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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한 인생 빌런

시어머니는 내 낮은 자존감의 원인을 탐색 할 결정적 트리거가 되어주셨다.

by 잔디아이 Jul 14. 2024


출판된 책에는 수많은 퇴고와 추가 스토리로 재밌게 완성되었습니다.

한국 문화 속 K-장녀와 모든 딸들을 응원합니다.

에세이 <나는 마흔에 K-장녀를 그만두기로 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https://litt.ly/zandiai_428




히어로물부터 현대물까지 극적인 시나리오에서 빌런의 등장 은 필수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집단이든 돌아이가 존 재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속한 집단에는 돌아이가 없는 것 같다면 내가 바로 그 돌아이일 수 있다고. 다양하고 무수한 집 단을 거치면서 우리도 누군가에게 한 번 이상 또는 그보다 자주 돌아이로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모두 자신이 상식적이 고 일반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원가족을 지나 내가 선택한 결혼 인생에서는 빌런을 만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평소 바람대로 따스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 는데 그 안에서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될 줄은 까맣게 몰랐거든. 그 빌런은 바로, 아빠의 여자 버전인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종종 “남이 날 건들지만 않으면 난 안 건드려.”라고 말씀하셨는 데, 사실은 그런 말씀을 하는 본인이 먼저 남을 건드리셨다. 이 런 성향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개혁의 힘을 갖기도, 반대로 나 간다면 파괴적일 수 있다. 남편의 표현으로 대박 아니면 쪽박. 



남편을 알고 결혼하기까지 1년 1개월이 전부였는데 시부모님은 그야말로 모르던 어른이지 않나? 그런데 그분들은 한국 문화의 지극히 당연한(?) 방식으로 며느리를 대하셨다. 시가에만 가면 나의 동의도 없이 내 삶의 배경이 한국민속촌으로 바뀌었고 남 편은 옥동자, 나는 향단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기류가 깔 린 분위기 속에, 시어머니가 내게 “살갑게 부르면서 애교 부리 는 건 못 하나 봐?”라는 말씀은 “내 밑으로 다 깔아!”라는 뜻 외 에 의미하는 바가 없었다. 그것도 ‘남동생이 있는 돌아이 K-장 녀’에게 말이다. 


우리 부모님과 시부모님께는 공통점이 있다. 두 집안 모두 장남과 맏며느리 부부다. 그 아래에 외동 아들인 남편과 장녀인 내가 있다. 나로서는 최고로 숨막히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결 혼 전, 남편의 시어머니에 설명해줬던 말을 믿지 않았다. 시아 버지에게서 사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스갯소리에 깔깔 웃었 다. 시어머니의 욕망하는 인간 심리의 원형이 순백하게 드러날 때면 귀여우시기까지 했다. 내가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만. 


그렇다 한들 괜찮았다. 나는 아빠 같은 사람도 수십 년간 대 면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었다. 새로운 집단에서 기 를 잡으려거나 세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빠의 사고 패 턴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 삶은 그런대로 두고 내 삶이나 잘 살자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새로운 집단에 안온한 기 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선을 훅 넘어오는(혹은 넘어도 된다고 여기는) 시어머니의 언행에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나고 자라는 데 전혀 관여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기점으로, 내 주변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나를 관여하려는 이 무례함과 애매함 앞 에, 어쩌지도 못하고 가마니가 된 내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결혼 3년 차쯤이었다. 이대로 가마니가 됐다간 크게 곪아 터 지겠다 싶었다. 여러 가지 사건(1장 ‘명절에 스타벅스에 간 정신 나 간 며느리’ 참고)이 있었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나의 서 운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민감성이 매우 높은 시어머 니는 나의 말을 경청해주셨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시어머니께 서 남편 앞에만 고기반찬을 두었던 과거의 일화를 꺼내며 눈물 을 글썽이셨다. 대화 이후, 시어머니는 지나친 간섭과 무례함을 대폭 거두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고기반찬도 내 앞 에 일부러 가져다주셨다. 그것은 서러웠던 과거의 자신에게 건 네는 손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시어머니의 수용적인 모습이 생각보다 반전이기도 했고 나의 말이 통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바뀌기 쉽지 않다고, 가끔 아무말 대잔치를 하시는 때가 있다. 시아버지 형제 가족들과 둘러앉은 저녁상 앞 에서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 며느리는 설거지를 안 배워왔잖아. 게다가 남편이 외 아들이라 시누이 없으니까 행복하지. 시누이 있으면 피곤해.” 


며느리와 당신의 시누이 둘 중 누구를 조준한 건지 모를 그 말 때문에 분위기는 싸늘해졌다(그 자리에 시어머니의 시누이는 안 계셨다). 남편의 사촌 동생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내가 괜찮은 지 바라보았다. 나는 설거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순간 이렇 게 말했다. 


“그런데 저희 시어머니가 시누이 10명 몫을 하세요. 하하하.” 


