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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 Oct 16. 2023

달을 사랑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이유

어느덧 30대.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 게 없었다.

날고 기는 디자이너들은 늘 넘쳐났고 나는 그저 자리 차지만 하고 있는 사람.

기술적인 부분도 그렇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듯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즐겁지만 그게 반해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마음은 빠르게 식고 시간단축을 위하여 결국 해왔던 길을 택하게 된다.

다들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걸까.

아니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좀 더 안정적인 삶이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저기 멀고 먼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해맑게 자라온 철부지 지방러가 서울에 자리 잡긴 너무 어렵다.

잠시 잠깐 마음의 평온을 위하여 되돌아가는 선택지를 택한 적도 있었는데,

나의 기술이 쓸모없게 되어버리는 곳에서 정착하려니,

그간의 경력과 아등바등 버텨왔던 내 시간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부랴부랴 올라왔다.


나는 단단하지 못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약해서 찾아간 고향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한 셈이었다.

그렇게 올라온 서울은 더 견고해져 있었다.

마치 나에게 '네가 있을 곳은 더 이상 없어'라고

철벽을 치듯.

그래서 나는 이전과 다르게 빠르게 융화되고자 노력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나가 보기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그렇게 조금은 동화되어가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직장생활이 여유로울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도 말이다.

즐거운듯한 생활 누리다가 백수의 기간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큰 낙폭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매우 아팠다.

직장을 걷어내니 나는 그저 도태되어가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거품이 걷히고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물 흐르면 물 흐르는 대로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몸뚱이만 남겨진 나 자신을 보니 그저 한없이 고여있던 썩어가는 웅덩이가 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아픈 시간을 보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에 들지 못하고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까지 퀭한 눈으로 앉아있다가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렇게 준비된 것도 없이 취업시장에 다시 내던져질 줄은 몰라서, 멍하니 시간을 꽤 보낸 것 같다.

이 나이 먹도록 난 무얼 했던 거지.

왜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지.

나는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렇게 자괴감으로 둘러싸인 시간을 보냈다.

누구는 휴식기라 생각하고 여행을 즐기기 도하고, 새로운 걸 배우기도 하던데,

나는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어서,

내세울 게 없어서 나의 쓸모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몇 날 며칠을 잠 못 들기도 하였다.

불안감이 가득한 이 문제를 친한 친구들에게 나마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의 가족들은 아무도 몰랐다.

'기어코 떠나가더니,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또다시 너는 실패했네'

혹여 그런 소리라도 들을까 봐 더 최대한 꽁꽁 숨겼다.

금전적인 여유가 함께 사라지니 보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내 포지션을 찾는 구인공고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고,

나는 이렇게도 애매모호한 인간이었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책 어린 시간을 지나고 들어간 곳은 내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유와 금전적인걸 다 쥐어주는 곳을 흔치 않을뿐더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언갈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100세 시대라던데, 내가 가진 직업은 그보다도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었고,

그나마도 수명을 연명하기 위해선 나는 발에 땀나도록 뛰어야 했다.


안일한 시간을 누린 벌이었다.


새해가 되며 포부에 가득 차 도전했던 글쓰기는 일기조차 쓰는 것도 버거웠고

항상 함께 하노라 다짐하며 아끼던 내 만년필은 저기 구석에 세워진 채로

그렇게 시간이 빠듯하고 힘겹게 흘러갔다.


마음에 고여있는 이야기는 어디로도 배출하지 못했고

그저 우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또는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주말이면 마치 원시인처럼 모든 걸 단절하며 지냈다.

귀담아들어주는 누군가는 부담스럽고

리액션만 하는 누군가에는 상처를 받고

내 마음이 온통 상처 투성이니

그저 고마운 일도 자꾸 삐딱하게 보게 되는 것이었다.


답이 없는 이 마음은 곧 꽁꽁 싸매는 일도 버거워졌다.

마치 폐쇄공포증에 어둠이 질려버린 것처럼

이 작은 마음속에 작은 창 하나라도 내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공허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드러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다가 스케치북을 발견했다.

그때는 밤을 새도 즐거웠는데, 재밌었는데...


한 장씩 넘겨가며 그림이 는 것도 같다가 다시 제자리인 것도 같다가

엉망진창인 스케치북을 오래도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내 그림체를 찾길 위한 위한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문장으로는 낯 부끄러워 말할 수 없던 이야기를 풀어내면 어떨까.

하다못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그려보면 어떨까.

아무도 나를 토닥여 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에게 위안을 줘야 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으로 내 마음에 작은 창이 열렸다.

창을 좀 더 넓히기 위해 당장 펜을 꺼내 들었다.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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