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여해 Jan 27. 2022

제주 북쪽 핫한 관광지를 걷는다 : 올레 17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8.1 km

# 광령 1리 사무소 ~ 간세라운지x관덕정분식

# 상징 : 동문시장

# 2021년 6월 2일 광령 1리 사무소 ~ 도두봉 13시 30분 ~ 19시 45분 (6시간 15분)

# 2021년 6월 9일 도두봉 15시 45분 ~ 간세라운지x관덕정분식 18시 45분 (3시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6~7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23




전날 한라산 성판악 코스로 생애 첫 백록담 등반을 했다. 하루 쉬고 올레길을 걸을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몸이 움직여지고 무엇보다 예정했던 날에 비 소식이 있어 일정을 변경해보기로 한다. 올레 바이러스 급성 감염 증상 중에 하나다. 하루라도 올레길을 가지 않으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17 코스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하니 13시 30분이다. 



근심을 없애보자 : 무수천 숲길


17코스의 시작은 중산간 마을이다. 한라산에서 시작한 하천이 지난다. 바로 광령천이다. 올레길에선 무수천, 복잡한 인간사의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의 하천으로 안내된다. 하지만 물이 없다는 뜻으로 무수천이기도 하다. 제주는 구멍이 뻥뻥 뚫린 현무암을 보면 유추할 수 있듯이 비가 내려도 금세 땅속과 바다로 빠져버려 땅 위엔 물이 잘 고이지 않는다. 그래서 하천은 보통 말라있다. 제주의 모든 천이 ‘무수천’인 것이다. 17코스에서 따라 걷는 하천은 한라산에서 시작되어 외도 앞바다까지 가 닿으니 예부터 사람들에게 민물을 제공해주는 귀한 천이었으리라. 



무수천 숲길이라고 되어 있어 그간 올레길을 걸으면서 봤던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어둡고 혼자 걸으면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숲길일까봐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도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의 시멘트 포장길이었다. 그리고 하천을 따라가는 길 치고 하천이 잘 보이지 않고, 물소리도 들리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육지에서 보통 이렇게 하천을 끼고 걸으면 콸콸 또는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데 말이다. 밭들이 이어져 사람의 손길이 있는 것이라는 안심을 안고 걸을 수 있다. 



하천이 이렇게 가끔 보이는데, 색깔이 까만 현무암이 아니다. 왜 까만 돌이 아니고 회색빛의 바위일까? 궁금해진다. 제주도에 머물면서 지질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지나가는데 가짜 간세(?)가 있어서 재미있어 찍었다. 제주 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님의 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에 따르면, 올레길의 쓰레기 치우기는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들의 협조를 요청하게끔 했다는데, 아마 그 일환으로 지자체에서 만든듯한 짝퉁처럼 보인다. 약간 서투르지만, 귀여운 제주 만의 느낌이 있다. 


카카오 맵에 우회로와 원길이 있어서 왜 우회길이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해안가에 날씨가 안 좋을 때 그리고 새들이 알 낳는 위치와 시기일 때 우회로가 있었는데, 여기는 왜 그럴까? 했는데, 우회로가 있을만했다! 내려갔는데 천 건너편에 화살표가 있어서 순간 당황했다. 곧 미소가 나왔다. 천을 건너는 거구나! 너무 신나잖아! 비 소식 전 날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즐겁게 하천을 건넜다. 


여전히 광령천 줄기를 따라 : 외도 마을길 


외도 마을길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밭,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탑 위에 솟대처럼 새가 앉아있다.



축구장과 운동장, 119 센터를 지난다. 출동이다! 경찰 테마 놀이터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이 출동이다! 놀이터는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지속적으로 있다. 상수원으로부터 4km 지점까지를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야영, 취사, 수영, 낚시 등이 금지이다. 멀리 한라산이 멋지게 보인다.



달 밝은 밤 은은한 달빛을 보러 오고 싶어라 : 월대


곧 월대천 즉, 외도천으로 이름이 바뀐다. 월대천이 되자마자 물 색깔이 초록빛을 내면서 양 옆에 나무들이 멋지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팽나무와 250년이 넘는 소나무가 있다고 하니 이 지역 평균 나이는 기본 300이 넘겠구나! 월대는 조선시대 때 선비들이 찾아와 시를 읊던 곳으로 유명하다. 나무들이 천으로 늘어진 모습이 장관이다. 수면 위만 멋있는 게 아니라 물속은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기 때문에 뱀장어와 은어가 서식하는 생태 하천이다. 이곳에서 잡히는 은어는 임금 진상품이어서 보통 사람은 함부로 잡을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 모든 자연이 모두 '임금' 것이었다니 그 시절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휘영청 보름달이 뜨는 날 다시 와보고 싶다. 


