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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an 27. 2022

소설로 자유로움을 얻다:「 다른 세계에서도 」

의사의 글쓰기 : 이현석 단편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

# 이현석

# 자음과모음

# 2021.02


# 한 줄 추천평 : ★★★★★ 현실의 여러 질문들을 제시한다. 공감하면서 읽기도, 비판하면서 읽기도 좋은 책이다. 올해 단 한 권의 소설을 읽는다 라고 한다면 나는 이 책을 사줄 것이다. 

 

# 읽기 쉬는 정도 : ★★★★★ 잘 읽힌다. 









우리네 삶 속에 병원과 의료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건지 ‘병원과의 거리두기’ 와중에도 자꾸만 병원이 들어왔다. 그중에 하나가 2021년 10월 시사인 x 읽는 당신 북클럽 2기 에서 다룬 책 「다른세계에서도」였다. 다시금 병원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다. 이 사실을 알고 ‘소오서얼~?! 시사인이 큐레이션한 책이 소어서얼~?! 그마저도 단펴어언~?!’ 하면서 놀랐다. 하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이해했고, 납득했으며, 설득당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이자 등단 소설가인 이현석 작가의 소설이다. 사실적 글쓰기(?) 밖에 할 줄 모르는 나로선 한 번, 두 번 꼬아서 예술의 영역으로 만드는 작가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소설이라니. 멋있다. 그런데 소설의 형식을 빌려야 좀 더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했다는 말에 동의가 된다. 


의료 현장의 날 것을 이래저래 담아내고 있는 내용들에 공감하면서 묵혀뒀던 기억들이 올라와 머리를 흩뜨려 트리는 소설 읽기였다. 


1) 그 산과 의사  


여성, 여성의 인권, 낙태, 낙태가 필요한 사람들, 산부인과, 산과, 남자 의사들, PC (Political Correctness)인 남자 의사들, D&C 수술, 수술, 수술실, 낙태죄, 여성, 여성의 인권, 산부인과, 산과, 출산, 낙태, 다시 수술, 수술실… 그리고 “Mifepristone : 성교 후 피임법. 12시간 이내. PO. 국내에 없다.”라고 외웠던 기억.  


낙태 수술의 필요에 대해서 고민하려면 환자 이전의 시간을 봐야지, 병원에서부터 보면 알 수 없다. 이 사람이 병원에 오기까지의 그 시간과 경험. 그걸 남성이, 남자 의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항상 들었다. “나는 절대 낙태 수술하지 않아.”라고 단언하던 남자 산과 의사의 신념에 찬 단단한 눈빛이 전혀 멋있지 않았다. 의사와 환자는 면이 되어 병원에서 만난다. 한 인간은 환자복을 입음으로써 환자가 된다. 의사는 인격을 가진 인간보다는 환자를 만난다. 환자 이전의 인간은 medical history로 응축된다. 시간의 수평선에서 환자 이전의 시간은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보고 싶었던 마음을 잃어서 일 수도,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 보는 걸 수도, 보이지만 눈을 감아서 일 수도, 그냥 눈이 멀어서 일 수도 있다.


낙태를 둘러싼 논쟁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같은 산부인과 전문의라도 다른 사람이기에 시선이 다르다. 극도로 뜨겁거나, 극도로 차가움 사이에 무한대의 의견이 있다. 수많은 의견 중에 하나뿐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지향하며 자기를 갉아먹으면서도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도 함께 읽으면 좋다. 

+ 중절 수술을 할 수 있는 선박을 운영하던 외국인 의사에 대한 기사를 봤던 게 떠오른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2108.html

+ <다른세계에서도> 의 마지막 반 페이지에 걸친 주인공의 독백이 좋다.  



