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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ul 12. 2024

만성 통증과 헤어질 결심

통증은 손상된 조직도 신호 전달도 아닌 뇌 자체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

오랜 친구 지수는 몇 해 전 목 부근에 신경수술을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우리는 안도했다. 의사가 예견한 부작용으로 한쪽 팔 마비증상이 왔는데 재활치료를 하면 회복될 거라고 했다. 그러던 중 지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팔 전체에 감각은 느껴지지 않은데 자꾸 팔꿈치가 아프다는 것이다. (현재 거의 완치됨) 실제 감각이 없는 신체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이라니.... 팔꿈치를 주무른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세상에는 설명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구나 싶었다.


지수는 또 한 가지 걱정하고 있던 일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지수의 아들 민혁이에게 있던 원인 모를 두통이다. 온갖 검사를 하고 약을 먹어도 10개월째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 역시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었고 민혁이를 심리센터로 데려가 보라는 의사의 말이 더 납득이 안 된 지수는 마지막 보루로 놀이 치료를 시도해 보았지만 치료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 나누지 말아야 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건 육아조언과 정치이야기라고 한다.

엄마 역할에 죄책감을 주거나 서로 간에 감정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고 했다.

친구 아들의 지속적인 두통이 염려가 되었고 내 의견을 건네도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이런 말을 건넸다.


"너 아이들 미취학 때부터 회초리 옆에 두고 엄하게 공부시켰었잖아. 두통의 이유가 아닌지 생각해 봤어."

"아니야~ 그 정도는 공부시켜야지. 너도 애가 7살 돼 봐라. 이론과 현실은 달라. 시킬 수밖에 없어."

"민혁이가 공부상 앞에서 자주 운다며~  아직 어리니까 하루 공부량을 2,30분 정도로 줄여보는 게 어때?"


지수는 내가 고2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고 엄마이기 이전에 참 따스하고 정이 넘치는 친구다.

사랑과 열정이 너무 넘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지수는 태생 자체가 아이들 사랑이 많아 물고 빠는 엄마인데 '공부'앞에서 만큼은 엄하고 확고한 태도를 지녔다. 내가 아는 민혁이는 엄마와 정반대의 기질을 갖고 있으며 예민하고 내향적이어서 말 수가 적은 아이다. 엄마의 통제에 전적으로 반항은 못 하지만 내면에 쌓인 감정을 두통이라는 신체 증상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아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지수에게 나의 마음 챙김 과정을 공유했고 지수는 진심으로 경청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도 알다시피 몇 년 동안 온갖 노력을 해도 민혁이 두통이 없어지지 않았잖아. 그래서 이제는  민혁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고 했어. 이제는 아무 욕심 없다. 아이만 괜찮다면. 그동안 많이 울었고 기도도 많이 했어. 예전엔 죽음이 너무 두렵웠고 나 없이도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어.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천국 앞에서 두려울게 없어졌어. 편안해진 이 마음이 정말 신기해. 앞으로는 내 인생 즐겁게 살고 자녀를 걱정할 바에는 봉사활동을 더 하련다."


자녀의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원인을 다른 데서 찾고 자신의 욕망을 밀어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지수는 본인을 바꾸기로 선택했다. 지수가 겪은 수술은 신경 속 암세포 제거 수술이었다. 인고의 시간 이후 지수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 내면을 압도적으로 채우고 있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로 스스로 마음먹었다. 지수가 말하는 죽음 앞의 안도와 환희는 어떤 감정일지 궁금했고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민혁이와 내가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르지만 괜스레 투영된 어린 시절의 내가 겪은 만성 통증으로부터 잠시 해방됨을 느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복통이 자주 일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그 통증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면 병명은 따로 없었고 입원 한번 한 적 없었다. 어떤 아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위협을 당하면 바로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져 두 번 다시 간섭을 받지 않다는데 나는 그럴 일도 없이 건강했다. 야속하게도 혼자만 느끼는 여기저기 쑤시는 만성 통증은 내 친구였다. 친구들은 "자잘하게 아픈 사람이 오래 산다'라는 긍정적인 말을 해주곤 했는데 신기한 건 집 밖으로만 나가면 통증이 대폭 완화된다는 사실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는 만성 두통과 열감에 시달려서 두통약과 해열제를 자주 복용했다. 그런데 이유 없는 통증의 원인과 치료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원인은 아버지와의 부정적인 기운을 대면하는 일이었고, 치료법은 그런 그와 대면하지 않는 것이었다. 복통이 일어 밥 먹기를 그만두면 아버지는 나의 아픔보다 당장 와서 밥 먹는데 열중하며 윽박질렀다. 개인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온가족이 다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 집단에 대한 집착으로 지키고자 했던 건 바람 불면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모래성이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소속 연구원이자 의사인 몬티 라이먼 박사의 저서 <고통의 비밀>에서 통증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밝혔다. 2020년 영국왕립의학협회 통증 분야에서 논문상을 수상한 연구들은 통증을 외피적인 부분에서부터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까지 다양한 정도로 영향받는 보편적인 경험이고 지극히 개인적 경험이라고 했다. '만성 통증'이라는 뜻의 라이먼증은 박사의 이름을 따 생긴 용어다. 뇌과학적인 실험과 연구를 통해 흔하지만 어느 카테고리에도 들지 않는 만성 통증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을 입증했다.