월대천의 풍류를 느끼며 조금 걷다 보면 곧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또, 삼별초의 숨결을 만난다. 삼별초가 제주에 주둔했던 동안 주 보급 포구였다고 한다. 아마 이곳으로 나른 물자를 항파두리성으로 이송했을 것이다. 17코스와 16코스의 삼별초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작지작지가 몽돌몽돌 : 알작지 해변


하천 올레가 끝나고,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이제 해안 올레로 바뀐다. 전국 탐앤탐스 중에 최고의 뷰가 아닐까 싶은 탐앤탐스를 지난다. 학부 때 24시간 하는 탐앤탐스에서 민트맛 커피 참 많이 마시면서 공부했는데. 갑자기 학부 때 기억이 확 몰려왔다.  



외도교를 건너면 이제 내도동이다. 외도 포구를 지나 너무 작아 놀이터 같은 알작지 해변을 지난다. 알작지는 반질반질하면서 둥글고 귀여운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다. 바로 옆에 몽돌 해수욕장도 있다. 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알이고, ‘작지’는 돌멩이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3개의 하천 (도근천, 어시천, 무수천)이 만나는 상류 지역에서 분포한 하성(河成, 하천 하, 성 성) 자갈층이 바닷가로 운반되고 파다의 풍화작용에 의해 해안을 따라 형성된 것이다. 많은 모래사장이 뒤에 생긴 ‘해변 카페거리’에 의해 모래의 유실로 외부에서 모래를 가져다가 부어야 할 지경이듯이 이곳의 알작지 해안도 주변 개별로 인해 점점 자갈이 유실되고 있다.  



19코스에서 보았던 방사탑이 이곳에도 있다. 내도동에는 총 6기의 방사탑이 있었으나 1기만 남아 있고,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쪽 해안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제주 북쪽 바당 올레 : 해안도로를 따라서 


원래 오늘 목표로 했던 해안 올레가 나와서 멈출까 갈까를 고민하며 카페에서 쉬어본다. 한라산 다음날에 6km 넘게 걸었음에도 생각보다 멀쩡해서 좀 더 가보기로 결정한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이호테우 해변까지 이어지는 바다 올레이다.

 


익숙한 듯 다른 용암 대지와 바다, 그리고 잡초들이 어우러진 길이다. 아름답다. 날씨가 살짝 흐리고, 저녁 6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평소에 보던 바다 올레와 느낌이 또 다르다. 좀 더 서늘한 느낌이다. 곧 현사포구가 나오고, 이호 테우 해변이다. 18코스에서 본 삼양검은모래해변처럼 거무죽죽한 흑사장을 가지고 있다. 


등대가 말 모양으로 하얗고, 빨갛게 두 개가 있다. 예쁘거나 아름답다기 보단 조금... 이상하다. 그냥 등대 모양이고, 그냥 하얀색인 게 훨씬 예쁠 것 같다. 그런데 이게 하늘에서 보면 엄청난 랜드마크가 된다. 비행기로 이착륙할 때 하늘에서 보이는 말 모양의 등대로 이호동을 인디케이션 할 수 있고, 이를 중심으로 지리와 지형을 관찰하기 좋다. 그냥 이호 테우 해변을 지나가면서 받았던 느낌보다 하늘에서 보고 나서 훨씬 말 모양 등대가 좋아졌다. 


이곳에선 쌍원담을 볼 수 있다. 원담을 처음 본 게 올레길을 처음 걸었던 올레 20코스에서였는데, 여기서는 무려 '쌍'원담이라니. 원담은 쉽게 말해 그냥 돌담이다. 제주에 널리고 널린 돌로 쌓은 담이 바다에도 있는 것! 밀물에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가두어 잡는 방식의 어업을 위한 담이다. 총길이가 450m로 제주에서 가장 큰 원담이며 이호동 백개동 마을에 있던 '모살원', '물쏜원'을 이곳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도두 추억의 거리


도두항까지 이어지는 도두 추억의 거리엔 오징어 게임에 나올 법한 게임들을 복원해두었다. 그런데 오른쪽에 위치한 놀이들보다 왼쪽에 있는 바다에만 눈이 쏠린다. 


