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사장도 좋아합니다. 녹색 어머니 활동.
(봄비에 떨어진 꽃잎 보며 썼던 글을 이제야 올리다니. 봄을 사랑해 오래 끌어안았던 것으로 할까요.)
녹색 어머니. 혹시 잊지나 않을까 한참 전부터 긴장하곤 하는 큰 일정이다.
하루는 학교 바로 앞 횡단보도, 하루는 집 바로 앞 횡단보도. 이번엔 이렇게 이틀이다. 노란 깃발을 들고 서있다 보면 아이들이 지나가고, 흠뻑 웃는 아이들과 마주치면 덩달아 크게 웃게 되고. 시현이 친구들도 만나고 준우 친구들도 만나고 동네 언니들도 만나고 그리고 작은 가게 고객님들도 만나는 푸르른 시간.
INFP 다운 망상이 시작된다. 나는 지금 장승이다. 마주치는 눈동자들께 꾸벅, 하루의 안녕을 기원하며 인사를 전한다.
불록 치솟는 볼살과 눈코입 주변 깊게 그려진 주름을 지녔으니 ‘가장 해학적인 장승’으로 뽑힐 자신이 있는, 풍덕천동을 지키는 장승이 되어 진지하고 엄숙하게 녹색 깃발을 들고 내린다. 마을 입구를 넘보는 액을 막아내고 아이들 등굣길의 안전을 지켜내리라. 진지해지는 순간, 조금 전 찍었던 사진이 떠오른다.
학교 지킴이 어르신 초소에서 아이들을 위한 기도와 십자가, 그리고 스타벅스 사이렌 컵홀더를 보며 감동했다. 감동 위로 조끼를 입으며 오늘 (유혹의 사이렌이 아닌) 수호의 사이렌이 되겠다 다짐했다. 초록 사이렌 장승으로 변신. 그야말로 녹색 어머니의 날이다.
나무 덩어리가 되었으니 외부의 소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갖은 소리들을 모으는데, 건너편 학교 정문에서 지킴이 어르신의 크고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암전 된 무대에 퍼지는 노래 가락처럼 웅장하고 깊다.
“사랑한다아~ 사랑한다아~”
'아니 어르신, 아이들에게 매일 이렇게 사랑 고백을 전하고 계셨다니요!'
빗물에 적셔진 분홍 꽃잎 타고 출렁이는 그 음성이 얼마나 따뜻한지. 나무장승은 액체장승이 되어 흐물거리고 기체장승이 되어 날아다닌다.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생각하시다니. 아침마다 잠이 덜 깬 아이들에게 이런 응원을 보내고 계셨다니.
학교로 달리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사랑한다’ 고백하시는 어르신을 바라보며 ‘저도 사랑해요~ 얘들아 나도 사랑해’ 외치고 싶다.
앗.
학교에서 차가 나온다. 나오는 차 뒤로 어르신 음성이 다시 퍼진다.
“사랑한다~ 사.“
‘아니. 잠깐. 사랑이 아닌 것 같은데?‘
“차 나온다~ 차 나온다~”
에잉? 사랑한다 하셨잖아요. '사랑한다' 아니고 '차 나온다'인가요. 계속 '사랑한다' 로 들렸는데요. 제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긴 해요. 그래도 분명 '사랑' 이었잖아요.
내향적인 녹색 장승 양볼에 분홍 꽃이 피어오른다. 뱅글뱅글 부끄러운 달팽이가 기어 다닌다. 세상에. '차'를 어떻게 '사'로 들은 거지. 혼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누군가 팔을 톡 치신다. 망상에서 현실로 돌아올 시간.
“혹시 **** 사장님 아니세요?”
알아보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으시는 단골분 당황하실까 장승에서 인간으로 돌아와 수다를 나눈다. 홍조 달팽이를 노란 조끼 안에 숨기고.
고객분 가던 길을 가시고 망상 속 달팽이와 대화를 시작한다.
그래 차가 나오다 아이들이 다칠까 걱정하시는 어르신 애정이 담긴 '차 나온다'이니 '사랑한다'와 같은 말이지 뭐. 사랑하니까 차 나오는 것이 걱정이고 차가 나오니까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알려주시고.
비는 그치고 꽃잎은 예쁘고 아이들은 귀엽고 고객님은 반갑고 나는. 환청이 들리는 나는 지금, 차 나오는 이 순간을 사랑하고.
앞으로 녹색 장승이 되는 날마다 사랑스러운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녹색어머니를 서지 않더라도 위기 앞에 선 누군가를 발견하면 그이의 수호 장승이 되어 크게 말할 것이다.
"차 나온다 기다려보자~ 사랑한다 할 수 있단다~"
그리고 내 삶에도 누군가 지켜주고 있다는 희망이 필요할 때, 어르신의 사이렌 컵홀더 기도를 기억하며 나의 장승을 불러낼 것이다.
"지별아 차 나온다 피해라. 지별아 사랑한다 살아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