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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Jul 09. 2023

module 10: 마음속 빙산이야기

갈등 심층 심리 구조

 얼마 전 잠수정을 타고 타이타닉호 관광에 나섰던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다. 수심 4,000m에서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한 잠수정이 내파(implosion)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끝을 모르고 접근하는 인간에게 우리 관계는 여기 까지라며 대자연이 단호하게 선을 그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백십일 년 전 유빙에 의해 침몰된 타이타닉호의 비극 때처럼 말이다.


 여기 또 하나의 빙산 사고가 있다. 다른 점이라면 바다에 떠 있는 유빙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에 있는 빙산이란 점이다.




 

 가끔씩 만나 식사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는 고교 동창이 있다. 그 친구는 마침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내가 주로 찾아갔다. 한 번은 그 친구나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오기로 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날 친구는 분당에서 인천까지 버스로 갈 테니 터미널로 픽업 나와 달라고 했다. 뜻밖의 제안에 나는 터미널서 전철 타면 송도까지 20분이면 오니 그냥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게다가 지하철역과 우리 집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도 친구는 물러서지 않았고 기분이 상한 나도 내 의견을 고집했다. 결국 화가 난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갈 때마다 너 있는 곳까지 갔는데, 너는 왜 픽업을 바라냐고" 결국 나는 차를 몰아 터미널로 갔고, 집까지 가는 동안 그 친구와 나는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관계란 균형이 중요하다. 당시 나는 내가 더 자주 갔고, 갈 때마다 약속장소까지 갔으니 친구도 목적지까지 스스로 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누가 더 옳은지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들이 존재할 것이다.


  갈등 당사자의 마음을 바다에 떠 있는 빙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부분만 주의하다간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갈등을 조정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알아내야 한다. 그 과정을 갈등 규명이라고 한다. 갈등상황에서 당사자들은 혼돈에 빠져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있고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등. 이때 조정가 가눈 효과적인 질문과 경청을 통해 그 부분들을 명확히 한다.




 갈등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정당성과 억울함, 고통을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어 한다. 이해받고 지지받음으로써 고통을 덜고 싶은 것이다. 이때 자신의 입장이나 상대의 문제점을 요약해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이걸 이슈라고 한다. 바라는 바를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이는 의식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대개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빙산으로 치자면 물 밖으로 나와 있는 부분이다. 시위현장을 보면 피켓이나 머리띠에 문구들이 적혀있다. "이러다 00 시민 다 죽는다" "00 기업 임원들은 모두 물러가라" 등. 이게 이슈다. 위의 에피소드에서는 "너는 늘 이기적이야"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그것만 봐서는 안된다. 자칫 그 밑에 있는 거대한 부분에 부딪쳐 좌초할 수도 있다.




 이슈 아래로 감정이 있다. 물결 부분이다. 밖으로 드러날 때도 있지만 물에 잠겨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갈등 당사자는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그 감정의 정체를 분명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조정가는 갈등 당사자의 감정을 관찰한 뒤 피드백해 줌으로써 구체화한다. 틀릴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당사자 본인이 알아서 정정한다. 그렇게 갈등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감정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다. 이때부터 타인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 밑으로는 이해관계가 있다. 이 또한 물밖로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체면상 드러내기 곤란할 경우다. 당시 나는 내가 더 많이 갔는데 겨우 한번 오면서 픽업을 와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더 많이 갔으니 비용도 더 들었잖아"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이해관계는 때로 교묘히 숨어 있어 분석하기 전에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드디어 욕구가 보인다. 이 부분이 핵심인데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인식하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대개 이 것이 좌절되면서 우리는 움직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 조정가는 욕구를 찾아낸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지를 물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내가 아쉬운 입장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관계를 내 뜻대로 주도하려 했고. 그 친구의 경우 힘든 처지에 있는 자로서 배려받고 싶은 욕구가 발동했을 수도 있다.


 좀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보자. 그제야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가치 또는 신념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신념은 우리를 강하게 움직인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 있는 '공평함'이라고 하는 가치가 나를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그 가치가 특수한 상황에서 배려받고 싶은 친구의 애정의 욕구와 충돌했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연안부두에서 떠온 광어회와 일본에서 구해온 사케를 놓고 기분을 풀었다. 하지만 그 충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행히 자주 만나는 친구는 아니어서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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