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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메이커 Jul 12. 2020

나는 마을 사람을 총출동시키는 5살 꼬마 아이다

어린 시절 호기심이 부른 대참사

  어린 시절 시골에 있는 셋째 이모네 댁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공감하기 쉬울 것이다. 시골에는 별다른 놀거리가 없다. 또한 당시 주변에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그저 이모네 댁 마당에서 강아지, 그리고 닭과 함께 뛰어노는 게 전부였다. 여름철에는 근처 냇가에 가서 물장구치며 놀기도 했다. 어느 날 이모께서 나를 불렀다.


  "아이 건아, 이거 저기 이모부 갔다 드려라."

  "네!"


  이모는 사용하신 성냥 갑을 나에게 건네셨다. 아무 생각 없이 성냥 갑을 들고 이모부가 계시는 곳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거 뭐지? 불 피우는 거 아닌가? 나도 해보고 싶은데.'


  당시 나는 어느 또래 못지않게 세상에서 가장 왕성한 호기심을 보유한 5살짜리 남자아이였다. 이모부께 가져다 드리라는 이모의 말씀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무언가에 홀리듯 집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계시던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집 밖에 있는 논으로 갔다. 당시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이모께서 이 성냥으로 불을 피우고 무언가를 태우던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이곳에서 불을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난생처음 사용해보는 성냥 한 개비를 들고 불을 피우려 하는데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집요한 마음으로 여러 번의 시도를 하며 성냥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성냥에 불이 붙자마자 논 가장자리에 있던 풀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주변 풀과 벼를 베고 남은 밑 단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우와, 불이 붙는구나! 신기하다.'


  그러기도 잠시, 10초쯤 지났을까? 갑자기 바로 옆에 쌓여있던 3m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볏 단에 불이 옮겨 붙었다.


  "불이야, 불이야!"


  담장 너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는지, 갑자기 불이 났다는 큰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마을 사람들이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 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자기 마을 어른들이 모두 나오셔서 가장 가까운 수도꼭지가 있는 곳부터 볏단이 타오르는 논까지 일렬로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큰 물동이와 세수 대야를 일사불란하게 옆으로 전달했다. 볏단으로 옮겨 붙어 번지고 있는 불을 끄기 위해서였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요."

  "그러게, 왜 갑자기 불이 난 거야?"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마을 어른들은 어리둥절해하셨다. 다행히 볏단에 붙은 불은 순식간에 꺼졌다. 아니 정확히는 순식간에 다 타서 사라져 버렸고 볏단이 있던 주변 잔불들을 껐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 볏단은 겨우내 소에게 여물로 주기 위해 추수 후 촘촘히 묶어서 쌓아 올려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불이 잘 붙어도 너무 잘 붙었던 것이다. 불길이 진정되자 이모는 놀라시며 앞에 서있던 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당시 내가 있던 방에는 천장 여기저기에 숙성 중인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코를 찌를듯한 메주 냄새를 맡기도 전에 내 머리에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꽝!"

  "아이고! 이놈의 자식아, 왜 거기 가서 불장난을 한 거야!"


  이모는 불을 끄는 동안 들고 계셨던 철로 된 세수 대야로 내 머리를 한대 내려치셨다. 그리고 나를 꾸짖으셨다. 어린 나는 모든 게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했다. 단지 호기심에 나도 이모처럼 작은 불을 피워보고 싶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논에 있던 풀들과 거대한 볏 단까지 다 태워버리다니...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여기까지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날 저녁에 밥은 먹었는지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보고 뭐라고 하셨는지, 그해 겨울 이모네에서 키우던 소들은 굶지는 않았는지 모든 것이 궁금하다. 요즘도 가끔 이모네 댁에 방문하면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그때 이야기를 꺼내시며 웃으시는 우리 이모. 


  '아이고, 네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냐. 그때 기억은 나냐?'


  나를 보실 때마다 그때 나무라시며 혼내셨던 게 마음에 걸리신다며 주름 가득한 얼굴로 웃으시는 우리 이모를 보면 괜히 죄송스러우면서 감사한 마음이 몰려온다. 이제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 마을 전체가 불에 타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던 일이다. 한 아이의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성냥개비 한 개의 불이 마을 사람 모두를 총출동시키며 한 바탕 불 끄기 대소동을 일으켰던 꼬마 아이는 지금 어른이 되었고 그때를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태운 볏단이 우리 이모네 볏단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다른 이웃들의 볏단이었으면 우리 이모는 그분들께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하셨어야 했을까. 나는 얼마나 더 혼났어야 했을까. 그 일의 영향인지 내 안에는 조금 더 신중하고 침착한 성격이 있는 것 같다. 그때 일 자체를 감사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더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음에 감사하며 호기심과 시도도 좋지만 막연한 호기심 뒤에는 위험도 따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호기심 많은 어른이지만 내가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면 그 아이의 호기심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호기심도 좋지만 어릴 때는 어른들 말도 잘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줘야겠다.


  '이모, 고맙고 죄송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다가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에게 웃으며 이 이야기 들려주세요. 사랑해요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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