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평과 혹평 사이, 무모한 청춘의 도전
‘내 시간을 사냥당했다’는 혹평으로 화제가 된 영화 <사냥의 시간>
이제훈, 최우식, 안재홍, 박정민! 요즘 충무로에서 잘 나간다는 청춘스타 4인방이 한 영화에 모인 덕분에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나올지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영화였다. 윤성현 감독 역시 10년 전 첫 장편 데뷔작인 <파수꾼>으로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며 충무로에 파란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니... <사냥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건 당연했다고 본다. 코로나 19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개봉이 계속 미뤄졌지만, 넷플릭스 공개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영화팬들을 더 흥분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사냥의 시간>이 세상에 공개됐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 평점은 점점 낮아져 호평과 혹평사이에서 호불호가 심한 영화로 낙인찍혔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어떤 영화이길래? 이 영화를 다 본 뒤 나의 선택은 호일까? 불호일까?
코로나 19로 남은 건 시간뿐인지라... 어디 한번 내 시간을 사냥해 봐! 기대감은 저 밑바닥으로 내려놓고 기꺼이 먹잇감이 되기로 했다.
희망이 사라진 미래의 대한민국, 잿빛 폐허로 변한 이곳에서 살아가는 4명의 친구 준석(이제훈),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준석(이제훈)의 계획에 맞춰 불법 도박장을 털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기로 한 것. 불법으로 모은 눈먼 돈이니 불쌍한 우리들이 조금 슬쩍한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법 밖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지... 이제 그들은 도망쳐야 한다! 훔친 돈뿐 아니라 그들의 목숨마저 노리는 사냥꾼으로부터... 과연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관객으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평을 말하자면 나의 시간은 유익했다. 최근 본 영화 중 몰입감과 긴장감만큼은 압도적이었다.
물론 <사냥의 시간>을 불호라 말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이지만, 스토리가 좀 엉성했다.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라면 촘촘하게 얽혀 있어야 할 실타래가 너무나 느슨했다.
어쩌면 생략의 미학이라 설명할 수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꽤 불친절한 영화이다. 모든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구구절절 설명하다간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전후관계와 이유를 말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무턱대고 갑자기 결과가 훅 나타났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놓친 장면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지?
대부분의 영화에서 악역은 능력이 좋다. 주인공을 앞서 나가는 것은 물론 힘도 세고 머리도 좋다. 사냥의 시간에 나오는 악역은 그중 최고봉이다. 초인적인 힘을 넘어서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신이 인간을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놀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는 내 손안에 있다.’라고 비웃는 느낌마저 들었다.
또 아무리 청춘은 무모하다지만, 4명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대책 없음과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무능력은 1명의 악인에 맞서기에는 너무나 나약해 보였고 그로 인해 영화가 더 엉성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영화가 호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누군가 이 영화를 캐스팅 맛집이라 했는데, 그 표현이 딱 맞았다.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니 당연하겠지만, 누구 하나 처지거나 겉돌지 않고 잘 어울렸다. 나이도 다르고 캐릭터도 다른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4명의 배우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네 친구들 같았다. 후반부에 한 명씩 사라질 때마다 아쉬움이 클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사냥꾼 역학을 맡은 박해수의 연기 역시 말해 무엇하랴! 온통 물음표로 둘러싸인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인 킬러 ‘한’ 역할을 이보다 잘 해낼까 싶었다. 대사가 많지도 않았지만, 중저음으로 조용히 내뱉는 말들이 귀에 콕콕 박힌다. 전작인 <양자물리학>에서 봤던 수다쟁이 사기꾼 캐릭터는 어디로 사라지고 이토록 고독한 눈빛이라니! 다음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배우이다.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비주얼의 배경 역시 인상적이다. 희망이 사라진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잿빛 도시. 처음에는 얼핏 할렘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거리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 영화의 상황을 잘 그려내고 긴장감을 더 해 줬다고 생각된다.
또 사운드에 상당히 신경 쓴 영화라고 들었는데, 공들인 티가 느껴졌다. 집에서 TV로 영화를 보면서도 이 정도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니! 그것도 중간중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전개를 감안하면, 이 영화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사운드는 정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총격씬이 난무하는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운드 효과가 극대화되고 긴장감도 극에 달했다. 방구석 관람도 만족했지만, 대형 스크린과 음향시설이 완벽한 극장에서 봤다면 더 좋았을 생각을 하니, 넷플릭스 개봉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킬링 타임용으로 본다면 <사냥의 시간>은 충분히 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본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드러내는 교훈도 있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쉽게 얻으려 할수록 더 큰 것을 잃게 된다. 세상에 눈먼 돈은 없고, 부자일수록 나쁜 놈일수록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을 더 견딜 수 없어한다는 걸...
[내 맘대로 인물평]
이제훈: 법 밖의 세상이 무서운 줄 모르고 날 뛰었던 하룻강아지
안재홍: 외로워도 슬퍼도 친구들밖에 브로맨스의 주인공.
최우식: 거친 욕설로 포장했지만, 속은 따뜻한 천생 효자.
박정민: 너무 짧게 등장해 더 아쉽고 짠한 남자.
박해수: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사냥꾼, 총알도 피해 가는 섹시한 불사조.
조성하: 카드게임의 조커 같은 남자. 한 장도 아니고 두 장이었는데.. 왜 게임에서 진거야?
뜻밖의 신스틸러
PPL도 아니라던데... 눈에 콕 박히는 아디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