동생들의 눈동자는 더욱 동그래졌다. K-장녀에게 설거지쯤 은 껌이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이 집을 위하여 설거지를 배우지 않았고, 현재도 이 집에서 설거지는 내가 제일 많이 하고 있다 는 사실이다. 나는 모유수유하고 힘든 몸으로 일어나 상차림까 지 도왔는데 그제야 목욕 후 뿌연 수증기와 함께 나타난 옥동자 남편에게 이제부터는 당신이 설거지하라고 말했다. 시어머니 는 아들이 설거지하는 걸 막기 위하여 그 이후 나에게도 설거지 를 아예 안 시키셨다. 시어머니의 결핍에 의한 모습을 애틋하게 생각하기로 했던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나의 역할은 해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었다. 


해결 방안을 강구하기도 전에 소식을 들었다. 시어머니는 연 세 많으신 당신의 시누이와의 결투 스트레스로 앓아누우셨다고 했다. 나의 설거지 실력 따위는 일개 싸움 소재로 쓰이고 내팽 개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설거지를 못 배운 게 아니라, 유교문 화의 경직성과 어른의 무례함 앞에 내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하 는 법을 못 배웠다. 


한번은 내가 여행 중 양가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목걸이 선 물에 대해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한테는 분명 더 좋은 선물을 했을 거야.”라며 의심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남편에게 보내셨다. 남편은 사안이 심각하다며 그 내용을 아예 내게 공개했다. 어머 니가 나이가 드시면서 의심과 왜곡이 심해져서 무척 속상하다 고 했다. 시어머니는 “예민하게 듣지 마. 그냥 하는 말이다.” 또 는 “어디 가서 시어머니 때문에 부부 싸움한다는 소리도 하지 말아라.”라고 하셨다.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계셔서 더 놀 랐다. 


남편과는 싸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시어머니로 인해 남편까 지 미워지면서 강도가 업그레이드된 싸움이 시작됐다. 우리 집 에서 남편이 설거지하다가 그릇이라도 깨는 날이면(남편은 그릇 을 자주 깨는 편이다) 나는 싱크대 옆에 비스듬히 서서, “설거지를 못 배워오셨나 봐?”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런데 문득 이건 문제 유발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농담 같 은 ‘그냥 하는 소리’도 곧 그만두었다. 보고 배운 설움대로 발산 하는 게 인간이구나. 


남편은 내가 진심으로 시가에 안 가기를 바랐다. 시가 방문 전날이면 내게 말했다. “컨디션 안 좋아 보이네? 내가 보기에 당신 못 갈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를 보니 자기 딸들을 시집 보내지 않고 자신이 끼고 살 거란다. 반달곰의 표정으로 옆에서 이렇게 말하는 이 작자는 사실 여우인가? 만약 남편이 남의 편이었으면 우리의 미래는 일찌감치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기 지나가는 며느리는 한 달에 얼마 버는 며느린데, 자기 시댁에 이렇게 저렇게 잘 한다더라.” 


시어머니의 시가 장례식장 식탁에서 내게 하신 말이었다. 내 가 버는 돈은 우리집의 경제와 육아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시 가에 잘하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인데 말이다. 


시어머니는 평생을 거의 주부로 지내셨지만 살림과 돌봄에 할애했던 시간을 스스로도 가치 있었다고 여기지 못하셨다. 이 는 ‘돈’이라는 결과가 따르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능력 주의 사회가 낳은 부작용이다. 시어머니는 그곳에서 과거의 설 움이 떠오르셨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 으로부터 얽힌 일들 말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고 인의 마음고생에 시어머니 자신이 일조한 건 아닐까 하는 일말 의 죄책감과 짜증스러운 일화. 같은 고부 구도이지만 상하관계 가 뒤바뀐 채로 마주한 자신의 며느리에게 뒤엉킨 감정들을 떠 넘겼다. 내리 앙갚음을 하는 구도다. 그 자리에서 내가 기분 나 빠할수록 사안의 중심이 내게로 옮겨져, 시어머니는 복합적인 감정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다른 볼일이 있다는 듯 식탁에서 스윽 일어났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께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식탁마다 가서 저 며느리는 얼마 버는지를 왜 물어보노!” 


그러자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식들 앞에서 나한테 이러지 말라고 했지. 교육상 안 좋다 고. 당신 때문에 애들이 일어나잖아!” 


내가 감정을 받지 않는 듯 하자, 감정 쓰레기는 시아버지께 넘어갔다. 


부정적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스스로 돌아보는 노력을 할 수 없다. 자기애는 자존감과 일치되고 흡사 목숨과도 같다. 그래 서 밤고양이처럼 치열하게 싸운다. 나의 아빠가 자녀에게 폭력 을 행사하고 그 반응(사랑으로 주목받는 시스템을 모른다)으로 얻 는 자기존재감과 같은 맥락이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시가에서 눈치를 대단히 보셨다. 아이들 복장부터 기독교인 내가 절을 안 하는 것까지 그 어떤 것도 체면이 서네 안 서네 내 귀에 대고 전 전긍긍하셨다.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이 돌아버리자는 것이다. 


