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는 사랑일까
by 알랭 드 보통
첫 장부터 '사람이 이정도 수준의 깨달음을 얻는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충격적 배움이 있었던 책. 지금까지 읽었던 알랭드보통 소설을 생각해보면, 그는 항상 [사랑] [인간관계] 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일까' 이 책을 구매하기 전 내용이 비슷하고 뻔할까봐 걱정했는데 첫 장부터 걱정이 싹 사라졌다. 같은 주제로 항상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인 것 같다.
(마케팅을 할 때에도 사실 비슷한 역량이 필요하다. 브랜드, 제품이라는 변하지 않는 주제로 캠페인 성격에 맞게 다른 이야기를 '잘' 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게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서 더 어려워졌지만..ㅎ)
상대의 짙은 눈빛이나 세련된 정신세계 때문이 아니라, 저녁내내 혼자 일기수첩이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려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 개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자기문제를 홀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혐오스러운 일이 있을까?
'연애하기 싫어' or '혼자가 편해' 라는 말 뒤에는 숨겨진 진짜 마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단순하게 연애 = 사랑으로 본다면 사실 '사랑하기 싫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연애가 하기 싫다거나 혼자가 편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연애를 '사랑'으로 끌고 나갈만큼의 용기, 자신감이 부족한게 아닐까? 그리고 이는 결국 나 자신을 바꾸기가 귀찮다는 이야기이다.
앨리스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비관적인 생각과 예상되는 실패를 피하고자 하는 희망의 관계는 악명이 높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사가 어긋날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집착하면 일이 제대로 풀렸다.
인생에서 ‘최악의 경우' 란 애초에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이 그 일을, 그 사람을, 그 상황을 놓지 않는다면
결국에 일은 잘 풀리게 되어있다.
앨리스는 진짜로 에릭이 많은 여자를 알아왔다고 믿었고 - 질투가 나긴해도 그것이 묘하게 즐거웠다.
연애경험이 많고 여사친이 많은 사람과의 연애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사랑을 주게되면, 뭔가 특별한 연애를 하고 있다는 황홀한 감정까지 들게 된다.
본질이 아닌 것이 주는 묘한 즐거움
몇 년 뒤에나 그 정답을 알 수 있는 ‘착각’ 이다.
그 남자가 <러브스토리> 를 볼때마다 우는 그녀를 놀릴때는 그녀의 눈물이 상징하는 슬픔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슬픔과 눈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다. 눈물이라는게 뭐, 특별한 용기로 흘러지는 그런건 아니지만 그동안 참아왔던게 터진거라는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좋다. 혹시 그때 왜 울었는지 물어봐도돼? 그 한마디면 된다. 그 안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그때 왜 울었는지 안 궁금한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 만큼 초라한게 따로 없다.
그 남자는 자기모순을 알았고,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남자의 잘못은 비난받을 여지가 적어진다. 남들이 싫어할만한 점을 어느정도 자각하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어진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외부의 공격을 대부분 피할 줄 안다.
최근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았던 날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자신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상처줄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 계속 그렇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서운함도 비난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도 나 편하자고 잘못을 고치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떠올라서 새삼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여행자 VS 관광객
여행자는 미리 예상하지 않고 여행하며 짐작했던 바와 다른 상황에 부딪혀도 그리 당황하지 않는다. 미지의 것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에릭은 전화 소켓 사용의 어려움으로 대표되는 놀람이 싫었던 반면, 앨리스는 실제 호텔이 안내책자에 나온 것과 다르다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 쳇바퀴 같은 일상을 버린것이 행복했고, 그 지방의 문화가 그렇다면 콘플레이크 대신 어포를 먹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에 연결지어 분석해보면, 그 날 앨리스는 에릭이 호텔에 대해서 느끼는 불만을 똑같이 경험했다. 그녀는 사랑의 영역에서 관광객임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울타리 밖으로 나가 애인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탐험하며 꿈을 시험해보는 호기심이 부족했다.
나도 '여행자' 가 되고 싶다.
앨리스는 항상 에릭의 성격을 독창적으로, 어쩌면 빗나간 방법으로 읽었다. 상대적으로 사소한 면을 그 남자의 본질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빙산에 접근하는 방식때문에 그녀는 그 남자가 한 두번만 재미있게 굴면, 그를 숨겨진 해학적 기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어버렸다.
콩깍지의 힘은 대단하다. 1년 전, 3년 전, 5년 전 과거를 곱씹어보면 참으로 우습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다. 별 거 아닌 사소한거에 사로잡혀서 정작 알아야할 것들을 알아가지 못했던 그런 날들이다.
앞으로는 좀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