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여름 맛
내가 호주에서 십키로가 찐 이유는 빵순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별로 더 먹는 것도 없는데, 사실 한국에서 보다 훨씬 덜 먹는 거 같은데 살이 찐다. 땅이 넓어 한국에서 하지 않던 운전을 시작 한 후, 걸을 일이 적다. 그리고 밥대신, 간식 대신 빵을 먹는다. 빵이 더 맛있다기 보다는 버터가 더 맛있다. 토스트한 빵에 버터만 듬뿍 얹어 먹어도, 이케아에서 산 캐비어라고 써 있지만 사실은 대구알을 얇게 펴 발라도 맛있다. 오이 몇 조각 얹으면 금상첨화다. 명란젓이 워낙 비싸기도 하고 구하기 어려운 시골이라, 아쉬운 대로 밥에 이케아 대구알 넣고 아보카도 얹어 파를 잘게 썰어 비벼 먹어도 맛나다. 호주 베지마이트에 대한 스웨덴의 대답이라며 호주 친구들에게도 많이 알려줬다. 아직도 베지마이트는 잘 먹지 못한다. 찝짤한 맛은 익숙하지만, 그 쿰쿰하고 톡 쏘는 느낌은 극복이 어렵다. 식빵은 슈퍼에서 파는 것 보다는 동네 베이커리에서 사는 것이 거 부드럽고 맛있다. 토스트를 했을때는 비슷하지만, 굽지 않은 맨 빵을 샌드위치를 했을때는 큰 차이가 난다. 그냥 버터만 발라 먹어도 맛있는 부드럽고 촉촉한 식빵.
나에게 호주의 여름의 맛은, Snag sanger 라는 재미있는 호주식 이름이 붙은, 소시지와 양파를 바베큐에 구워 버터를 바른 빵에 올린 소시지 샌드위치와 시원한 맥주다.식성에 따라 토마토 케첩이나 바베큐 소스를 뿌려 먹는다. 맛있는 소시지 샌드위치를 위해서는 베이커리에서 산 부드럽고 촉촉한 빵이 필수다. 얼마전 한 요리사가 나눈 이 소시지 샌드위치 빵에 대한 팁으로 인터넷이 들썩 거렸다. 원래는 빵 밖으로 길쭉한 소시지가 살짝 삐져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그 요리사의 팁은 베이커리에 가서 반쪽 짜리 식빵을 사서 그걸 세로로 잘라 달라고 하는 것. 그러면 완벽하게 소시지를 감싼다.
나는 호주 작은 마을들을 여행 할 때면 그 마을의 베이커리에 가서 맛과 분위기를 보곤 한다.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이 모이는 베이커리가 좋다. 우리 마을 베이커리는 식빵 외의 빵은 별로 맛이 없고 커피도 쿰쿰 한 듯 맞은 편 카페만 못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도 베이커리를 가장 많이 찾았다. 내가 보기로 호주 사람들은 변화를 즐기지 않는다. 맛이 덜 하더라도 자기와 익숙한 곳을 찾아간다. 그런 베이커리가 지난 달 문을 닫았다. 그 동안 경영난을 겪고 있었고 주인 부부간에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아 위태로웠다. 그러던 중 이번 호주 산불로 집의 많은 부분이 불에 타버렸고 더 이상 버티기를 포기했다. 몇 십년 째 베이커리를 이용하던 주민들은 갈 곳을 잃었다.
더 이상 소시지바베큐를 할 만한 여름이 이제 거의 끝나가 그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나? 문 닫힌 베이커리를 아쉬워 할 순간들이 줄었으니 하며 그 빈자리에 익숙해 지려할때 즈음.
어제 날짜로 호주의 대형 철물점 버닝스에서 일요일마다 운영해 오던 소세지 시즐을 코로나의 여파로 당분간 중단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일요일 오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버닝스에서 2~3달러 짜리 소세지 샌드위치와 시원한 콜라는 호주인들의 게으른 일요일의 풍경중 하나 였다. 그리고 소시지 시즐은 다양한 기관에서 펀드레이져로 진행이 되어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었는데. 아쉽다. 이제는 일상이 된 듯한 코로나와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