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서 뽀글이 라면 먹기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뽀글이 라면 먹기
* 7일 차, Lobuche(4,910m) → Gorakshep(5,140m) 3시간 소요 / Gorakshep(5,140m) ↔ EBC(Everest Base Camp, 5,364m) 왕복 4시간 소요
어젯밤 속이 많이 불편했는지 바로 잠들기 어려웠다. 새벽에 몇 번 깨긴 했으나 그래도 푹 잘 잤고 06시 10분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짐 정리를 하고 06시 30분에 아침을 먹었다. 식빵 2개에 계란 2개, 나에게는 말도 안 되게 부실한 식단이었지만 여기는 네팔 히말라야. 간단히 요기를 한 후 06시 45분 고락쉡을 향해 출발했다.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아침 기온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또한 양 손에 끼고 있는 장갑은 손가락장갑이었기에 스틱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추위에 떨며 걷고 있던중 갑자기 누군가가 장갑을 내밀었다. 며칠 전 팡보체 마을 로지에서 처음 만난 이태리 친구 지울리아였다. 그녀도 오늘 아침 일찍 트레킹을 시작한 것 같았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외국인의 호의는 손가락도 손가락이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올라갈수록 숙소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숙소 예약을 위해 라즈를 먼저 보내고 나는 그녀의 가이드와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평지를 지나고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고생의 연속이다. 사서 하는 고생 그리고 돈 쓰면서 하는 고생.
'아... 너무 힘들다.'
낙석들이 쌓인 빙하지대가 쭉 이어지는 좁고 험한 길이 나왔다. 교통체증이 심한 좁은 길목에서 옆으로 살짝 비켜서며 마주오는 한 여성에게 먼저 가라는 말과 함께 손짓을 했다.
조급함 대신 여유를 갖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길을 양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올라갈수록 험해지는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어 해발고도 5,140m 고락쉡에 도착했다. 라즈는 어제 로지에서 만났던 일본인 아저씨와 같은 방을 예약해놨다.
'아싸!'
식당에서 안 자고 방에서 잘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속은 불편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EBC에 가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어야 했다. 그래서 감자 야채 볶음 위에 계란 프라이 하나를 올려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배낭은 숙소에 두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출발했다. 숙소 뒤편으로 7,879m 눕체가 떡 하니 병풍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눕체를 보는 순간 동네 똥강아지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빙하지대를 감상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야생 그대로의 크고 작은 돌들이 나를 반겨줬다. 이러한 오르막 내리막이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길은 고도가 높아지는 것과는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힘든 이 순간을 버티며 계속 걸을 수 있었던 힘은, 드디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간다는 설렘과 함께 7~8,000m 대의 만년설로 뒤덮인 세계 최고봉들의 파노라마를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격스러운 순간. 그토록 바라고 기대하던 EBC에 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작은 푯말 앞에는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도 기다렸다가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 그리고 미래의 나 자신에게 보낼 영상 편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가족들과 나 자신에게 영상 편지를 찍는 순간 울컥했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외롭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끝까지 잘 해낸 스스로에 대한 감격과 성취감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나의 버킷리스트 EBC에서 뽀글이(봉지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컵라면과 같은 방식으로 조리한 라면) 먹기! 보온병에 미리 준비해온 따뜻한 물을 신라면 봉지에 부었다.
'여기서 컵라면도 아닌 뽀글이를 먹다니... '
역사적인 순간. 한입 먹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군대에서 야간 행군을 하며 먹었던 라면보다 더 맛있었다. 요 며칠 속이 불편했던 건 다른 사람 이야기였나 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맛본 뽀글이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방에 펼쳐진 세계 최고의 환성적인 만년설산들을 감상하며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마신 후 숙소로 복귀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올 때와 다르게 몸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갑자기 배가 아팠다. 더부룩했던 속이 내려가려고 하는지 뱃속에서 소리가 났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식은땀이 흐르며 몸에 힘이 빠지고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걷고 멈추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다. 수많은 돌들로 이루어진 좁고 험한 너덜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 로지가 나타났다. 반가웠지만 머리가 어질어질, 여기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였다. 도착과 동시에 화장실로 직행했다. 속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지만 체력소모가 많았는지 몸에 힘이 쫙 빠져버렸다. 7일 동안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우선은 과자와 초코바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꿀맛도 이런 꿀맛이 따로 없었다. 식당에 앉아 차분하게 휴식을 취하며 저녁을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던 핫초코도 한잔 마셨다.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천근만근 몸은 무겁고 피곤했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자기로 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뒤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내일 새벽 04시에 해발고도 5,550m 칼라파타르 정상으로 가야 한다. 내일이면 가장 가까이에서 에베레스트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했다. 밖에는 찬바람이 강하게 몰아쳤지만 그럼에도 역시 침낭 속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