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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ul 07. 2024

수중분만 속 미지의 퍼즐

정서적 환경을 위한 노력에도 아이는 예민함, 두려움으로 세차게 울었다.

'자녀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 엄마가 될 거야. 그런 엄마가 될 거야.


자연스러운 육아를 희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선 내내 힘을 주고 있었다. 아이는 자기식 대로 잘 크고 있었고 나의 내면은 평온한 호수 아래 오리발짓 같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아버지의 방식이 아닌, 아기 엄마로서는 그저 대지로서 충분한 안락함이고 싶었다. 미처 해석되지 못한 미지의 퍼즐을 남겨둔 채 그렇게 육아는 시작되었다.


첫 아이가 태중에 있을 적 많은 산모와 마찬가지로 팔불출 산모였다.

태교를 한다고 태아에게 말을 자주 걸었고 노래도 들려주었다. "지금은 좀 달콤한 과일을 먹을 거야. 기대된다. 놀라지 마."라는 말을 건네고 음식을 먹으면 기특이(태명)는 달달한 양수를 먹고 흥분하여 태동으로 화답해 주었다. 혼자 있어도 둘이었기에 가능했다. 임신 23주 쯤 조기진통으로 1주일간 입원하는 고난을 함께 겪었는데 기특이는 용케 잘 버텨주기도 했다.


자연출산으로 아이를 맞이하는 과정을 공부하며 마음 속 메시지를 품었다.

'가능한 한 가장 어린 시절부터 따스한 정서 속에서 자존감을 갖고 자라났으면 한다‘


긴장이 잦은 내게 수중분만은 맞는 환경이었고 현재로선 변수가 생기길 소망했다. 변수란 꿋꿋하게 머리를 위로 향하고 있는 기특이가 끝내 아래로 돌리는 것이었다. 고양이 자세를 하면 태아가 머리로 돌린다고 하던데 여러 자세와 운동에도 별 소용이 없었다. 검진을 다니던 가까운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가 다음 검진 때도 아이가 돌지 않으면 제왕절개 날짜를 잡자고 귀띔했다.


그 말을 듣고 자연출산 병원들을 방문해 상담을 했는데 느낌이 맞는 조산사를 만났다.


"나는 의사보다 역아를 더 많이 받아봤어요. 결코 어렵지 않아요. 통계적으로 출산 직후 예상치 못한 각종 이유들로 영아 사망률이 비슷하게 나타나요. 5%밖에 안되는 역아에게도 분포는 같기 마련인데 역아는 소수의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사망률이 더 두드러져 보여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긴 거예요. 역아는 보통 제왕절개를 하는 사회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나는 조산사와 아이 이렇게 셋의 협동에 믿음을 갖고 그 곳을 선택했다.

해볼 수 있는 건 해보자는 생각에 '역아 회전술'을 하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역아 회전술에는 그럴듯한(?) 장비나 기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산모의 배에 태아 심장박동 측정기를 붙이고 초음파로 자궁 상태를 확인하면서 배에 젤을 발라 손으로 밀어서 직접 돌리는 것이었다. 진료실은 역아 회전술 산모로 예약이 꽉 차 있었고 5%밖에 안 된다는 역아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시술 당일 날 담당 교수는 레지던트로 보이는 의사들과 함께 들어왔고 엄청난 집중과 힘을 발휘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태아를 돌리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역아들의 기다림을 받고 있는 이 교수 일도 보통 일은 아니겠다는 오지랖도 부려보며 기특이가 자세를 바꿔주기만을 기다렸다. 점심식사까지 포함 한 몇시간 동안의 사투에도 뚝심 좋은 기특이는 결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의사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포기하려는 듯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계방향이 아닌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야 할 것 같은 엄마만의 예감이 들어 한마디 끼어들었다.


"반시계 방향으로 다시 한번 가보는게 어떨까요!"


교수는 나의 느낌을 믿어주셨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자 아까 갔었던 반절까지는 돌아갔다.

그런데 아기 머리가 내부에 장기 어딘가에 걸려 안 돌아가는 느낌이 들자 나는 레지턴트 샘에게 다시 한번 부탁 했다.


"제가 아이 머리를 사알짝 안으로 밀어 넣을 테니 그때 돌려주세요.

자.... 지금이에요!"