2) 스승이 되어 주세요 부태복 


이런 소설을 만났다는 점에서 놀랐다. 내가 봤던 의사나 의료가 주 모티브로 된 픽션은 두세 종류로 추릴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기술을 가진 의사(사람이 아니라 신이다)가 나와서 과를 넘나드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 말도 안 되는 가짜류. 평범하고 진부한 케이스들을 소설화하여 국가고시 문제들을 나열한 것과 같은 노잼류. 반대로 매우 드물고 매우 신기한 케이스를 소설화하여 ‘스토리’에 중점을 둔 그냥 소설류.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병원은 수많은 윤리와 정의와 눈속임과 불확실성이라는 사기가 공존하는 이상한 장소이다. 거기서 파생되는 질문들은 대체로 답을 찾기 어렵고 그래서 짜증 나면서도 흥미롭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날카로운 칼럼이나 숫자로 뒤덮인 분석적인 논문보다 짧은 단편 소설 하나가 더 많은 울림을 만들고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소설 부태복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국 상륙’이라는 주제를 북한 출신 의사와 엮어서 현대 의료와 시골 공공 의료원의 문제까지 드러낸다. 주제와 더불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소설적 장치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의사 부태복이 좋다. 우연히 흘러들어 시골의 돌담 병원에서 김사부를 만나듯 재야의 고수면서 김사부만큼이나 짜증 나는 부태복을 만나고 싶고, ‘부사부’로 모시며 배우고 싶다. 바깥에 나가면 부태복이 많으리라는 믿음과 부태복을 찾으러 떠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약속 처방, 처방 복사 붙여 넣기, 뇌 없이 손가락만으로 이루어지는 클릭 처방이 아니라 부태복처럼 오감에 플러스된 육감으로 진단할 수 있는 내과의. 최고 존엄 멋있다. 


3) 의사의 글쓰기


대체로 논란이 자주 됐던 것은 아마도 해부. 비단 의대 1년차의 해부학에 들뜬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몇 년 전에는 OS 전공의, 전문의들도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 문제가 됐다. 가장 최근엔 심정지 환자를 그대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 ER 전문의도 있었다. 


하지만 글이라고 다를까. 나도 작가와 비슷한 고민을 했고, 이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의 작가에게 공감됐다. 내가 처음 겪었던 환자, 내가 처음 겪었던 죽음, 내가 처음 했던 실수, 내가 처음 했던 성공, 내가 목격한 말도 안 되는 사건 등은 일반인에서 전문가로 바뀌어 정체성 대변혁의 현장이지만 나만이 담고 있는 비밀이다. 물론 성별, 나이, 직업, 상황 등을 바꿔서 실제 환자를 떠올릴 수 없게끔 할 수 있지만(의사들이 쓰는 에세이 형식의 글은 모두 그렇다) 디테일에서 파생되는 많은 질문과 생각을 공유할 수는 없음이 아쉽다. 진료 과정에서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은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하도록 의료법 19조에 명시되어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가 있어야만 성립되기에 환자와 얽힌 개인정보들은 모두 보호되어야 하고, 그래서 더 의사들의 지독한 삶을 드러낼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있고, 저자는 이를 소설의 형식을 택함으로써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점을 찾았다. 


'의사의 글쓰기'는 이후 진행된 작가와의 북토크에서의 메인 주제였다. 이게 200명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을 만한 주제인가? 에 대한 의문점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중해서 북토크를 들음에 좀 놀랐다. 



4) 직업환경의학과


산업재해를 다룬 <눈빛이 없어>, 수감자들의 인권과 건강을 소재로 한 <참> 은 직업환경의학과에서 만날 수 있는 환자들이다. 그냥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존재하는 환자들. 예방의학 직업환경의학과 수업 때 오셨던 의사가 떠오른다. 삼성 반도체 근무자들이 백혈병과 관련하여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90분이라는 짧은 수업임에도, 침 튀기며 목소리 높이지 않았음에도 깊은 울림을 주시던 분이었다. 내가 만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그랬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현장을 다니시는 분들. 병원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하얀 가운 걸치고 유세 떨고 거만 떨던 의사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는 ‘진짜’ 인간이었다(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소식도 종종 들리지만). 함께 견학을 갔을 때, 지나가듯 읊조리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 따뜻해서 아직도 기억난다. “저기 봐. 저런 자세로 오랫동안 일하면 허리와 손에 문제가 생길 거야.” 일반인들과 다른 눈과 가슴을 가진 듯했던 예방의학 교수님이 진짜 멋있었다QOL 좋은 과로 자리매김하며 떡쌍하는 직환과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소외된 환자들을 찾아다니는 멋진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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