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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Mar 15. 2022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 한국미술명작

돈이 차고 넘치게 많으면 이렇게 모을 수 있을까?

이건희 회장 유족이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은 총 2만 3181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만 1693점, 국립현대미술관이 1,488점을 기증받았다. 유족은 5개의 지방미술관인 광주시립미술관(30점), 전남도립미술관(21점), 대구미술관(21점), 박수근미술관(18점), 대구미술관(21점), 이중섭미술관(12점) 등에도 기증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특징은 동서고금을 망라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근현대미술은 물론이고 고미술품도 엄청나다. 또, 서양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있어 소장품만 모아두어도 미술사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시의 이름은 <한국미술명작>으로 주로 근대기에 활동한 작가 34명의 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라도 광양까지 가는 것보다 더 가기 어려웠던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전이다. 2주 전에 예매해야 하니 관람 당일에 일이 생기면 예매를 취소해야만 했다. 그렇게 예약과 예약 취소를 몇 번 반복하고, 당일 취소표를 구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원하는 날짜에 갈 수 있었다. 평일에 갈 수도 있었지만, 휴일에 길을 나서본다. 휴일의 장점은 출퇴근 시간을 피할 필요가 없는 대중교통의 여유로움일 것이다.


MMCA 이건희 컬렉션은 유튜브 도슨트도 보았다(그렇게 퀄리티가 좋은 도슨트 영상은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해준 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전시된 작품 수가 많아서 놀랐다. 전시는 크게 세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수용과 변화, 개성의 발현, 정착과 모색이 그것이다.



1 : 수용과 변화


서양의 유화가 한국 작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산수화, 인물화 등의 비슷한 주제를 가진 작품을 마주 보게 배치했다. 


다른 이건희 컬렉션 전시가 짧았던 반면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은 전시 기간이 길다. 두고두고 묵히다가 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얏꽃이 흐드러진 봄 풍경 그림들이 바깥의 봄기운과 어우러져 자태가 도드라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변관식의 <무창춘색> 6폭 병풍은 색이 화려하지 않아도 은은한 봄향이 들린다. 이 병풍을 들여놓은 공간은 봄이 실내에 펼쳐져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싱그러운 초록빛과 향긋한 꽃내가 가득하고, 이제 막 녹아서 흐르는 듯한 물소리도 들리는 듯 오감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변관식 <무창춘색> 부분



2 : 개성의 발현


두 번째 주제인 '개성의 발현'에는 국민 화가 다섯 명이 있다. 김환기, 장욱진, 이중섭, 박수근, 유영국으로 유명인들이다. 


박수근 <농악>이 있고, 다른 두 점의 작품은 덕수궁 미술관에 가있다. 미적대다가 덕수궁 미술관의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을 놓쳐버렸다. 삼일절이 마지막 전시일이었기 때문에 이건희 컬렉션을 보러 가지 않고 덕수궁 미술관을 갔어도 됐었다는 점을 깨달아 순건 어이없었지만 '양구로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되지'라고 흘려보내본다. <농악>은 내 눈으로 처음 보는 박수근 그림이다. 모두들 박수근, 박수근 하지만 '잘 보이지도 않고 뭐' 했던 박수근 그림은 거친 질감의 조형적 특징 때문에 2D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질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실물을 보고 알게 되었다. 조각인가 회화인가 싶을 정도로 두텁다.



소의 화가 이중섭의 소 그림을 드디어 만났다. 이중섭의 <황소>와 <흰 소>가 있다. <황소>는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작다. 그렇지만 소가 뿜어내는 기상은 작지 않다. 그냥 거칠게 한 붓터치일뿐인 것 같은데 눈은 슬프면서도 세고, 녹녹지 않다는 점이 느껴진다. 남이 하는 게 쉬어 보인다면 그 사람이 정말 잘하고 있는 거라는 진리의 말이 <황소>를 보고 문득 떠올랐다. 황소가 서정성을 보이는 반면 <흰 소>는 한껏 화나 있다. <황소>가 소의 얼굴의 클로즈업이라면 <흰 소>는 소 전체를 보여주면서, 거칠다. 더불어 좀 '미친' 느낌도 든다.

 


김환기 작가는 단순화된 점, 선, 면은 한국의 자연에서 온 것이라 하였고, 별을 형상화한 점은 자연 현상의 축약이라 하였다. 김환기를 대표하는 점화 작품은 너무 비싸서 국립현대미술관도 소품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현대미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인만큼, 그 화가를 대표하는 그림을 '한국현대미술관'이 소장한다는 것은 의의가 있다.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에서 유영국 화가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기증품에도 유영국 작가의 작품이 있다. 산을 모티브로 추상을 그린다. 광양에서 본 작품보다 서정성은 떨어졌지만, 색채가 더 돋보인다. 




3 : 정착과 모색


국민화가들이 메인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 세 번째 주제의 화가들도 매우 유명하다. 남관, 이응노, 김종영, 김흥수, 천경자, 박생광 등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하였으며 한국 미술의 흐름에서 빠지지 않는 작가들이다. 


50여 점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한 점을 고르라면 이성자 작가의 <천년의 고가>이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낸 듯하다. 추상이라는 장르의 보편 속에서 한옥이라는 모티브의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사진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우라가 있다. 이성자 화백의 '여성과 대지'시리즈가 보고 싶다. 


이성자 <천년의 고가>


이건희 컬렉션에서 뽑아낸 50여 점의 작품 만으로도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나한테 수십 조의 예술품을 살 수 있는 돈을 주며, 동시대 미술에서 훗날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수집하라는 미션이 내려진다면 잘할 수 있을까. 사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을 보기 전까지는 '돈만 차고 넘치게 많다면 뭐든 못해. 나도 하겠다.'라는 시기 어린 시선이 있었지만, 이번 전시는 나의 박물을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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