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Jun 06. 2023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다시 읽은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누가복음 13:24)




앙드레 지드(André Gide)가 쓴 <좁은 문(La Porte étroite)>의 모티프가 된 성경 말씀은 분명 저 구절일 것이다. 이제는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좁은 문>은 아마 내가 교회를 다니고 나서 일부러 읽어봤을 것이다. 그 말씀에 이끌려 읽어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 굳이 찾아서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그렇다고 책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우선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앙드레 지드는 독실하고 엄격한 청교도 가정에서 자랐다. 위키피디아는 지드를 '프랑스 문학사상 거의 유일하게 개신교 신자, 그것도 종교개혁자  깔뱅의 사상에 근거하여 금욕과 절제를 주장한 청교도'였다고 설명한다. 생각해 보니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 포인트였네.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약 3%인 프랑스에서, 종교(가톨릭이라도)를 가진 문인을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에서, 반기독교 사상이 넘쳐나는 프랑스 문학계에서 희귀한 개신교 문인인 지드의 말년은 30살이 넘게 차이나는 친구 아들과의 동성애로 얼룩졌다(혼외 자녀도 있다...). 장 깔뱅과 위그노를 배출한 나라가 왜 21세기에 반기독교 사상의 선봉장에 서게 됐는지 연구하려고 하는 나의 사례로 아주 적합하ㄹ... 어쨌든 지드의 <좁은 문>은 그의 자전적 요소가 담긴 작품이다.



<테레즈 데케루>를 시작으로 이미 읽었던, 혹은 내용은 알지만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던 고전을 다시 또는 새로 읽고 있다. <테레즈 데케루>의 뒤를 이어 읽은 작품이 바로 이 <좁은 문>이다. (아마도) 갓 신앙을 가졌을 때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책을 10여 년이 지나 소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 읽으면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으로 다시 책을 집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도, 왜 그 사랑이 '좁은 문'인지  수 없었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화가 나서 굳이 찾아서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니라고 말했다.






'문학은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르기 때문에 해설 같은 걸로 감상을 획일화하지 마!'라고 하며 문학전공자인 주제에 왜 문학을 공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설의 힘을 빌렸다. 해설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신앙을 지키려는 알리사의 고결함을 칭송하거나, 혹은 조롱하거나. 실제로 사촌누나를 연모하여 그녀와 결혼한(?!) 지드의 생애가 반영된 책이니 전자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또 지드는 어머니의 엄격한 청교도식 교육에 반발을 느끼고 결국 신앙과 결별하게 되었으니 어느 것 하나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 문학은 어려워! 나의 길이 아닌 문학 비평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나의 감상을 정리해 보겠다.


실제로 알리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을 알고 있는 신자도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싶을 정도로 답답한 모습을 보여준다. 수도원 들어갈 것도 아니면 그냥 제롬이랑 결혼하면 되잖아? 동생도 다른 남자랑 결혼했는데? 도대체 '좁은 문'이랑 무슨 상관인데?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 속에서 하루하루 휩쓸리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성도의 눈으로는 사촌과의 결혼이 허용되는 시절의 엄격하고 독실한 청교도 신앙을 결코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런 걸까? 그때도 제롬은 알리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지금은 어떨까? 물론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우선순위'를 지키고자 하는 알리사의 그 마음과 노력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자문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가치를 헌신짝보다 더 못하게 취급하며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이 세상에서 과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남편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고 철저한 청교도 신앙 속에서 지드를 가르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독이 되어 결국 신앙을 떠나게 되었으니 어머니의 열심이 독이 된 걸까? 그렇게 독실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건 나중에 천국 가서 확인할 일이고. 그러고 보니 <좁은 문>은 지드의 자전 소설이 아니라 내 얘기였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망할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그것이 복음인 줄 알았던, 결국 내 열심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종교인. 독실하고 신실한 개신교 신앙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실상은 바리새인인 위선자...

 




 

내가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좁은 문>은 바로 이 문인 것 같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작가의 이전글 파리에서... 가족 없이 사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