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아니, 사실 최근 정말 글을 많이 쓴다. 지난 4월에는 한 달에 3일꼴로 하나씩 글을 썼다. 수많은 정부, 지자체, 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기자단 덕분이다. 작년에 정책기자단이라는 신세계를 맛본 후, 올해는 무려 6군데에서 기자단을 하고 있다. 그마저도 지금은 다 소화하지 못해 3-4곳에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에 출판 번역에 리뷰에, 외신 번역 및 분석에, 교정에, 편집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글'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고 했을까? 변명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나의 글'을 쓸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다. 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자유롭게 나의 (의견이 들어간) 글을 쓰고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갖춰야 하는 기준이 있다.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물론 브런치 글이라고 되는대로 막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또 왜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을까. 사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랐다. 좋아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가치관은 계속 변했다. 가치 있던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다. 의미가 없어지니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생각이 없어지니 쓸 말이 없어졌다. 그전에 발행한 브런치북도 뭔가 부끄러웠다. 난 이제 프랑스가 싫은데...(싫기보다 애증일까) 지우려고 했지만 이 부끄러운 글을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차마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힘이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나의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해야 한다. 이 마음이 어느새 부담으로 다가왔나 보다. 물리적 제약도 존재했지만, 심리적인 장벽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늘, 항상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울리는 브런치스토리의 좋아요, 구독 알람, 공지가 내 마음을 계속 울렸다. 기사를 작성하고 퇴고하고 사진까지 보정해서 시스템에 올릴 때마다 느끼는 그 쾌감이 내 마음을 계속 푸시했다. "너는 글을 써야 해."
그러다 문득 실마리를 찾았다. 계기는 가장 최근에 썼던 AI번역과 불문과 폐과에 관한 글이었다. 그래. 뭔가 의미 있는 것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거기에 시의성까지 있으니 의미도 들어가겠지. 그 순간 뇌가 반짝반짝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려고 누워서도 글감이 마구 떠올랐다(물론 자고 일어나니 다 까먹었지만...). 글을 쓰는 일은 정신과 육체를 꽤 소모하는 일이라서 일로서의 글쓰기가 끝나면 또 자세를 고쳐 잡고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일단 썼다. 시작이 반이다.
1초 만에 수백 가지의 언어가 번역이 되는 이 시대에, 일상 통, 번역은 이미 휴대폰에 자리를 내어준 이 시대에 과연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AI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번역이라는 분야는 어디로 흘러갈까? 또 번역가는 AI에 대체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30년 가까이 '외국어'의 길을 걸어오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완전한 답을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한 명이라도 글을 읽고 외국어를 배우는 기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게 그리던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어를 정확하고 명료하고 정교하고 생동감 있고 우아한 언어로 끌어올려 근대문명의 가장 중요한 언어들 가운데 하나로 만든 칼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