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하게 썰은 삼겹살을 푹 잘 익은 묵은 김치에 얹어 돌돌 말아 겹겹이 커다란 뚝배기에 빼곡히 담고, 물을 붓고 된장을 풀어 오랜 시간 뭉근하게 푸-욱 끓여낸다. 엄마의 김치찜 비법이 이리도 간단하다. "진짜 그게 다야?"하고 물었다. 정말 이것이 끝이라면 나도 금방 김치찜 장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맛을 보면 바로 느낌이 온다. 아, 이건 흉내 낼 수 없는 고수의 손맛이다.
대개 정말 맛있는, 오랫동안 먹어도 질리지 않는, 늘 생각나는 음식들이 그러하다. 재료가 단순하고, 그로 인해 맛이 깔끔하다. 재료가 가진 그 본연의 맛이 가장 잘 드러나고 양념과 어긋남이 없이 어우러진다. 밥 한 숟갈에 다른 찬이 없어도, 그것만으로 부족함이 없고 넘침이 없다. 그러니 신선하고 질 좋은, 그 자체로 맛있는 재료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그리고 그 음식의 깊이는 엄마의 손맛이 책임진다. 나의 식탁을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재료로 채워도 엄마의 맛을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은 그 손맛이 부족해서일 테다.
엄마는 웬만한 음식은 다 직접 당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집밥의 고수다.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면 속이 터질 듯 꽉 채운 참치 누드김밥, 소고기 김밥, 유추 초밥으로 쌓은 3단 찬합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 시절엔 어디서 레시피를 알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해물이 넘칠듯한 짬뽕에 짜장면, 치즈로 뒤덮은 리조또나 피자, 바삭한 돈가스에 냉모밀까지 집에서 척척 만들어 주던 엄마다. 도넛, 마들렌, 밤과자 같은 간식들도 작은 오븐으로 구워내는 엄마는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 어린 딸들과 같이 휘핑크림을 저어, 예쁜 잔에 진하게 내린 커피 위에 얹어 '이게 비엔나커피야'라며 입술에 크림을 묻히며 마시는 멋진 여자였다. 이렇게 자식들에게 예쁜 추억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동안 엄마의 손은 마디가 굵어지고 거칠어져 그야말로 고생한 여자의 손이 되고 있는 줄 몰랐다. 손톱엔 매니큐어 한번 칠해보지 못하고, 손끝엔 마늘과 매운 양념들이 베는 줄 그때는 정말 몰랐다.
큰 병으로 몇 번의 수술을 견뎌내는 동안 엄마의 몸은 많이 약해졌고, 늘 우리 어릴 적 그즈음에 머물러있는 줄 알았던 엄마의 관절은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다. 세월이 가고 자식들이 자라나 엄마의 주방 메뉴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힘에 부치어 예전만큼 해내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다 하시지만, 식구들 다 같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며 여전히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신다. 도시에서 막내딸로 곱게 자란 엄마는 아빠가 평생을 자란 시골 농장으로 시집와 억척스럽게 그 고생스러운 농장 일들을 다 해내며 우리를 키워냈다. 음식은 시집와 시어머니께 배운 게 전부라, 엄마의 음식은 시골의 그 투박하고 깊은 맛이 난다. 자식을 위한 정성 그 하나만으로 화려하게 보기 좋게 더해질 것들이 필요가 없는, 마음이 가득 차는 그 맛. 이제는 다들 비싼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그리운 시골 밥상의 그 맛은 아마도 신선한 재료에 더해진 손맛이 전부가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는 밥상에 올라가는 거의 모든 식재료를 본인 텃밭 혹은 동네 이웃들에게서 얻는다. 서로의 밭에서 길러낸 신선한 것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밥상을 풍성하게 채워내는 것이 시골의 인심이다. 이렇게 밥상을 차려내던 엄마는 도시로 이사를 나온 지금도 마트에서 다듬어진 야채를 사는 일이 거의 없다. 동네 반찬가게만 가도 손쉽게 수십 가지 찬들을 살 수 있는 요즘, 엄마는 굳이 이 모든 정성을 담아 식탁을 채워낸다. 밭에서 수확한 뿌리째 그것의 상태를 쭈그리고 앉아 한나절을 꼬박 손질하는 수고로움을 고집한다. 듬성듬성 벌레 먹은 신선한 제철 야채를 금방 다듬어 엄마의 손맛으로 조물조물 만들어내는 반찬들은 정말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몇 가지 양념 들어가는 것도 없이 심심하게 무쳐낸 나물들은 밥도 없이 푹푹 집어먹게 만든다.
