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의 행간엔 늘 ‘책’이 있었다. 바쁜 일상 속 틈틈이 읽는 책 한 권만큼 나의 워라밸 라이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도 없다. 어떤 책이든 저마다의 교훈을 담고 있고, 내가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같은 책이라도 다른 해답을 보여준다. 미술책에서 사랑을 배우기도 하고, 에세이에서 청소법을 익히기도 한다. 오늘 내가 읽고 추천한 책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발견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사실 나는 ‘먹방(먹는 방송)’ 콘텐츠를 이해 못 한다. 한 번도 먹방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며, 기괴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내 속이 다 울렁거린다. 반면, 음식에 관한 글에는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는데 먹을 것에 대해 묘사하는 글을 읽으면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진다. 책꽂이 한 편에는 <밥 이야기>, <먹이는 간소하게> 등 음식 에세이를 여러 권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음식에 대한 책도 좋지만, 특정 시기의 특정 기분에 나를 구원해 주는 음식에 대한 책을 소개하려 한다. 직장인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아침 식사’와 격려의 말조차 버거울 때 나를 든든하게 채워줄 ‘위로의 음식’에 관한 책이다. 다 읽고 나면 오늘도 고생한 나를 위해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질 것이다.
한국의 모든 아침 풍경, <조식 :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민음사 계열 브랜드 세미콜론에서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소개하는 ‘띵’ 시리즈를 펴냈다. 애정 하는 한 가지 대상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내며 출판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아무튼’ 시리즈의 음식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나는 아무튼 시리즈에 이어 띵 시리즈까지 소장해야 하는 과업에 당면했다. 시리즈의 첫 권은 하루의 첫 끼니인 ‘아침’에 관한 책이다. <씨네21>의 기자이자 <출근길의 주문>의 저자 이다혜가 쓴 음식 에세이라니, 게다가 표지에는 계란 프라이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고양이가 사랑스럽게 웃고 있다.
우리말 ‘아침’은 Morning과 Breakfast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아침밥을 넘어서 아침에 대한 모든 단상을 이야기한다. “매일 아침 네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라는 말을 프러포즈랍시고 떠드는 (한심한) 남자들의 이야기부터 나이와 함께 먹는 1월 1일 떡국, 하늘에서 먹는 기내식과 여행지 호텔의 조식, 수능 날의 아침부터 소풍날의 김밥, ‘식후 30분’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밀어 넣는 병원 밥까지. 한국인이 공감할 수 있는 모든 아침의 추억이 저자의 경험과 맛깔스럽게 버무려졌다. 그중에서 나를 포함한 자취생 직장인의 마음을 가장 울리는 대목은 역시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일 것이다.
아침밥은 먹기 쉽지 않다. 밥을 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동일할 때, 아침은 가장 먼저 생략되는 끼니다. 아침밥이 중요하다는 말, 아침을 거르는 법이 없다는 말에는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이 확보되어 있다거나 아침을 차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속뜻이 있을 때도 적지 않다.
나의 엄마는 평생 전업주부셨고, 방금 한 음식이 맛있다는 신조 아래 매일 아침 새로 밥을 짓고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였다. 나는 매일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반찬이 다른 두 개의 도시락을 가방에 넣은 채, 엄마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등교하곤 했다. 그렇게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독립한 후로는 아침에 무언가를 먹은 기억이 없다. 한때는 매일 아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밥처럼 마시기도 했으나 그 타격인지 만성 위염을 얻게 된 후로는 아침마다 빈속의 쓰라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신발장 앞까지 따라와 김밥을 입에 넣어주던 엄마의 고마움은 역시 독립한 후에나 깨닫게 되는 법이다. 유일하게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는 때는 바로 여행 중이다. 남이 차려주는 음식과 여유로운 시간이 보장되는 여행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매번 여행의 끝 무렵엔 한국으로 돌아가 아침밥을 챙겨 먹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꿀맛 같은 아침잠을 이겨본 적은 없다.
요리를 못하지만 요리책을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3분 만에 완성할 수 있는 다양한 아침 레시피를 모은 <후다닥 아침 레시피>와 <귀차니스트 즈보라의 아침밥> 세트를 즐겨 읽는다. 단 한 번도 책 속 레시피를 실행해본 적 없지만, 주말 저녁이면 책 속에서 먹고 싶은 레시피를 심도 있게 고르며 행복한 상상 속에서 잠이 들곤 한다. <조식>을 읽으며 나는 또 꿈을 꿨다. 출근 전 따뜻한 차에 토스트를 먹은 후 여유롭게 맞이하는 아침을. 모든 기자가 그렇듯 야행성인 저자는 충고한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된다. 샛별 배송도 주문 마감은 전날 밤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아침 식사를 꿈꾸는 직장인이라면 전날 밤부터 충분한 수면과 다음 날 아침의 메뉴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굿나잇, 그래야 굿모닝.”
