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 Jun 14. 2020

"선생님, 저 자퇴했어요"

이 세상 모든 자퇴생들을 위해

  어느 날, 과외하던 학생을 위해 내신 자료를 잔뜩 뽑아간 나에게 그 학생은 우물쭈물 힘겹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선생님, 저 자퇴했어요.


순간 턱 하고 숨이 막혔다. '대체 왜..? 아차, 내가 너무 놀랬나? 지금 무슨 말을 건네야 하지?' 예상치도 못한 말에 내 머릿속은 온갖 시끄러운 생각들로 가득 찼다. 말을 고르고 또 고르던 내가 너무 놀라 보였는지 학생은 애써 웃음 지어 보였다. 오늘 자퇴 수속을 밟았고 부모님은 허락하시긴 했지만 아주 많이 걱정하신다고 덤덤히 말하는 학생을 보며 내 머릿속은 한 가지로 정리되어버렸다. '아 이 자식 대단한 결정 했구나.'


  우선 박수부터 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잘했다고 칭찬했다. 나의 고등학교 때는 그럴 용기가 없었으므로. 그리고는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렇다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다른 학생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맞추어 따라가려는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과외도 하고 학원도 다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진로 쪽 활동까지 열심히 해야 대학을 갈 수 있는 현실이 너무 오르기 힘든 산을 마주한 느낌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을 본인은 알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학교 생활로 얻은 것은 과민성, 스트레스성 질병들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이 힘드니 몸이 못 견뎌서 SOS를 쳤던 것이겠지. 이 이유들을 쭈욱 듣고 있자니 그저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 안의 '꼰대력'이 발휘되려던 순간, 오히려 정반대의 '코치력'이 더 먼저 뛰쳐나왔다.

아주 용기 있는 선택을 했구나! 이제 다른 학생들보다 더 일찍 어른이 되겠다.

  내 말이 예상 밖이었다는 듯, 나를 갸우뚱 쳐다보며 물었다. "핑계 같지 않아요? 쌤은 왜 걱정 안 해주세요?" 내 답은 간단했다.

첫 째, 이미 잔소리는 부모님과 담임선생님께 질리도록 들었겠지.
둘째, 선택을 했다면 앞을 봐야지 뒤를 자꾸 돌아보면 앞으로 가지 못해.

사실 될대로 뱉은 말이었지만, 뱉고 나니 꽤 괜찮은 멘트라고 생각했다.(ㅎㅎ;) 그리고 이 뱉은 말에 대해 발산적으로 더 많은 회고가 들었다. 그 아이와 이야기하며 개인적으로 '이 점은 학교 다니는 학생들보다 자퇴한 학생들이 더 강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몇 가지를 오늘 이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


1. 자기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하고, 쉬고,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모이는 모든 활동을 시간표에 따라 일괄적으로 생활한다. 따라서, 학교에 가야 하니 가는 것이고, 과학 시간이니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고, 점심시간이니 점심을 먹는 것이다. 같은 활동을 다른 시간에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가령, 11시 즈음 이른 점심을 먹고 싶어서 교실을 나가면 아마 해당 수업에 무단결석 혹은 지각 처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께 무지 혼나겠지..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학교 다니던 당시에는 의문을 갖지 못했다. 공동체생활이니 공동생활에 맞는 공통적인 시간에 참여해야 하는 것 또한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기 때문에. 그런데 학교를 벗어나면 이것이 달라진다.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까지 운동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고, 그다음 할 일을 생각한다. 아마도 독서실을 가거나 책 읽기, 공부하기, 이 외에도 영화 한 편 보고 인터넷으로 관심 분야의 글을 스크랩하거나 음악을 켜놓고 글을 쓰는 등 언제 어떤 것을 할지는 전적으로 학생의 자유가 된다. (물론 부모님의 컨트롤이 있겠지만) 여기서 일상생활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차이가 난다. 며칠을 드러누워 놀기만 할 수도 있지만 집에서 놀기만 해도 시간은 너무 많이 남는다. 이제 자신의 앞날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홈스쿨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계획표'를 작성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학교에서 정해준 시간표와는 다르게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놓고 하루하루 자신만의 규칙으로 살아가니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스탠스가 생기고, 적절한 자유도에는 그만큼의 책임감이 동반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2. 자기 진로와 관심사에 대해 주도적으로 탐구한다.