라이먼 박사는 통증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호천사, 고마운 친구이자 의사와 같은 존재로 접근하였다. 식탁에 찧은 발에서 유발되는 즉각적인 손상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어쩌면 제일 아픈 통증)도 있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통증들도 많다고 했다. 전쟁터에 나가 사지를 심하게 다쳐 들것에 실려 안전한 영역에 도착하였는지 아니면 여전히 전쟁통에 남아 있는지에 따라 통증의 강도가 두드러지게 달랐고, 인생 전체를 놓고 개인적인 경험과 확증편향으로 미치는 통증의 발현, 통증은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 '무조건' 느끼지 않고 뇌로 신호를 보내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뇌 자체가 통증을 '만드는 것'이라고 입증하였다. 손상과 별개로 통증을 느낄 수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단기 통증이 만성 통증으로 이어지는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였다. 심리적 원인이 되는 잦은 스트레스나 어린 시절에 불행한 경험을 했던 환자들의 경우 몸의 위험 경보를 자주 울리다 못해 오작동을 일으키게 되듯 몸을 보호한다. 그럴수록 더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뇌 가소성으로 인하여 뇌 회로가 모든 잠재적 위협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재구성된 된다고 하였다.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염증을 일으키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잦은 통증은 역시 만성 통증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만성 통증은 사회적, 심리적 관계망 속에서 '학습된 통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긴 의학공부와 교대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고질병이 되어버린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겪었던 저자는 최면 요법으로 완치한 경험이 있다. 이는 무의식과 의식을 분리하는 해리작용을 통해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여 무의식적 노가 의식적 마음을 인식하지 않고 어떤 제안을 듣고 반응하는 방식이다. 마치 다른 생각에 골똘하면서도 정신 차려보니 제 발로 집을 찾아온 경험에 놓였던 상태와 비슷하다. 이는 레몬을 떠올리는 것으로 입에 침이 잘 고이는 사람일수록 최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암시와 상상만으로도 몸의 반응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주류 의학계에서는 아직 직접적인 손상에 집중하는 등 저평가 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효과가 많이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가수면 상태에 있는 뇌파에서 '세타파'가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세타파는 몰입과 기억 인출에 관련된 뇌파인데 최면 요법을 받을 때 늘 관찰되는 뇌파라고 하였다. 나는 아이들이 밤잠에 들랑 말랑 하는 때 귀에 대고 사랑을 속삭이면 스르륵 잠에 들곤 하는데 세타파의 상태에서 사랑의 큐피드 화살을 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앞서 소개했던 나의 수중분만을 준비하며 이루어졌던 히프노버딩, 최면 출산 역시 명상 수련으로 고통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짧게 준비한 수련이 아쉽지만 조금이라도 통증을 줄이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또한 부작용 없이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방법으로 '손길'을 소개했 다. 신체 접촉을 통하여 부드럽게 쓰다듬어 줄 때 fMRI 자기 공명장치에서 통증에 해당하는 뇌 부위가 줄어드는 것을 입증하였다. 아기도 엄마 못지않게 안간힘을 쓰며 나온 후 캥거루 케어로 쓰다듬어 줄 때 부모의 손길로 통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이 책에서도 소개했다.


