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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메이커 Jul 23. 2020

검은 먹구름과 강추위, 네팔 히말라야 촐라패스 트레킹

쿰부 히말라야 촐라패스를 넘다

* 9일 차, Dzongla(4,830m) → Chola Pass(5,420m) 3시간 소요 → Dragnag(4,700m) 2시간 15분 소요→ Gokyo(4,790m) 2시간 10분 소요



2017.10.24, 화 오전


  05시 50분 아저씨의 인기척을 듣고 일어난 나는 짐을 챙기고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딱딱한 밥. 일주일이 더 지난 밥으로 요리를 한 거 같은 볶음밥이었지만 오늘도 나는 살기 위해 먹어야 했다.


딱딱한 볶음밥 그리고 내 눈높이 보다 아래에 있던 4,830m에서 마주한 구름


두둥! 이번에는 촐라패스다.


  오늘은 3 패스 중 2번째로 넘기 어려운 고개, 촐라 패스(Chola Pass)를 넘는 날이다.(Pass는 고산 속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하나의 고개) 어김없이 아침부터 속이 더부룩했다. 걸음걸이 또한 가볍지 않았다. 다행히 해가 잘 떠있어서 춥지 않게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날씨와는 별개로 촐라패스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정말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돌로만 이루어져 있는 큰 바위산이 나타났다. 스틱이 아닌 손으로 땅을 짚으며 넘어야 하는 가파르고 위험한 길이었다. 울고 싶었다. 등산인지 암벽등반인지 분간이 안 가는 코스였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한 채 멈춰 서고 다시 가기를 반복했다. 속은 더부룩했고 몸은 너무 무거웠다.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호흡과 함께 계속되는 돌 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올라가는 길에 슬로바키아인, 캐나다인 그리고 이탈리아인을 만났다. 이탈리아인 남자는 서울이나 인천에 갈 경우 알아두면 좋을만한 여행 정보를 물었다. 


  "나한테 연락해"

  "하하하"


  최고의 답이었지만 사실 나도 우리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돌아가면 우리나라도 구석구석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이 오면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소개해줘야지.


화창한 날씨, 나는 저 앞에 보이는 돌산을 넘으러 간다.
저 돌산 위 중간중간을 보면 개미보다 더 작아서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돌산의 크기를 짐작해 보시길.
이 곳을 오르며 중간에 마주한 압도적인 뷰. 이래서 멈출 수 없었던 트레킹.
내가 여기 있다고!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오르는 동안 몇 번 휘청거리기도 했다.


  '우와'


   한참을 죽을 둥 말 둥 오르다 보니 눈과 얼음이 섞인 빙하 길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길에 반해버렸다. 이 곳을 지나는 트레커들은 준비해 온 아이젠(얼음이나 눈 따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 밑에 덧신는 도구)을 착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젠은커녕 네팔 현지에서 구매한 짝퉁 등산화뿐이었다. 스틱을 활용하여 앞서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한발 한발 내디뎠다. 신기했다. 마치 영화 겨울왕국이 생각났다.


  '믿을 수 없어! 내가 해발고도 5,400m가 넘는 히말라야 빙하 위를 걷고 있다니.'


끝없이 펼쳐진 빙하 위를 걷다.
겨울왕국
인증 사진 필수지. 꽁꽁 언 빙하를 스틱으로 한 땀 한 땀 뚫어가며 이렇게 찍은 사진은 아마 내가 최초이지 않을까.
아름다움 그 자체.
다시 봐도 믿을 수 없는 촐라패스를 향해 가는 빙하 트레킹.
빙하 위에서도 외치는 '나는 할 수 있다!'


  신기한 마음에 힘듦도 잠시 잊은 채 빙하 위를 걷고 또 걸으며 촐라패스 정상을 향해 올랐다. 마냥 즐거웠다. 빙하 길이 끝나고 다시 내 앞에 돌로만 이루어진 가파른 산이 나타났다. 미칠 듯이 힘들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두 발로 오르고 있는 건지 양 손에 쥔 스틱을 땅에 찍으며 억지로 기어 올라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 앞에 드디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칼날같이 쪼개진 돌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듯한 해발고도 5,420m 촐라 패스 정상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서양인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와 다른 코스인 반대편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양옆 앞 뒤 할 것 없이 어디에 시선을 두더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만년설산들의 파노라마는 심히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부터 사방에 펼쳐진 최고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구름이 시야를 조금 가려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정말 최고였다. 그동안 몸이 조금 힘들었어도 이러한 순간과 마주할 때면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 거 같았다.


