가 살짝 전쟁을 다루고 있어서, 그 경우엔 좀 더 사명감에 가까웠겠지만. 내 좋을대로 꿈으로 치환해서 해석한다. 아 물론 상하차 아르바이트하고 야간 편의점 뛰면서 영화 만드는게 훨씬 더 멋지죠. 맥락은 엄마 돈 빌려서 영화 찍는게 멋지다는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꿈을 이루는게 멋졌다 이겁니다. 이 이야기 왜 했죠? 아 내 꿈 이야기 하고 있었죠. 여기까지 와서 생각해보니까 뭐 썩 그렇게까진 연결되는 느낌은 아니긴 합니다만 이제와서 물릴 순 없잖습니까. 다음 문단에서 어떻게 잘 아름답게 수습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하고, 그런 뻔뻔한 GV도 가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작비를 지원 받진 못하잖아요? 이미 너무 많은걸 받기도 했고. 행여나 뭐 어떻게 돈 생기면 지구 놀이방을 만들어주겠죠. 그래서 제가 선택한 꿈을 이루는건, 하나씩 장바구니에 주워담기 작전입니다. 아에 제작비 지원을 못 받고 제작하는 경우까지 생각해서, 다큐멘터리 영화에 필요한 하나 하나 열심히 주워담고 있어요. 아니 정확하겐, 내가 주워담는게 다큐멘터리 영화에 필요하냐 아니냐를 생각한다고 하는게 맞겠네요. 당장은 쓸모 있을진 몰라도, 언젠가 만들어질 영화에는 도움이 안된다면 가차 없이 쳐내는 편입니다. 반대로 당장 쓸모가 없는게 확실해도, 언젠가 만들어질 영화에 쓰인다면 두말 없이 지갑을 열기도 하구요. 어떻게, 조금은 수습이 됐습니까?
결국 말하자면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은 즐겁다는겁니다. 아니 장비 사는게 뭐가 꿈을 이루는 삶이냐 싶겠지만, 사고 싶은 기타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중국집 주방이며 이삿짐 센터며 가리지 않고 일하던 유키오의 심정이라 할까요. 꿈이 있으면 그냥 돈을 벌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장비를 산다구요?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