말보다 따뜻한 온기, <음식의 위로>
책을 고를 때 늘 나의 직감을 믿는 편이다. ‘제목, 표지(가장 중요하다), 저자’ 세 가지가 마음에 들면 바로 구입하는 편이고, 실패한 적은 없다. 이 책 역시 ‘다친 마음을 치유할 레시피 여행’이라는 소제목과 식재료 앞에 경건하게 두 손을 모은 표지 그림, <뉴요커>에서 10여 년 간 레스토랑 기사를 담당했으며 <시카고 트리뷴>에서 음식 담당 기자로 7년간 활약한 저자 에밀리 넌의 이력에 반해 선택했다.
처음엔 Olive 예능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처럼 힘들 때 힘이 불끈 솟는 음식을 찾아 떠나는 유쾌한 여행을 떠올렸다. 매주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으며 흥미로운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키 크고 잘 생기고 유머 감각 넘치는 남자친구에게 별 모양 백금 다이아몬드가 세 개나 박힌 티파니 약혼반지를 받는 저자는 내가 상상하던 <뉴요커> 에디터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불과 2년 반 후 그녀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랑하는 친오빠가 갑작스럽게 자살했고, 힘든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약혼남에게 버림받았으며,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통장 잔고에 240달러밖에 남지 않은 채 동거하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그녀가 자신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비난할 줄 알았던 수많은 지인이 그녀를 위로하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며 ‘위로 음식 투어’를 제안한다. 친언니 일레인은 팜스프링 근처 사막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흔쾌히 내어줄 뿐 아니라 8주에 5000달러(약 600만원)나 하는 호화스러운 알코올 중독 재활 기관의 모든 비용을 대주고, 자신의 전담 미용사에게 맡겨 “라푼젤처럼” 머리를 바꿔주는가 하면 베라왕 드레스 여러 벌과 그에 어울리는 신발, 조지 클루니를 닮은 헬스 트레이너까지 붙여준다. 그야말로 드라마 여주인공의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위로의 음식’에 관해 물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의 온기가 담긴 음식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끓여준 영혼의 닭고기 수프나 엄마표 김치찌개 같은 것 말이다. 저자의 ‘위로 음식 투어’ 역시 아늑하고 화목한 집에 대한 갈망의 여정이다. 오래 잊고 지내던 그녀의 친척들과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며 그녀는 생각한다. “이 가족은 모두 함께 집에 있는데도 너무나 평화로웠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감정 기복이 심하고 변덕스러운 어머니와 무신경한 아버지가 만든 불행한 유년 시절은 저자를 종종 실의에 빠뜨린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족 모두와 연을 끊은 지 오래고, 외톨이처럼 남겨진 아버지는 우울증에 걸렸다. 구세주인 줄 알았던 일레인 언니는 동생을 바꾸기 위해 멋대로 돈을 쓰고는 ‘너 때문에 많은 돈을 허비했다’고 상처 주기 일쑤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해체된 가족을 합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아버지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언니와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구걸했지만, 결국 절망한다. 그녀는 지옥의 끝에서 기적처럼 깨닫는다.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절묘하게 맛이 간 가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에밀리 넌은 길고 긴 위로 음식 투어 끝에 드디어 스스로를 억누르던 죄책감에서 벗어나, 외면하던 오빠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 직업, 집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주방 보조로 취직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주 6일을 뜨거운 주방의 열기와 칼의 상처 속에서 일만 했다. 요리에 집중해 계속 썰고 젓다 보면 “내가 더 이상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만 버티고 그만둘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두 달 만에 그녀는 근육이 붙어 놀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믿음이 없을 때조차 음식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놀라움을 안겨주며, 우리를 달라지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열린 마음으로 나눠 먹으라. 그러면 똑같은 선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위로받았다.
에밀리 넌이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기쁠 때도 늘 요리가 함께했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주거나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해준 음식을 함께 먹으며 자신을 치유했다. 책에는 햄 비스킷, 스푼브레드, 그리츠, 스크래플 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미국 남부 음식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녀가 직접 개발했거나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레시피들은 요리책보다 간단하지만,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그림은 한 장도 없다. 오히려 그 점이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상상력을 더해줘서 좋았다.
정말 힘들 땐 물 한잔 소화하기가 힘들다. 나를 위해 요리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때라도, 그 사실에 슬퍼할 시간에 스스로 위로의 음식을 요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술 뜨자마자 기분이 풀릴 나만의 레시피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다. 그래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도 위로의 말보다 끝내주는 음식을 건넬 수 있을 테니.
데일리타임즈W 김수영 기자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