아기자기 도두항 


올레길을 지나다 보면 크고 작은 포구, 항구들을 많이 보는데, 사실 도두항은 그중에서도 중간 이상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자기하다'는 느낌이 든다. 신경을 많이 써서 도두항 주변을 꾸몄다. 자칫 잘못하면 과할 수 있는 장식인데, 세련됐다. 무지개 빛깔로 꾸며놓은 것, 벽화, 조형물 등이 도두항이랑 잘 어울린다. 


도두항을 지나 도두봉까지 간다. 


제주 서쪽 해안의 일몰 : 도두봉


도두봉은 제주공항 북쪽 해안가에 있고, 해발 높이 63.5m이다. 공항에서 가깝고도 또 쉽게 오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나도 제주에 도착한 날 도두봉에 올랐는데, 포토존이 있는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부분이 있었다. 저녁에 가니 줄 서는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이런 곳에 와서 포토존에서 사진만 찍고 이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 보고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나의 지적인 허영과 욕심이 범벅된 강박이니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깊은 관찰은 할 수 있으나 잘 해결되지 않을 때에 문득 떠오르는 짜증은 side effect 가 아니라 adverse reaction 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사진만 찍고 가진 않을 것이다. 계속 이렇게 책을 팔 것이다. 


「제주도 지질여행 2020 개정증보판」  p. 38에 나오는 도두봉에 대한 설명이다. 


“도두봉은 일차적으로 수성화산 분화 작용에 의해 응회구 형태의 화산체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됐다. 기저부에 응회암층이 형성되었고, 응회암층에 의해 물과 마그마의 접촉이 차단되면서 화산 분화 형태가 스트롬볼리형으로 바뀌어 분석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화구 내부의 가스 압력이 감소하자 용암은 북쪽 해안가로 흘러내려가고, 일부는 응회암층을 관입한 것으로 보인다.”  


도두봉은 일단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나서 생기는 수성화산 형태로 생겼다. 그때 폭발한 화산쇄설물들이 쌓여서 둥그런 '봉'의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응회암이다. 봉이 된 이후에 마그마는 더 이상 물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 화산 분화 즉, 스트톰볼리형 분화로 바뀌어 분석구가 만들어졌다. 이후 사이다에 김 빠진 것처럼 화산 내부의 가스 압력이 줄어드니 용암은 스멀스멀 해안가로 흘러갔고, 어떤 것은 부드러운 응회암층을 뚫고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누리끼리한 색깔의 암석이 응회암층이고, 제주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탄색의 바위가 해안가로 발달한 용암류의 흔적이다. 


제주에 도착한 맑은 날 낮에 방문했던 도두봉 풍경. 같은 곳 다른 느낌.


또 도두봉이 북쪽 해안에 바로 접한 높은 지대라 그런지 이 전에 도원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1,150년부터 있었다. 도원봉수대 터를 알려주는 표지석에 굉장히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평시에는 한 번, 적선이 나타나면 두 번, 해안에 접근하면 세 번, 상륙이나 해상 접전이 생기면 네 번, 상륙 접전하면 다섯 번 올렸다. 그리고 동쪽으로 사라 봉수대와 서쪽으로 수산 봉수대와 연락하였다고 한다. 봉수대가 남아있으면 더 장관인 도두봉이었을 텐데 아쉽다. 


제주에 도착한 맑은 날 낮에 방문했던 도두봉 풍경


일몰을 볼 계획이 없었는데, 시간도 이렇고 다리도 아파서 여기까지 멈추기로 한다. 멈춘 김에 일몰도 기다려본다. 사람들이 많이 없는 오름에선 정상에 이렇게 누워 있기도 무서운데, 핫한 도두봉 사람들이 많아 해지는 것도 두렵지 않다. 비행기 소리가 어쩔 땐 엄청 거슬리고, 어쩔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 예전에 대구 공항이 가까운 친구 집에서 갔을 때, 이런 소음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익숙해지면 들리지도 않는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도두봉에선 공항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으슥한 벤치에 누워 혹시나 모기에 물리진 않을까 걱정하며 REM 수면 상태까지 들어갔다 나오니 어느새 바다에 한치잡이 배 불이 켜져 있다. 항구에서 봤던 그 거친 어부 분들이 저곳에서 일하고 계실 테지. 아빠를 따라 낚싯배는 많이 타봤어도 저런 어업선은 타서 가까이 관찰해본 적이 없는데, 가까이서 일하는 모습을 뵙고 싶어 한다면 실례가 될까?