때로는 시어머니는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셨다. 내가 하고 싶 은 말을 못 하는 게 맞느냐고. 맞다. 필터링 거치지 않고 자녀 부 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 바른 말과 배 려 있는 말은 다르다. 부모와 자녀 사이든 어른 대 어른이든 시 어머니 대 시어머니의 친구들이든 마찬가지다. 원래 그래야 하 는 것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사회심리 연구에서 승리를 이룬 소규모 집단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은 공통의 번영이라는 목표 앞에서 인종차별적이었던 태도를 버리고 일부러라 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는 사 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지능이 높은 국가일수록 다정함으로 문화적 번영을 누린다는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어머니들의 공통점은 아들을 자원이라 여긴 다는 점이다. 자원을 빼앗아 간 며느리를 견제함으로써 아들 부 부 사이를 간접적으로 훼방을 놓기도 한다(그것은 친정어머니가 딸을 남편이라 여기고 지나치게 의존하는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내재 된 양가적 심리 때문에 손주와 함께 오손도손 행복한 가정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동시에 며느리가 싫어할 법한 말을 자꾸 내 뱉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심리가 당연하리만큼 보편적인 어머니들의 속성을 깨달은 일이 있었다. 둘째 출산 후 몇 주간 함께 했던 산후조리 사 선생님과 나는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매우 가까워졌다. 그러 다 보니 선생님은 직업적 본분을 잊고 말씀하셨다. 


“냉장고에 있는 밥은 나랑 같이 나눠 먹고, 남편분 퇴근하면 새 밥 주면 되겠네요.” 


산후조리사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산모의 회복을 돕 는 일이다. 뼈에 바람 든다며 수면 양말을 신기고, 찬물도 못 마 시게 하면서 철저한 분위기로 산후조리를 돕는다. 선생님은 순 간 아차 싶으셨는지 자신의 딸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아휴, 아니다. 우리 딸한테도 똑같이 이야기했더니 난리가 났어요. 자기 밥과 사위 밥은 그렇게 나누질 않는다나.” 


차라리 제3의 어머니께 이런 말을 들으니 이상하리만큼 마음 이 놓였다. 어머니의 속성을 확인하니, 오히려 친정 엄마와 시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은 사그라든 듯했다. 미안해하시 는 선생님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서 아휴 괜찮다고 했다 (위의 말씀과는 별개로 선생님은 분명 좋은 분이었다). 


첫째의 태몽을 꿨을 때도 친정엄마의 속성을 또 한 번 확인 했다. 첫째를 임신하고 매우 좋은 태몽을 꿔서 엄마에게 말했더 니 대뜸 “그 꿈 남동생네 꿈 아니니?”라며 부정했다. 당시에는 나의 남동생 부부도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엄마의 태도에 서운 함을 표현했더니 의도가 그게 아니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서 운했냐는 쉬운 그 한마디를 할 줄 몰라서 백 마디 붙이는 엄마 가 대단했다. 무의식은 평소의 사고 회로에 따라 자동 반응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그래도 외아들의 자녀에 대한 태몽이라고, 나 쁘지 않은 질투로 말을 마치셨다. 


“네 태몽 이야기 들었을 때, 그 말 듣고 사실 부러웠다.” 


이게 현실이다. 어머니상을 그렇게 이상화할 것도 없다는 이 야기다. 정신분석학자 박우란 박사는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가부장적 구조에서 여성은 성별 이 다른 아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로써 대하고, 딸은 자신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남성의 빈 공간을 메우려는 속성 이 있다고 했다. 역할을 떠안은 딸은 엄마가 어린 시절부터 가 지고 있던 결핍에 일생이 갇히고, 그렇게 엄마가 사랑을 핑계로 휘두르는 권력은 딸에게 탈락과 소외의 불안을 심어준다고 했 다.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심리적 한계를 확인하니 오히려 마 음이 놓였다. 


“인간은 원래 미성숙한 존재니까. 마음 돌봄보다 생존이 더 중요한 시대를 살았으니까. 우리 엄마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하니 까. 자녀를 가진 ‘나’조차 배제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니까!” 


또한 박우란 박사는 ‘모성’을 본능이라고만 보지 않았다. 그 것은 학식이나 배움을 떠나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스스로 사색할 수 있는 성숙함과 결연함이라고 말했다. 


위 이야기들의 원형도 한 개인의 가족 이야기로만 들리는가? 시어머니는 종종 아들에게 사람이 좀 깨어 있으라고 하신다. 이 정도 멘트라면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세계관 아니, 우주관이 있는 건 분명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니 한 인격이 다른 인 격의 삶을 자신의 기준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시어머니는 내 인생에 고마운 빌런이기도 하다. 더 이상 타인이 바라는 ‘역할’만 하며 살 수 없는 이유, 외부의 압력에 쉽게 흔들리는 마음과 탄탄하지 못했던 나의 자존감을 알아차리게 해준 고마운 분이다. 내게는 당연한 세상이었던 원 가족과의 관계라는 트랙에서 시어머니가 트리거가 되어주신 건 사실이다. 진짜 자아가 있는 곳을 향해 달리라고 말이다. 내 인 생에 올 것이 온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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