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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백꾸 Nov 06. 2021

두 번째 퇴사.

소시오패스 대표와 일하는 것도 이제 끝

2021년 11월 1일.

다시 백수가 되었다.



 딱 6개월 근무하고 퇴사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고.. 가.. 아니라.. 이 회사에서의 6개월은 정말 짧게 느껴졌다.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회사를 통틀어서 '일'을 가장 재밌게 할 수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더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매일 부대끼며 같이 일한 마케터 동료는 일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티키타카가 정말 잘 맞았다. 또래라서 그런지 마음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주니어밖에 없는 스타트업에서 우리가 브랜드를 제대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넓은 관점으로 지도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워낙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보니 회의 시간은 늘 유익했고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자주 오갔다. 수십 년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관점, 인사이트를 모두 흡수하는 건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그분들의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진심으로 열정을 다했던 순간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개인의 성장, 같이 일하는 동료, 브랜드 비전 등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운 수준에 가까웠는데..



 이걸 다 내려놓고 퇴사라는 결정을 하게 만든 건, 바로 대표의 소시오패스 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소시오패스는 100명 중에 4명 정도의 비율로 나타날 만큼 흔한 유형의 사람이고 오히려 주변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커서 더 무섭다고 한다. 대표도 딱 그랬다. 일단 사회적 기업 대표라는 것이 사람에 대한 좋은 편견을 심어주곤 했고 실제로 선하고 착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과할 정도의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근데 그 모든 게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진심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지켜본 대표는 이중적이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회사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이 종종 있었는데, 대표는 그 시간에 고백한 모든 것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가스라이팅 도구로 삼았다. 때론 월급 액수까지 운운하며 직원들을 비교하기도 했고 자신이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집단들을 무시했다. 남들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그 위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투자자분들과 함께 하는 회의시간에는 앞에선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 주셔서 감사하다. 공감했고 뒤에선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실무적으로 뭔가를 해야할 때에는 그냥 자기 생각대로 진행시켰다. 모든 상황에서 이중성을 드러냈는데 이게 점점 누적되다 보니 묘하게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앞서 말한 회사의 모든 장점들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나도 애사심이라는게 생기려나? 했던 작은 희망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나도 은근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으며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일삼는 대표와 같이 '일해주기 싫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인생에서 2번째 퇴사였다. 그리고 그냥 잘한 선택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그만두기에 아까운 회사였다는 건 팩트다. 아쉽고 그런 마음을 부정하진 않을 거다. 그냥 후회를 최대한 안 해보려고 한다. 오히려 이곳에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한 교집합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 + 마케터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높아졌다는 점 등 6개월 동안 발견한 나를 더 많이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


그리고 요즘 취준을 다시 시작하면서 2년 전 아빠가 해주었던 말을 자주 곱씹게 된다. 교육그룹 인턴 종료 시점에 다른 동료들에 비해 좋은 제안을 받게 됐는데,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취준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잘 그만둔 것 같아. 교육그룹 인턴 됐다고 했을 때 아빠는 솔직히 좀 걱정됐어"

"어? 왜?"

"그땐 네가 선택한 회사니까 말 못 했는데, 솔직히 교육회사는 강사로 먹고사는 데잖아"

"응? 그게 왜?" (바보같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나..ㅎ)

"마케팅을 아무리 잘해도 인정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느낌이라는 거지"



 아빠랑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진짜 머리가 띵:했다. 교육그룹 마케터를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그냥 내가 너무 표면적으로만 취업준비를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이라, 순간적으로 놀랐다고 해야 하나..? 사실 회사라는 게 하루 이틀 다니고 말게 아니니까,, 조금 더 즐겁게 오래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 '회사의 인정' (=연봉 인상..ㅋ) 가능성을 고려하는건 어찌보면 너무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후 취준을 할 때마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 그 회사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가’를 잘 따져보게 된다. 아빠한테 한 수 배운 느낌 ^^.



 그리고 많은 고민 끝에, 가고 싶은 회사가 3군데 정도로 추려졌다. 경쟁률이 높아 보이는 브랜드 한 곳을 먼저 준비해보고 잘 안된다면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해보고 싶다. 이것저것 다 경험해보니 나는 적어도 Text 측면의 무언가를 창출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이 생겼다. 사실 카피라이터의 꿈을 키우는 데에 있어 광고회사만큼 적절한 곳이 없긴하다. 내가 추구하는 카피와 결이 맞는 포트폴리오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을 찾고 싶다. 솔직히 두번다시 대행사는 안갈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또 광고회사를 찾아보고 있다. (^.^)



-


이제 더 좋은 곳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서두르고 싶지 않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제대로’ 준비하고 싶다.


너무 나태해지지만 말자 :)


*퇴사 시점에 문자를 하나 받았는데 ‘올바른 본능’이라는 말에 완전 꽂혀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문자를 받자마자 마음이 엄청 콩닥콩닥 거렸다. 실제로 모든 일은 올바른 본능이 필요한 게 맞는 것 같아서.. 저게 뭐라고 문신을 새기고 싶을 정도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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