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비어있는 사랑을 했었다.
온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랑은 비어있었다
그때 난 그 갈증을 달래기 위해 로맨스 드라마를 더 열심히 보기고 하고 설레는 노래를 듣기도 했다
어느 날은 그런 사랑을 한 적도 있다
그의 잔상이 또렷하게 그려져 가슴이 콩닥거리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
그 잔상을 쓸쓸하게 창문에 그려야만 했던 그런 사랑
어느 하나 온전하지 못했다.
연애할 때 나에게 생기는 마음의 페이지,
그 페이지는 채워지지도 비워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난 그 상황들을 떠나보내기도 했고
억지로 오물거리기도 했고 애써 핑크빛이라고 그 빛을 주장하기도 했다
몇 번의 떠나보냄과 헛걸음질 끝에 난 드디어
페이지를 온전히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 공간을 나답게 사랑해 보고자 하는 여유가 생긴 것일지도
난 사랑을 하면 언어의 판도라 상자가 열린다
내가 그 사람을 묘사하고 싶은 것인지
사랑을 하고 있는 나를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이 풍성해진다
과거의 이별로 꾹 다문 언어의 입과 귀는 다시 열리기 시작했고 언어의 꾸러미는 다시 스트레칭을 한다
솔직히 처음애는 언어의 상자를 열지 않고
몇 번을 망설였다.
원래 같으면 수다쟁이가 되어 마음에 올라오는 단어를 마구 표현할 텐데 지금은 조금 기다리는 편이다
상대방의 기온 차가 나와 다를 수도 있고
특별히 그와 내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세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들이 그려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자연스럽게 내 단어에 내 말투에 녹아질 때즈음,
나뿐만 아니라 그도
우리 각자의 마음 수다쟁이가 된다
가끔은 말하는 타이밍이 겹쳐서 ‘먼저 말해’가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 우리는 알아차린다
둘 사이에 마음의 온도가 적절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