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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메이커 Jul 15. 2020

올림픽 펜싱 박상영, 나는 할 수 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최고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경험

2017.10.23, 월 오후


  다음 목표는 5,420m의 고개인 촐라패스(Chola Pass)를 넘는 것이다. Lobuche(4,910m)까지 다시 내려가는 길에 팡보체에서 만났던 싱가포르인 랄과 남체 가는 길에 만났던 우크라이나인 그룹도 만났다. 이들은 딩보체에서 하루 동안 고도 적응을 한 후 올라오는 길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만난 내리막 길은 걸을만했다. 그러나 잠시 후 끝없이 펼쳐지는 너덜길과 돌로 이루어진 평지를 걷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 맑고 화창한 날씨와 파란 하늘 그리고 만년설산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날씨까지 흐렸다면 중간에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어야 할 정도로 몸에 힘이 쫙 빠진 상태였다. 이대로 쓰러진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다. 이 와중에 오늘 목적지인 종라(4,830m)까지 갈 수 있을지 아니면 무리하지 않고 로부체(4,910m)에서 하루 쉬어야 할지 고민 하기 시작했다.


4일 차 팡보체 마을 로지에서 만났던 싱가포르인 랄을 다시 만났다.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은 좁고 힘든 너덜길의 연속이었지만 지나가는 트레커들과 웃으며 인사하려고 노력했었다.


  촐라패스를 넘기 위한 길은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이른 새벽 칼라파타르를 등정하며 오늘 쓸 체력을 모두 소진했는지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속은 더부룩하고 정신은 흐려졌지만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우여곡절 끝에 로부체 로지에 도착했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핫 초코와 따뜻한 물을 주문했다. 군대에서 행군할 땐 휴식을 위해 전투화와 모양말(군용 양말)을 벗었었다. 지금 히말라야에서의 나는 등산화와 등산양말을 벗고 눈을 감았다.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5점을 연달아 획득하며 한국 펜싱 에페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박상영 선수가 떠올랐다. 그리고 조용히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편안하게 쉬면서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 내내 너무 힘이 들어서 이곳에서 하루 쉬어 갈지 그냥 갈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잠깐의 휴식을 통해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충전이 된 것 같았다.


핫초코는 사랑이다.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 한다. 휴식의 정석(from 군대).


  다시 힘을 내보기로 했다. 종라로 향하는 길은 이전에 걸었던 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길이었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하기 어려운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자연의 길이었다. 로부체에서 바로 하산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곳부터 종라까지 가는 동안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은 단 3명뿐이었다. 그마저도 모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히말라야의 여러 트레킹 코스 중 쿰부 히말라야(EBC와 칼라파타르)를 목표로 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촐라패스를 넘는 사람은 훨씬 더 적다. 조용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마치 다른 세계를 걷는 것 같았다.


앞을 향해 걷다가 한 번씩 뒤를 봐줘야 한다. 앞만 보고 갔으면 놓쳤을 뒷배경. 인생에서 쉼과 돌아봄이 필요한 이유.
이때부터 갑자기 구름과 동행했다.
종라 호수. 신비스러움 그 자체.
아름답다.


  종라까지는 30분 정도 남은 상태. 어제까지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오늘은 지나가는 사람들 조차 없어서일까. 갈수록 너무 힘이 들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힘들다고 중간에 멈춰 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악 물고 마지막 힘을 짜내기 시작했다. 평지도 힘들었지만 오르막은 아주 미칠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내가 라즈에게 부탁을 했었다. 


  "라즈! 내가 힘들 때 'I can do it'이라고 외치면 'You can do it'을 외쳐줘."

  "오케이, 걱정하지 마! 그렇게 해줄게."


  "나는 할 수 있다!"


  "너는 할 수 있어!"