도두봉은 제주의 북쪽이라 바다를 바라보고 왼쪽에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런 노을을 보는 것은 제주살이에서 또 처음이다. 나는 분명히 이 노을과 이 바다, 싸르르 통증이 오는 다리와 끈적거리는 옷과 모자의 느낌,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이다. 곧. 사람이 아닌 것보다 사람이 더 많은 그곳에서 말이다. 이런 그리운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나의 또 다른 1년의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곳을 버틸 수 있게 머릿속에서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자양강장제를 쌓아두는 일 말이다. 해가 졌으니 오늘의 올레길 걷기를 끝냈다. 19시 45분이다. 




6월 9일 오후 3시 45분 장안사에서부터 17코스의 반을 다시 시작한다. 장안사 바로 앞 카페와 편의점이 있는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출발한다. 늦은 시간이지만 햇볕이 내리쬔다. 한라산 쪽과 해안 쪽 구름의 모습이 다르다. 



도두 무지개 해안도로 쪽이 아니라 마을길을 통해서 용담으로 이어진다. 무지개 해안도로에 2m 간격으로 삼각대가 놓여있고, 사람이 너무 많아 혹시나 저 길이 올레길이면 좀 그렇다라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주중인데도 핫한 무지개 도로이다. 


멀리 제주에서 가장 흉한 건물이 보인다. 심지어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한중 합작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17코스는 이 건물을 멀리서 빙 따라 돌게 되니 17코스의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우러짐'이나 '어울림'과 같은 단어를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결정이다. 



나환자들이 숨어 있던 곳


해안도로를 따라 중간중간 있는 역사를 알려주는 표지석들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1445년 제주목사 기건이 민가에서 쫓겨나 이곳 바위틈에 찌그러져 있는 나환자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곳에 구질막을 세우고 고삼원을 비롯한 약품, 양식, 의료 등을 지급하고 의관과 중을 배치시켜 치료받게 하였다. 그 뒤로 이 일대를 병막이마루라고 하며 바닷가 샘을 용다리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3회 4.3 문학상을 수상한 < 난주 >에서도 정난주 마리아 분께서 나환자들을 보살피는 내용이 나와서 함께 떠올랐다. 또, 나환자라고 하니 친구와 함께 소록도 봉사를 갔던 시간도 생각난다. 나와 친했던 그 할머니께서는 잘 계실까. 한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것이 죄송하다. 소록도를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울퉁불퉁한 바위 틈새에 몸을 숨기기가 좋았을 것이다. 핍박받던 나환자들의 삶이란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리라. 



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89011


사라진 몰래물 마을의 작은 볼거리들


남쪽으로 제주 국제공항 활주로가 있는 이곳은 원래 몰래물 마을이었다. 몰래물은 ‘물이 있는 곳의 모래’ 또는 ‘모래나 자갈이 있는 곳에 솟는 물’이라는 의미이다. 한자어로 바꾸면 ‘사수(沙水)’이다. 1979년 제주 국제공항 제3차 확장 공사로 몰래물 마을은 사라진다. 주민들은 주변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1998년 4월 옛 주민들이 몰래물 향우회를 창립하여 1999년 해안도로 엉물 언덕에 몰래물 쉼터를 조성하였다. 이곳을 올레길 17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해안도로를 운전해서 쓩 지나가면 느낄 수 없는 사라진 고향에 대한 애정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숨겨져 있다. 


이곳에 왕돌과 할망당이 있다. 둘레 56m의 바위로 바닷 쪽으로는 바닷물을 막아주듯이 병풍이 쳐져있고, 안쪽은 편평하다. 그래서 왕이 용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왕돌이라고 부른다. 주변의 거친 용암류들의 흔적과 함께 어우러져 제주바다 특유의 느낌을 자아낸다. 



