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곳 칼라파타르 등정기
* 8일 차, Gorakshep(5,140m) ↔ KalaPatthar(5,550m, 일설에 의하면 5,643m라고 한다.) 3시간 30분 소요 (1시간 30분은 휴식) / Gorakshep(5,140m) →Lobuche(4,910m) 2시간 소요 → Dzongla(4,830m) 2시간 30분 소요 (총 8시간 소요)
지금까지의 모든 로지들이 방음이 거의 안됐지만 여긴 유독 심했다. 옆방인지 윗방인지 모르겠지만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몇 번이고 자고 깨기를 반복하며 밤을 보냈다. 처음 계획은 03시 50분에 일어나서 04시에 출발 예정이었다. 잠결에 시계를 보니 03시 55분이었다. 서둘러 아저씨를 깨웠다.
"아저씨! 아저씨! 일출 보러 가셔야죠."
위로 올라갈수록 방이 부족했다. 그래서 어제는 침대가 두 개인 방을 일본인 아저씨와 같이 썼다. 평소와 달리 옷을 여려 겹 껴입으며 트레킹 준비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방이 부족해서 식당 의자와 바닥에서 자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라즈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라즈를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속해서 시간이 지체되는 게 싫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안 오면 혼자 출발하려고 했다. 아저씨도 자신의 가이드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계셨다. 결국 라즈는 어제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이 녀석 어딘가에서 계속 자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더 늦지 않게 나타나 줘서 고마웠다.
04시 30분 세계 최고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와.... 대박'
하늘에는 한 점의 예술 작품이 박혀있었다. 며칠 전 팡보체에서 마주했던 밤하늘과는 또 달랐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이렇게 쏟아지는 별들과 마주하다니... 고도가 높아서일까? 정말 바로 앞에 별자리들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신기했고 또 신기했다. 이 새벽에 히말라야에서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니...
올라가면 갈수록 내 머리 위에 떠있는 북두칠성은 점점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체감하기로는 내 바로 앞에 세상에서 가장 큰 북두칠성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엄청 컸다. 나침반 같고 가이드 같았다.
이른 새벽 오직 헤드랜턴 불빛에만 의지하여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디뎠다.
'아... 너무 힘들다.'
자석이 땅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가고 서기를 반복하지 않고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상태였다. 숨쉬기가 힘든 것은 물론 발걸음을 옳기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앞쪽으로는 나보다 일찍 출발한 사람들의 헤드랜턴 불빛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헤드랜턴 불빛이 만들어내는 예술적인 대열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 뒤로 떠오르는 일출 광경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고생하며 이곳을 오르는 독특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을 보며 더 힘을 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의 자부심과 이 젊음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로 06시 전에 꼭 정상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에베레스트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하겠다는 단 하나의 집념이 나를 오르고 또 오르게 만들었다. 근데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올라가는 동안 울컥하기도 했다. 그것도 2번이나...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를 악 물고 스스로 동기 부여했다. 이왕 올라가는 거 일출 시간에 늦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큰 압박감과 함께 무리해서 등반을 했다. 출발이 조금 늦었지만 반드시 정상에 올라서서 떠오르는 일출과 마주하고 싶었다. 이른 새벽 얼마나 강한 집념으로 급하게 올랐는지 고산에 특화된 라즈였지만 나보다 한참 뒤에 올라오고 있었다. 일본인 아저씨 또한 숙소에서 같이 출발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으셨다.
도착한 것 같았는데 또 돌아서 올라가고 다시 옆으로 돌아서 올라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몰아치는 거친 호흡을 참고 또 참으며 오른 끝에 드디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해발고도 5,550m(일설에 의하면 5,643m) 칼라파타르 정상에 도착했다. 쉽지 않은 등정길이었다. 시계를 보니 소름이 돋았다. 정확히 목표했던 시간인 06시 정각이었다. 바로 앞에는 눈으로 뒤덮인 푸모리 산(7,145m)이 두 팔 벌려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는 결국 해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앞에 보이는 현지 가이드에게 영상 촬영을 부탁했다.
만감이 교차하며 영상을 촬영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울컥했다.
어제 식당에서 만난 가이드의 말과는 달리 태양이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 위로 떠오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하건대 일출시간은 06시였지만 높은 산봉우리를 넘어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옷을 여러 겹 껴입었지만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다.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었다. 바닥에는 제대로 앉기 조차 힘든 뾰족한 돌들뿐이었다. 에베레스트 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는 했지만 최고 보스임에도 로체와 눕체 뒤에 숨어 얼굴만 살짝 보여주는 모습은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추위에 덜덜 떨며 1시간 30분을 기다린 후 드디어 바로 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세계 최고봉 형님들인 로체(8,516m), 에베레스트(8,848m), 눕체(7,879m) 뒤로 2017년 10월 23일의 태양이 떠올랐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또 해 냈다는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역사적인 순간을 통해 쉽지 않았던 지난 8일간의 여정이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행복하고 감사했다. 이번 칼라파타르 등정을 통해 다시 한번 조급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분명한 목표를 갖고 해 보자고 달려들면 이룰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와준 스스로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다시 내려가기 아까울 정도로 가장 고생하며 올라온 길이었지만 맑은 날씨에 최고의 풍경을 보게 해 준 세계 최고봉에게 인사를 한 후 아쉬움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길에 엊그제 만났던 독일, 알바니아 남자 2명을 만났다. 쿰부 히말라야를 트레킹 할 경우 보통 사람들은 EBC와 칼라파타르 등정 후 바로 하산을 한다. 이들 역시 오늘 하산 예정이라고 했다.
"만나서 반가웠어. 조심히 내려가고!"
"고마워, 너도 몸조심하고."
트레킹과 여행은 물론 우리의 인생도 이처럼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동네 똥강아지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 지점에서 일본인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늦게 올라오셨지만 일출을 보고 나보다 먼저 내려가시는 길이었다. 함께 인증 사진을 찍었다. 올라가는 나의 모습을 보셨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셨다.
'역시 대한민국 군인! 역시 대한민국 육군 장교!'
감사했고 뿌듯했다. 일본인 앞에서 한국인의 강인함을 자연스레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나 또한 적지 않은 연세에 이곳을 등반하신 아저씨의 열정과 도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대단하다고 말씀드렸다. 올라갈 때와 달리 신나게 뛰어내려와서 그런지 30분 만에 로지에 도착했다. 배가 고팠다. 갈길이 멀었기에 후다닥 가방을 챙기고 무려 5,000 원이나 하는 밥 한 공기를 주문했다. 역사적인 날이기에 비상식량인 캔 참치와 튜브 고추장으로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