  힘들 때마다 큰 소리로 3번씩 내뱉었다. 트레킹 하며 수 없이 외치며 들었던 말이다. 라즈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똑똑하고 좋은 녀석 같았다. 힘든 길이었지만 할 수 있다는 외침과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며 한발 한발 내디뎠다. 로부체까지 오는 동안 평소보다 더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4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라 했던 라즈의 예상과는 달리 종라까지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걷는다고 걸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걸었던 것 같다. 이곳에는 아예 로지 자체가 별로 없었다. 로지가 없으니 당연히 방도 없었다. 이럴 수가! 큰일이다.


  '오예!'


  종라에 몇 개 없는 숙소였지만 포기하듯 방문했던 마지막 숙소에서 마지막 남은 침대 하나가 있었다. 기적이었다. 그것도 오늘의 룸메이트는 한국인 김 씨 아저씨. 얼마 만에 만나는 한국인인지 모르겠다. 머무를 수 있는 숙소 자체도 반가웠지만 이 곳에서 만난 한국인은 더 반가웠다. 올라오면서 봤던 한국인 단체 등산객 그룹과 일본인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동양인은 아예 보지도 못했다.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히말라야에 대해 아는 것도 많으셨다. 이번 트레킹을 위해 준비도 어마어마하게 해 오신 것 같았다. 멸치조림, 깻잎장 등의 반찬을 소분하여 준비해 오셨고 뜨거운 물 컵에 바로 넣어 먹을 수 있는 각종 국 블록도 준비해 오셨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면 이렇게 준비해야 하구나.' 


  많이 배웠다. 또한 휴가를 이용해서 히말라야까지 오는 여유와 체력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체력관리 잘해서 앞으로도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곳 가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내가 머문 곳 중 가장 작았던 마을, 종라.
외관만 봐도 춥다.
한국인 아저씨께서 나눠주신 양념 멸치볶음을 밥 위에 얹어 마늘 수프와 함께 든든한 저녁을 먹었다.
히말라야에 대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주신 아저씨.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티백에 차 한잔을 우려 마시며 옆 테이블에 앉아계신 백발의 노인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과거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76세의 미국인 할아버지. 믿을 수 없는 연세셨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최고령이셨다. 진짜 대박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2년 동안 시간을 보내셨었고 인도의 스위스라 불리는 최대의 휴양도시 마날리를 자주 가신다고 했다. 세계 곳곳의 자연 여행을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지금은 무려 가이드 1명, 포터 3명과 함께 약 한 달 동안 히말라야 산들을 천천히 움직이며 머무르는 중이셨다. 진심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미국인 특유의 리액션을 섞어가며 영어 듣기 평가보다 훨씬 천천히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공부는 물론 인생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에 계신 김 씨 아저씨를 보며 갓난아이가 트레킹에 도전했다며 아이를 안고 우쭈쭈 젖먹이는 모습을 연출하시기도 했다. 다양한 몸짓과 추임새를 섞어가며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편안하고 재미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하며 만난 가장 임팩트 있는 만남이었다.


  오늘 다시 한번 느꼈다. 많은 이들이 가는 코스와는 다르게 가고 있는 나 자신이 정말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늘 그랬었다.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남들과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물론 과거에는 그 다름이 싫었다. 그래서 나의 소원은 제발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같기보다는 다르게 살기를 꿈꾸는 중이며 앞으로도 다르게 살고 싶다. 남들이 정해놓은 그들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삶 말고, 한 번뿐인 인생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나답게 한 번 살아보자. 그래서 누군가의 인생에 울림을 주는 삶,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삶을 살자. 또한 오늘 오후 Lobuche에서 경험한 1시간은 휴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기보다는 때론 멈춰 서서 여유 있게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른 새벽부터 밤 까지 참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그 무엇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어제보다 더 차분하고 편안하게 긍정의 에너지를 가득 품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의 인생에 '울림'을 주는 삶을 꿈꿉니다.

916일 동안 80개 국가, 300개 도시를 방황하였고, 조금 다른 인생을 나만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중.


- 개인 키워드 : 동기부여(울림), 가족, 약자, 자신감, 리더십(영향력), 강점, 세계일주, 퇴사(전역), 도전, 성취, 강연, 공감, 글, 코칭, 관계, 멘토, 달리기(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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