해안 쪽 말고 마을 쪽으로는 방사탑이 있다. 몰래물 마을에는 2개의 방사탑이 있는데, 조금 무너져 내려 지금은 방사탑 주위에 안전띠를 둘러놓은 상황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방사탑을 세우고 바다 쪽에서 오는 액운을 막고자 했다. 동탑에는 탑 위에 긴 돌이 새 모양으로 있고, 서탑에는 새 모양이 없다. 




중간에 넓은 빌레가 나타나서 들어가 봤다. 낚시꾼들 한 두 명이 이곳을 지나 낚시를 하러 간다. 거북이 등 패턴을 잘 보여주고 있는 편평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사라진 몰래물 마을 바다에서 바라보는 도두봉과 제주 바다가 아름답다. 


용담 해안서로 방사탑을 지나고, 파도에 의해 거친 용암류가 몽글몽글 해져 귀엽다. 



걷다 보니 어영소공원에 닿아 중간 스탬프를 찍는다. 어영'소'공원이 있고, 어영공원이 있다. 두 공원의 이름은 어영마을에서 땄다. ‘어영’은 ‘어염’이라는 제주어가 변한 것이다. ‘어염‘은 이 마을 일대의 바위에서 소금을 얻었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17코스 중후반에 있는 해안도로에는 중간중간 벤치가 많아 계속 쉬어갈 수 있어서 좋다. 또, 깨끗한 화장실도 있다. 로렐라이 요정 상은 그다지 감흥이 없다. 




자동차 소리에 묻혀버리는 파도 소리 : 용담 해안도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나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올레길 중에 가장 별로였다. 제주 북쪽 바당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차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주중의 애매한 시간이었음에도 해안도로에 차들은 쌩쌩 달렸고, 심지어 클락슨을 울리기도 한다. 보통 올레길은 파도 소리가 차 소리를 덮어버리는데, 이 17코스의 해안도로 길은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귀 기울여도 바닷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믐날의 간조였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계속 머리가 울리는 차 소리를 들으면서 용연까지 가야만 해서 고요한 올레길에 익숙해진 내 청각이 꽤나 고생한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레길 중 가장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이제는 용담으로 넘어간다. 바다를 보며 걷는데, 긴 호스들이 많이 늘어서 있다. 아마 바닷물과 연결하여 횟집 물고기들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장치로 보인다. 이런 호스들이 어쩌다 가끔 있는 것을 올레길을 걸으면서 봤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래도 해안도로를 끼고 횟집이 늘어선 곳이라 그런지 호스들이 너무 많았다. '자연'스러운 모습과 거리가 멀어 올레길의 맛을 떨어트린다.




1978년에 복원한 봉수대가 나온다. 수근연대는 동쪽으로 직선거리 4.6km 인 사라봉수대와 서쪽으로는 직선거리 2.8km 인 도원봉수대와 교신했다고 한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연대를 많이 보는데, 이 연대들을 모두 복원하고 실제로 불을 피우는 행사를 하면 어떨까? 여기서 불을 피워서 사라봉수대에서 불이 보이면 불을 올리고, 이렇게 연결해서 하나씩 하나씩 봉수를 올려 결국 제주 봉수대 전체를 밝히는 것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 영화처럼 말이다. 



17코스의 해안도로 소음이야 어쨌거나 제주의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틀림없다. 


포구를 지나 용담 체육공원 쪽으로 걷는데 여기선 파란 제주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바로 밑에서 볼 수 있는 위치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멋진 사진을 얻었다. "제주 어디까지 가봤니?" 광고 카피가 들리는 듯하다.



용담 체육공원과 용담포구를 지나 용두암으로 간다. 이 쪽으로 가는 것이 정식 17코스 길이나 공항 올레라고 공항 쪽으로 꺾어서 제주 국제공항에서 끝내는 코스도 있다. 


용의 포효가 들리는 : 용두암



용두암을 옆에서 보면 용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각자가 상상하는 용의 크기가 있겠으나 용두암의 크기는 생각보다 아담하다. 용의 목부분을 보면 주먹 크기의 둥근돌들이 박혀 있다. 이들은 끈적한 아아 용암류가 흐를 때 만들어진 클링커(clinker)이다. 클링커는 굳어진 용암들이 부서지고 쌓인 것으로, 보통 돌 부스러기 같은 느낌이다. 클링커가 분화된 장소에서 해안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크기가 작아지고 모양이 둥글게 마모되었다. 용두암을 바라보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정면에 보이는 아아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에서 클링커의 교과서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짜잘짜잘한 모래들이 엉켜있는 용암 지형을 클링커라고 부른다. 