촐라패스에 올라 룽다 앞에서 만년설산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어제 종라에서 만나 촐라패스를 함께 넘은 한국인 아저씨.
다시 봐도 그냥 달력이다. 촐라패스 정상에서.
다들 올라올 땐 죽을 만큼 힘들어했지만 촐라패스 정상에서의 휴식 시간은 거짓말처럼 평안해 보인다.

  360도 사방 어딜 둘러봐도 아름다움을 뿜어내기 바쁜 촐라패스 정상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한 후 당낙(탕낙)으로 향했다. 어제까지는 맑고 푸른 하늘이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등장한 낮게 깔린 구름이 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촐라패스 정상까지 올라올 때와는 비슷한 듯 또 다른 길이었다. 평지도 아닌 바위를 쌓아놓은 듯한 내리막길은 상당히 위험했다. 발을 헛디디는 순간 바로 저세상으로 가겠지? 


  "조심해! 가파른 길이야."


가파르고 미끄러웠던 촐라패스에서 내려가는 길. 발을 헛디디는 순간... 


  반대편에서 올라오던 외국인 두 명이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들이 보기에도 위에서 내려가는 내가 아찔해 보였나 보다. 바람막이를 두 개나 껴입고 야크털로 만든 모자까지 쓰고 있었지만 너무 추웠다. 태양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온 천지에 먹구름과 강풍만 가득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하며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오르막 내리막이 끝도 없이 반복된 후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리막을 지나 드디어 당낙(탕낙)에 도착했다. 


  '아, 살았다.'


시야를 확보하기 조차 어려웠던 내리막길.
오르막보다 더 어렵고 조심해야 하는 내리막 당낙(탕낙) 가는 길.


  안도의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하루 쉬어 가고 싶었다. 그러나 로지 주인으로부터 3시간 정도 열심히 걸으면 이곳을 넘어 다음 마을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조금 힘들더라도 그렇게 할 경우 내일 하루 고쿄에서 조금 더 여유로운 일정을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잠시 고민 후 조금 무리해서라도 움직여 보기로 했다. 배는 고팠지만 속이 더부룩해서 무언가를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에너지가 필요했기에 토스트에 계란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식사를 마치고 등산화와 양발을 벗고 최대한 편한 자세로 핫초코 한잔을 마셨다. 꿀 맛도 이런 꿀 맛이 없었다. 하지만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었다.


점심은 토스트 2조각과 계란 프라이. 이거 먹고 어떻게 여길 트레킹 했을까...
내 사랑 핫초코를 마시며 꿀휴식. 발이 내 발 같지 않았다.


  식사 후 방을 예약하기 위해 아저씨의 가이드 람(Lam)을 먼저 보내고 우리는 내 포터인 라즈와 함께 천천히 가기로 했다. 삭막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는 바위와 돌 밭의 연속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아기공룡 둘리가 생각나는 고줌바 빙하가 나타났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저씨께서는 그때그때 히말라야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이 빙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불과 얼마 전에 다 녹아 사라졌다고 했다. 빙하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흔적만으로도 과거 이곳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만약 지금도 빙하가 있었다면 이곳을 지나가는 게 더 어려웠겠지? 

신비로움의 끝판왕이었던 고줌바 빙하.
고줌바 빙하.


  갈수록 날씨가 안 좋아지는 거 같았다. 온 천지가 구름으로 뒤덮였고 끊임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었다. 흐린 날씨로 인해 시야가 좁아졌다. 오로지 내 두 발만 보였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인해 몸이 너무 추웠다. 평소와 달리 라즈가 유독 빨리 걷는 거 같았다. 내가 천천히 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빨리 가는 녀석, 오늘따라 은근히 호흡이 맞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이 코스가 처음이어서 한계에 다다른 걸까? 그래도 라즈는 내가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면 '너는 할 수 있다'를 외쳐줬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아저씨께서 추천하신 렌조 라 패스(Renjo Ra Pass)까지 넘어보고 싶었다. 3 Pass 중 상대적으로 가장 괜찮은 코스라고 하셨다. 바로 라즈에게 제안했다. 


  "라즈! 우리 렌조 라 패스까지 같이 넘어보자. 어때?"


  그러나 라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촐라패스를 내려오면서부터 갑자기 변한 날씨와 삭막한 길.  영상 중간에 라즈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누군가의 인생에 '울림'을 주는 삶을 꿈꿉니다.

916일 동안 80개 국가, 300개 도시를 방황하였고, 조금 다른 인생을 나만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중.


- 개인 키워드 : 동기부여(울림), 가족, 약자, 자신감, 리더십(영향력), 강점, 세계일주, 퇴사(전역), 도전, 성취, 강연, 공감, 글, 코칭, 관계, 멘토, 달리기(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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