가짜 약 연구로 입증된 플라세보세 효과와 마찬가지로 노세보 효과 역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를테면 첫째 아이 친구 세리 아빠는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르는 위험을 미리 연상시키며 지나치게 주의를 주는 편이었다. 내리막길을 뛰어내려가는 세리에게 '너 그렇게 뛰어 내려가다가 다리 부러져진다!'라는 잦은 염려의 언어들은 전형적인 노세보 효과다. 세리 엄마는 말이 씨가 될까 봐 걱정하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세리 엄마는 세리가 뛰어 내려가다가 정말 다리를 다쳤다며 내게 하소연 하였다. 태어난 지 만 5년밖에 안된 아이가 뼈에 금이 간 것도 아니고 다리뼈가 똑 부러지는 경험을 어떻게 1번도 아니고 2번이나 할 수 있겠냐고 혀를 내둘렀다.

부정적인 말로 불안감이 높아지면 통증에 영향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뇌의 통증 네트워크를 자극한다고 했다. 말은 실제로 사람을 치유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게 할 힘이 있다. 암시와 상상만으로도 몸과 마음 건강이 좌지우지되는 만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의식적인 발언들이나 불안과 두려움을 인지해야 된다고 저자는 말했다. 나 역시도 아이에게 등받이 없는 의자를 조심하라는 말을 할 때 등받이 없으니 조심하라는 말 대신 '의자 조심해. 뒤로 팍 떨어진다!'라는 등의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예견하는 말을 하면서도 아차 싶던 적이 많았다.

크루아상 빵문화로 독특한 문화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건강실태 조사에서 빵을 덜 먹는 나라 사람들보다 건강상 더 나았던 이유는 다른 복합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빵을 접할 때 깃드는 기분 좋은 정서를 함께 먹기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었다. 빵을 사주면서도 먹고 있는 아이에게 많이 먹으면 위 나빠진다 라고 할 때, 물론 빵을 적게 먹어야 겠지만 빵보다 말이 건강을 악화시키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다는 구조로 되어 있는 건강염려 유튜브 영상 url을 숱하게 공유받는 일들도 가족 간에 자주 벌어진다. 이 또한 전형적인 노세보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지수의 마비된 팔꿈치의 통증은 책에도 나온 사례와 같았다. 뇌가 원래의 감각을 '기억'하여 나타나는 통증인데 원활한 움직임이 있는 팔을 거울로 반사시켜 반대편 팔이 움직인다는 착각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기만 해도 환상통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효과 역시 연구로 입증되었다. 이 역시도 실제 조직의 손상 여부와 상관없이 뇌에서 만든 통증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 거울치료, 거울 효과는 통증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통증을 관리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현재는 나만의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만큼 아! 옛날에 만성 통증이 있었지! 할 만큼 통증으로부터 많이 멀어졌다.

그런데 사회집단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통증 유발자들을 마주할 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한 기력 저하나 단기 통증 또한 잘 알고 있다면 더 잘 관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라이먼 박사는 만성 통증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통증의 과민성을 덜 과민하게 반응하는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안전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가벼운 통증을 동반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추천했다. 실제 항염증, 진통 호르몬이 분비시켰던 것들에는 단계적인 심상훈련들 외에 반복적인 움직임이 있는 뜨개질과, 요가, 수영, 태극권 그리고 자꾸 강조하기에도 식상하지만 파급력이 대단한 '수면'과 '호흡'을 언급했다.


30대 초반 잦은 야근으로 발생한 허리와 목 통증으로 통증 클리닉을 찾은 적이 있었다.

회마다  2시간 동안 1:1 치료를 받는데 그 중 1시간은 호흡을 기반 한 운동치료였다. 그런데 그 방식은 마치 운동을 위한 호흡이 아니고 호흡을 하기 위해 부록으로 딸려 온 운동인가 싶게 호흡 측정 장치까지 이용해서 굉장히 디테일한 호흡을 코치했다. 호흡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운동의 의미가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폐에 들어간 호흡은 흉부를 정돈하고 나머지 장기들도 도미노로 정돈시킨다. 손끝 발끝까지 기운을 불어넣은 호흡과 운동 후 몸과 정신이 가뿐해 짐을 느꼈다. 라이먼 박사는 현대 사회는 원시적 투쟁 도피 반응이 일어날 때 쉬는 얕은 호흡으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균형을 깨트리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설명으로 이해되지 않은 일들이 많지만 삶 전체를 전인적으로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고 해법도 있었다.

통증을 수용하는 방식을 배웠듯 인간을 단순히 수용체와 신경 다발이 아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지수는 여러 병원을 돌고 돌다 결국 우리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와 치유하였다. 그러고 나면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힘을 받겠지. 만성 통증은 사랑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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