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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메이커 Aug 09. 2020

최악, 할 수 있다는 말이 무시당했다

히말라야 렌조 라 패스를 넘으며 바라본 고쿄 호수에 반해버렸다.

* 11일 차, Gokyo(4,790m) →Renjo La Pass(5,360m) 3시간 30분 소요 → Lumde(4,368m) 2시간 30분 소요



2017.10.26, 목 오전


  먼길을 떠나는 날이 밝았고 정확히 06시 30분이 되자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여유롭게 트레킹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아들! 먹는 거에는 절대 돈 아끼지 말아라.'


  엄마가 늘 해주시던 말을 기억하며 평소와 달리 큰 맘먹고 계란 프라이를 2개나 주문했다. 거기에 아침부터 핫초코까지 주문을 하니 네팔 물가 치고는 말도 안 되는 약 10,000 원이라는 금액이 청구된 영수증을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히말라야, 그것도 해발고도 5,000m였기에 납득할 수밖에 없는 금액이었다.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 먹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맛있고 든든한 아침 식사였다.


아침식사 비용 10,000 원(계란이 무려 2개라는 사실)
고쿄 호수
드디어 렌조 라 패스다
무보정, 노 필터, 노 포토샵
또 가고 싶다


  07시 40분 드디어 마지막 고개인 렌조 라 패스(Renjo La Pass)를 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새로움은 늘 두렵고 떨리지만 설레기도 하다. 출발과 동시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오르막이 나타났다. 페이스 조절을 위해 호흡을 크게 내뱉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속이 더부룩하니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침 기온이 낮아서 그런지 목도 따끔거리며 아프고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몹시 안 좋았다. 이제는 적응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적응할 수 없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본격적인 오르막이 나타났다. 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적응되지 않는 오르막길. 이제는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해도 오르기 전부터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예상대로 이곳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앞을 보고 싶었지만 가파른 경사로 인해 땅만 보였다. 어제 고쿄 리 정상에 올라갈 때처럼 경사가 많이 가팔랐다.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며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디뎠다.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정말 힘들었다. 숨은 퍽퍽 막히고 몸에 힘은 쭉 빠졌다. 거기에 목까지 아팠다. 정말 최악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졌다.


  '(한숨 가득) 아... 나 렌조 라 패스까지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순간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을 때면 불안한 마음이 계속해서 내 안에 자리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코스여도 어떻게 해서든 넘어보고 싶었다.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지난 10일 동안 잘 해왔기에 나는 다시 이를 악 물었다. 입으로 숨을 쉬며 목으로 침을 삼킬 때마다 따가움을 넘어 아픈 느낌의 불편함까지 더해졌다. 엄살 부리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그래도 내 안에는 이왕 시작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이 고개를 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은 물론 그냥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나는 평소처럼 스스로에게 동기부여 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건아! 너는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잘 해온 것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해낼 수 있어.'


입은 살아있었다
현지 날씨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영상
임의로 만들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봉우리들
여기를 넘어
뒤를 보면 이런 뷰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에베레스트 + 고쿄 호수)
아름답다(목소리는 완전히 가버렸다)

  그 어느 때 보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한발 내딛고 멈춰 서고 또 한발 내딛고 멈춰 섰다. 그렇게 가고 서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는 괴로운 시간의 연속.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쉽지 않았다. 제법 올라왔겠지라는 마음으로 앞을 보니 이번에는 더 가파르고 높은 봉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미치겠다. 나 렌조 라 패스 괜히 왔나...'


  너무 힘든 나머지 후회라는 말을 내뱉기 직전까지 왔다. 도저히 못 갈 거 같아서 라즈에게 휴식을 제안하며 뒤를 돌아봤다. 어쩌다 돌아본 뒷 풍경에는 저 멀리 보이는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와 고쿄 호수가 보였다. 산과 호수는 이 어렵고 힘든 나의 사정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듯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보니 힘들었던 시간을 아주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여전히 거칠고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미리 준비해온 캔디와 물을 섭취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정신이 몽롱했지만 이를 악 물고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때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징징대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힘들었다. 하나의 패스(Pass, 고산 속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하나의 고개)를 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힘을 내고 또 힘을 냈다. 


  '며칠 전 촐라 패스도 넘었는데 이번 렌조 라 패스도 넘어야지.' 


  돌 길도 아닌 돌 산을 넘는다는 것은 내 한계와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무려 3시간 30분 만에 드디어 5,360m에 위치한 렌조 라 패스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면 사람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뷰

  '헥헥... 왔어. 드디어 왔어. 내가 또 해냈다고...'


  정말 힘들어서 미쳐버릴 거 같았다. 하지만 막상 정상에 올라서서 내 눈 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히말라야 풍경과 마주하는 순간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또한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며 결국에는 또 해냈다는 성취감이 올라오면서 내가 느꼈던 모든 고통을 잊게 하는 것 같았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힘들어서 곧 죽어도 인증사진은 찍고 가시죠
웃어지지 않았어
드디어 또 해냈습니다
좋다
나의 포터(짐꾼) 라즈와 함께 한 장
렌조 라 패스를 넘어 내려가는 방향으로 보이는 뷰 역시 예술

  렌조 라 패스 정상에는 촐라 패스 정상만큼의 많은 이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날씨가 좋아서 사방으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뷰는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또한 에베레스트 봉우리는 어제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고쿄 호수와 함께 한눈에 보이는 히말라야 만년설산들의 전체적인 풍경은 예술 그 자체였다. 이러한 풍경과 마주하며 정상에 서있는 동안은 거짓말처럼 없던 힘이 솟아나는 거 같았다. 죽을 만큼 힘들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맛에 중독되어 계속해서 히말라야를 오르고 또 오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목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올라오는 동안 계속해서 마주한 강한 맞바람으로 인해 콧물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산너머 산이라고 오늘의 컨디션은 정말 최악이었다. 캔디와 물을 섭취했지만 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체력이 전부 소진된 거 같았고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누군가의 인생에 '울림'을 주는 삶을 꿈꿉니다.

916일 동안 80개 국가, 300개 도시를 방황하였고, 조금 다른 인생을 나만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중.


- 개인 키워드 : 동기부여(울림), 가족, 약자, 자신감, 리더십(영향력), 강점, 세계일주, 퇴사(전역), 도전, 성취, 강연, 공감, 글, 코칭, 관계, 멘토, 달리기(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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