  학교에서 생활기록부에 들어갈 '희망 진로'를 적어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주저 없이 어떤 직업을 쓰고 빠르게 제출하는 학생은 학급에서 몇 안된다. 오히려 '야 너 뭐 적었어?', '나 하고싶은 거 딱히 없는데...', '선생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으면 뭐 적어야 해요?', '선생님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야 너도 유튜버 적어ㅋㅋ' 등의 혼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그럴듯해 보이고 돈도 많이 버는 것 같은 직업을 적어내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 일반화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방식으로 적어낸 학생들은 점수에 맞춰 점수가 정해준 대학교와 전공으로 2~4년의 공부를 마친 후 이제야 하고 싶은 분야가 생겨 방향을 바꾸기 일쑤이다. (제 이야기입니다... 네..)

전공이 나의 길이 아니며, 자신들에게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음을 유머로 승화해준 전공 짤 트윗들

그런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시간 활용에 대한 자유도와 이로 인한 책임감이 탑재되면 학생들은 이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폭넓게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남은 시간에 어떤 여가활동을 하며, 어떤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정보를 찾기 시작한다. 이것이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며, 실제 이렇게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내가 여가 활동을 찾아 친구와 가죽공방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을 때, 그 공방에서 나의 서툰 만들기 과정을 보조해주었던 그 조수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자신의 공방을 차리겠다는 목표로 옆에서 일하며 배우고 있었던 19살의 여자아이였다.


3. 학교 밖의 사회에 대한 더 많은 경험을 보유한다.

  자퇴를 한 다음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신만의 취미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자기 계발 방법을 활용하는 등 이들은 학교 밖의 경험을 더욱 많이 축적한다. 이들에게 공부란 단지 졸업장 혹은 무언가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다. 단순히 학교를 벗어나는 것뿐인데 굉장히 많은 변화가 그들 내면에서 소용돌이친다. 내가 시작하며 소개한 일화에 나왔던 그 자퇴생은 나와 계속 영어공부를 하고 있지만, 목표는 모의고사 1등급이 아니다. 본인이 원해서 영어 스피킹부터 비즈니스 영어 등 관심사를 넓혀가면서 다양하게 영어를 노출시키고 있고, 영어 자체에 대한 흥미도 더 생겼다고 했다. 지금은 남는 시간에 게임을 통해 외국어를 공부하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스페인어도 공부 중이다. 자퇴 후 홈스쿨링을 한다고 할 때 어른들이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학생이 공동체 생활을 하지 못해 커뮤니케이션이나 협력에 있어서 뒤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소위 '요즘 애들'은 공부도 어플로 하고, 공동 취미활동도 어플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학교 밖 사람들과도 함께 어우러지면서 SNS로 소통이란 소통은 죄다 하고 있기 때문. 오히려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두려운 성인들보다 더욱 오픈마인드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 글은 자퇴를 권유하는 글이 아니다.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생활하지 못해서 자퇴 후 생활이 더욱 피폐해지는 경우도 빈번히 있을 것이다. 다만 학교에서, 혹은 학교를 넘어 회사나 어떤 집단에서 수동적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나 같은 사람들이 적어도 그들에게 편견을 가지거나 삿대질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많은 고뇌 끝에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자퇴생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학교 밖에서 자퇴생들이 얻는 부정적인 꼬리표에 지레 겁을 먹고는 안전한 학교에서 안전한 교육과정을 밟고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그렇듯 졸업까지 무사히 하길 바란다. 그것이 보통의 학생이 가져야 할 의무라도 된 듯이.

 

ps. 사실 선생으로서 참 억울하다. 왜 이 예쁜 아이들을 이 좁은 틀 속에서 가르쳐야 했을까. 아니 왜 틀을 주면서도 사실은 아이들이 그 틀에 맞지 않길 바랬을까. 내 제자들이 차라리 그 틀에 아예 안 맞아서, 맞추기에는 너무 차고 넘쳐서 나중에는 그 틀도, 그 틀에 낑낑거리며 맞추려고 하는 또래 친구들도 웃으면서 내려다볼 줄 아는 거인이 되길 바란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