올레길 중간에는 관광객이 많아 대충 보고 지나쳤던 용두암을 아침 일찍 들러 조용히 감상하였다. 


그 와중에 해녀 삼촌이 이른 아침부터 물질을 하고 계셨다. 용두암을 끼고 있는 바닷속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해진다. 한수풀 해녀학교에서 용두암 바다 물질도 계획에 있었는데, 막바지 8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모든 액티브한 활동들이 취소됐다. 언젠가는 꼭 들어가 용두암을 담고 있는 바다 지형을 관찰해보겠다. 





용이 사는 연못 : 용연  


언젠가 용연다리를 가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이렇게 아름다웠던 것은 몰랐다. 제주시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인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작은 연못이 바로 용연이다. 용이 살던 연못이라 하여 이름이 용연이니 그 용이 용두암이 된 걸까? 한천의 하구가 오랜 세월 침식을 겪으며 깊은 계곡이 되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을 두른 것 같고 물은 푸르러 취병담(翠屏潭 푸를 취, 병풍 병, 연못 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용화사 서자복 미륵불


올레 17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서자복을 보고 간다. 제주시에 미륵 한 쌍이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을 서자복, 동쪽에 있는 것을 동자복이라고 한다. 서자복은 해륜사 옛터에 들어선 용화사에 있는 미륵으로 현무암으로 만들어져서 의의가 있다. 약 3m 크기로 올려다봐야 하고 새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다. 눈을 감고 살짝 미소 짓고 있고, 손은 마치 돌하르방처럼 배에 얹고 있다. 주민들은 '복신미륵','자복미륵','자복신','돌미륵'등 다양하게 부른다. 내가 도착했을 때도 한 분이 미륵 앞에서 무언가를 빌고 계셨다. 나도 따라서 절을 한다. 무엇을 빌어야 할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걸 보니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나 보다. 



동자복은 제주항 앞에 만덕객주 근처에 있다. 동자복은 만수사 옛터인 민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체감상 서자복보다 훨씬 더 큰 느낌인데 실제론 2.7m로 크기가 비슷하다. 아마 서자복은 담 때문에 멀리서 볼 수 있고, 동자복은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주변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서자복, 동자복 모두 표정도, 손 모양도 너무 귀엽다. 신통력을 발휘하여 소원을 들어줄 것 같은 느낌 보단 부둥부둥 귀여워~ 하고 싶어 진다. 원래는 절에 속한 불상이었지만, 절이 사라지고 미륵이 복신으로 변형되어 민간 신앙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탐라 천 년의 성 : 무근성



삼도2동으로 들어가니 무근성이 나온다. 무근성은 탐라시대 때의 성이 있었던 자리이다. 조선시대에 와서 제주읍성을 새로이 쌓으면서 새 성에 비해 '묵은'성이라고 하여 성의 이름이 바뀌었고, 거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고주성' 또는 '진성동'이라고 일컬어졌고, 석축으로 둘레 4,394척 높이 11척이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아있다고 하나 현재는 밤톨만큼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경주가 더욱 위대하다.


무근성은 탐라시대 때부터 20세기까지 제주의 중심이며 번화가였다. 오래된 골목과 주택들이 시간의 흔적을 알려준다. 제주의 '원래' 도심이었다는 뜻으로 제주 원도심이라고 불리는 이 일대는 '제주 원도심을 살리자'는 도시 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관덕정 그리고 제주목관아


제주의 상징인 관덕정과 제주목관아를 올레 17코스가 지난다. 관덕정과 제주목관아에 관한 글은 따로 떼어내서 썼다. 

https://brunch.co.kr/@yeohae/145


https://brunch.co.kr/@yeohae/146



17코스의 종점 : 간세 라운지 x관덕정 분식


관덕정을 지나서 간세 라운지 x관덕정 분식까지 가는 제주 원도심 골목길을 걷는다. 과거에 병원이었던 예술공간 이아도 지난다. 무슨무슨터 라고 하며 표지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터가 아니라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6시 45분에 도착하여 18코스 시작 때 기약했던 관덕정 분식의 떡볶이를 먹고 17코스를 마무리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목사 근무지 : 제주목관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