엄마의 정성이 가득한 밥상에서 가장 중요한 찬은 역시 김치다. 겨울이면 김장김치에 여름이면 시원한 물김치, 때때로 파김치, 부추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깍두기까지 온갖 김치를 다 직접 담근다. 단출한 다섯 식구가 먹을 김치라 오래되면 맛이 없다며 그때그때 제철 야채들로 신선하게 자주 만드는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니 철마다 엄마의 주방은 쉴 틈이 없다. 겨울이면 옛 동네 이웃들이 농사지은 배추에 무에 마당 햇볕에 말린 고추를 받아 엄마가 직접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만드는 것부터 엄마의 김장 준비가 시작된다. 30년이 넘도록 그렇게 온갖 정성으로 담근 김치를 먹으며 자랐으니, 공장에서 만들어 마트에서 파는 김치의 맛이 어찌 입맛에 맞을 수 있을까.
어디 김치뿐이랴. 엄마는 아직도 된장을 직접 담그는 옛날 사람이다. 요즘은 마트만 가도 각종 된장의 종류가 진열장을 가득 채울 만큼 다양하고, 당연히 웬만큼 다 맛있다. 인터넷 주문에 홈쇼핑까지 더하면, 전국 팔도 대한민국 된장 고수들의 맛을 아주 손쉽게 맛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매년 메주콩을 불리고 삶고 밟고 메주 모양을 잡아 허연 곰팡이를 띄우는 그 모든 수고로운 과정을 직접 다 당신 손으로 해낸다. 그 집 된장의 맛이 그 집 음식의 맛이라 엄마는 그리 믿기에, 이 과정에 온 정성을 다한다. 그 정성을 가득 담은 장독들이 우리 집 집밥 맛의 보물창고다. 봄이면 냉이에 달래 듬뿍 넣어 향긋하게 끓여내고, 여름이면 호박잎과 양배추를 푹 쪄내 쌈을 싸 먹고, 가을이면 시래기 넣고 구수하게 끓여 푹푹 떠먹는 된장찌개는 온 계절의 영양과 맛을 다 담아내는 우리 집 식탁의 단골 메뉴다.
된장 이야기가 나와서 집 된장의 강렬한 맛을 하나 더하자면, 된장 고추를 뺄 수 없다. 집에서 직접 된장을 만들어야만 맛볼 수 있는, 아마도 경상도에서만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 장독 안 된장에 숨겨둔 된장 고추의 맛을 아는지. 누렇게 잘 뜬 된장에 푹푹 박아둔 작은 청양고추들을 보물찾기 하듯 하나씩 꺼내어 식탁에 내놓는 그 맛.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오이 고추로 만든 아삭하고 달큰한 된장무침이랑은 아예 다른 맛이다. 한입 톡 베어 물면 짭조름한 된장 물이 찍- 하고 입안으로 튀어나오는 그 맵고 짭짤한 고추의 맛은 시골 할머니 밥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런 옛날 맛이 난다. 무더운 한 여름날 찬물에 흰밥을 푹푹 말아 이 된장 고추 하나 손에 들고 한입씩 베어 물면, 이런 밥도둑이 따로 없다. 너무 짜고 매워서 말이다.
이렇게 시골에서 김치와 된장 먹으며 자란 내가 어쩌다 외국인과 결혼하여 지구 반대편 낯선 땅에서 살고 있다. 나의 남편은, 20살에 나를 만나 처음 한국 음식을 먹어본 외국인이다. 20살까지 김치 냄새도 맡아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김치는 물론 된장까지도 정말 맛있게 잘 먹는 사람이라, 숭덩숭덩 썰은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며 두부 넣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함께 끓여먹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는 식당에 앉아 기본 찬이 나오면 '김치를 먹어보면, 그 집 음식 맛을 예상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 나름 한국 음식 전문가다. 그런 남편의 최애 한국음식은 고민 없이 3가지다. 마블링이 아름다운 투쁠 한우, 두툼하니 숯불에 구운 한돈 삼겹살, 그리고 장모님 표 김치찜. 한우와 삼겹살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다 좋아할 음식인데, 온갖 한국의 강한 양념 맛이 가득한 김치찜은 언젠가부터 남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음식이 되었다. 물론 꼭 우리 엄마가 만든 김치찜이어야 한다. 그 어떤 식당에서 먹었던 화려한 맛의 찌개들을 다 제치고 우리 엄마의 김치찜이 최고라 한다. 그러니 남편이 한국에 도착하는 날이면 우리 엄마는 아침부터 두툼한 삼겹살을 김치에 말고 있다.
엄마의 김치찜은 찜과 찌개의 그 중간 어디쯤인 듯 국물이 넉넉하다. 약불에 뭉근하게 아주 오랫동안 끓여낸 김치찜의 고기는 국물에 으스러질 듯 육질이 연하다. 고기의 육즙과 함께 푹 익은 부들부들한 김치와 함께 씹으면 말 그대로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다. 밥 한 숟갈에 고기와 김치를 함께 얹어 먹은 뒤, 벌건 국물을 퍼먹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숟가락으로 푹 떠서 한입 하면 "크-" 하는 소리가 절로 나는 깊고 구수한 국물 맛의 비법은 엄마의 집 된장이다. 엄마의 손맛과 정성이 겨우내 들어가 장독에서 깊은 맛을 키워낸 그 된장 말이다. 그러니 유명한 식당의 김치찜 혹은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비교하면 맛도 색도 완전히 다르다. 양파나 감자 같은 단맛을 더해줄 야채도 일절 없고, 예쁘게 모양과 색을 내줄 파도 들어가지 않는다. 오직 김치와 고기가 전부다. 양념이라고는 된장 조금 풀어내는 것이 끝이다. 아주 간단한 재료로 아주 오랫동안 푹 끓여냈으니 고기와 김치, 그 본연의 맛이 가장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된장의 짜고 구수한 맛이 너무 맵거나 기름지지 않게 깔끔하게 잡아준다. 엄마의 김치찜은 텁텁한 맛이 일절 없다. 그러니 질리지 않고 늘 생각난다.
엄마의 식탁은 이러하다. SNS에서 흔히 보이는 비싼 무쇠냄비나 화려하고 고급진 그릇들은 없다. 엄마의 찌개를 담아내는 뚝배기의 뚜껑은 보지 않아도 화려한 꽃무늬가 있음이 확실하다. 수십 년간 버리지 못하고 모아 온 그릇들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그렇지만 멋이란 없는 이 투박한 밥상에 엄마의 사랑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 없다. 시집간 딸들이 사위들과 함께 오는 날이면 동네 잔칫상 마냥 상다리가 휘어진다. 고기도 구워야 하고, 생선도 한 마리 노릇하게 구워내야 하고, 뜨끈한 찌개도 한 냄비 가득 끓여야 하고, 바삭하게 기름에 지져낸 전도 빠질 수 없다. 갓 지어낸 밥솥의 밥은 한 그릇씩 더 먹을 사위들을 위해 늘 넘칠 만큼 있다. 그 어떤 보기 좋게 화려하게 꾸며낸 밥상도,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낸 엄마의 집밥이다.
처음 이민오던 날의 가방에는 아주 호기롭게 한국 음식을 하나도 넣어오지 않았다. 30년을 먹어온 엄마 김치 없이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미련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국에서 사 먹는 그 허전한 김치의 맛으로 버텨내며 엄마 김치의 감사함을 깨달았다. 이후 한국을 다녀올 때는 남편과 나의 캐리어에 김장김치, 묵은지, 깍두기 종류별로 수키로를 진공포장까지 하는 정성을 들여 꾹꾹 눌러 담아 왔다. 엄마 김치는 우리 집 냉장고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언제 다시 채워질지 모르니 아껴서 오래 먹는 방법은 역시 양이 크게 늘어나는 김치찌개와 김치찜이 최고인데, 대체 몇 번을 해봐도 엄마가 해주던 맛이 나지를 않는다. 전화와 문자로 물어보는 엄마의 레시피에 계량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조금'과 '듬뿍' 혹은 '넉넉히'의 단위가 쓰이는 이 엄마표 손맛 계량법은 초보주부가 따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고수의 레시피 일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찬스의 힘을 빌려 아주 정확한 계량으로 따라 했더니, 어라? 제법 얼큰하니 맛있는 찌개가 나온다.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와 된장을 써도 엄마처럼 깊은 맛을 낼 자신이 없으니, 양파도 조금 넣고 파도 조금 넣고 조미료도 조금 넣어 온갖 치트키를 다 써본다. 인터넷 찬스로 만들어내는 음식들은 물론 굉장히 맛있다. 하지만 식당에서 사 먹는 아주 익숙한 맛에 가깝다. 엄마가 해주던 그 집밥의 맛은 아니다. 남편의 맛 평가는 이러하다. "와- 완전 식당에서 파는 맛이야!" 이런 아주 예리한 혀 같으니. 물론 맛있다는 말이고, 따끈한 흰밥과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장모님의 김치찜 맛과는 다르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마의 손맛이 없으니, 엄마의 맛은 당연히 아닐 수밖에. 그래도 긴 출장을 다녀오는 피곤한 날이면, 꼭 이 김치찜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나의 그것도 꽤나 맛있긴 한가보다.
조금은 부족한 맛일지라도, 이렇게 한국의 김치와 된장으로 만든 얼큰하고 구수한 음식을 먹고사니 다행이라 위로해본다. 온 집에 김치와 된장 냄새가 가득하도록 찌개를 끓여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 외국인이 내 남편이라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렇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구워주는 바삭한 부추전에 푹 익은 김치찜으로 밥 한 그릇 뚝딱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엄마 밥이 먹고 싶은 걸 보니 마음이 허한 날인가 보다. 마주 앉아 손으로 김치를 쭉- 찢어 밥에 얹어주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