꿈쩍 않던 기특이는 모두의 합심에 맞춰 거짓말처럼 머리를 아래로 돌렸다. 믿기지 않아 진짜 돌아간거 맞냐고 초음파를 보고 재차 확인을 요청했다. 담당 교수는 "태명이 기특이라고? 기특이, 안 기특해~!" 라며 성취와 환희가 가득 찬 표정을 안고 우르르 나가셨다. 태아들은 자세를 여러 번 바꾸며 뒹굴뒹굴 놀기도 한다는데 아기의 형태를 갖춘 뒤의 기특이 냥반께서는 37주 회전술에서야 최초로 자세를 바꾸셨으니 심신에도 큰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튿날 배가 세차게 아팠고 셋째 날 양수가 와르르 흘러나왔다.


조산사와 연락을 취한 후 집 근처 공원에서 슬슬 걸었다가 정지했다가를 반복했다.

밀려드는 고통의 기다림 끝에 따스한 욕조에 들어가니 경직되었던 근육들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출산이 임박해 오자 고통의 강도는 저세상에나 있을 법 했다. 한의원에서 미리 받아 온 자궁수축 역할을 하는 불수산도 마셨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 뒤 병원에 도착하고 6시간 후 출산을 했다. 둘째 출산 때는 같은 조산사가 자궁수축을 위하여 유축기로 유축을 시도 했는데 그 때 분비된 옥시토신은 자연 유도 촉진제가 되었고 곧바로 자궁수축이 세차게 밀려들었다. 그렇게 둘째 아이도 같은 감동과 함께 세상에 나왔고 당시 4살 언니와 아빠가 탯줄을 잘라주었다.

 

<히프노버딩>이라는 자연출산을 돕는 책에서는 자기 최면 유도를 통해 고통을 제어하고 내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히프노는 최면, 버딩은 출산이라는 뜻인데 명상을 통한 수양이 부족했음을 알리듯 아기가 나오기 바로 전 단계의 고통은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순산에 의미를 두었다.


자연출산은 산모와 태아의 건강 상태를 확인 후 의료개입을 최소화 하고 무통주사 없이 아기가 원하는 때에 아기 본연의 힘과 엄마가 수축을 강하게 밀어내는 힘으로 출산을 하도록 장려한다. 꽃 피는 시기가 모두 다르듯 아기의 때도 모두가 40주이지 않다는 것이다. 아기의 의지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려 주는 것'으로 육아가 시작된다. 아기의 때에 자궁경부는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아기도 안간힘을 쓰며 돌고 돌아 내려온다. 엄마의 도움과 애씀, 아기의 동기가 만나 세상의 빛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인간의 몸은 참 과학적이기도 신비로운 이 느낌은 대자연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경이로움 또는 무서움과도 같았다. 아기는 곧바로 탯줄을 자르지 않고 기존의 탯줄 호홉을 유지한 채로 엄마와 아빠의 가슴 위에 올려져 캥거루 케어를 했다. 캥거루 케어는 인큐베이터에 있던 중환자 신생아의 회복률을 높이는 기적같은 방식이다. 엄마의 숨결, 심장박동, 익숙한 목소리는 아기의 전부이고 우주다. 모자 동실에 아기와 가족이 모두 함께 있으면서 너무나도 작고 소중한 아기를 쓰다듬고 계속해서 닳고 닳도록 바라봤다. 지금도 아이를 훈육하던 중 나도 모르게 냉담한 눈빛이 나올 때  가슴 위에 올려졌던 작은 엉덩이를 떠올린다. 그러면 부족했던 모성애가 막 분출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때 건네 왔던 조산사의 한마디도 떠올랐다.

'살펴보니 아이의 탯줄 길이가 좀 짧은 편이네요. 혹시나 그래서 역아로 있었던 걸까요'


아이가 역아로 있겠다는데 자연스러운 육아를 위한다고 세상을 향할 아기의 첫 진로 방향(?)을 엄마가 돌린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여지가 되었다. 역아 회전술 도중 자궁수축으로 아기가 떠밀려 나오지 않도록 링거를 통해 '자궁수축 억제제'를 투여 받았었다. 궁극적인 의료개입을 최소화 하기 위한 의료개입이라…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것 역시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 조산사가 건넨 그 말은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염두해 보는 말이다. 자연출산 정신과 별개로 이런 것이 아이러니한 노력일 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품은 유전과 환경이 뒤섞여 형성된다고 이론으로는 알아도 개인적 경험으로는 결코 아니었다.

'무슨 소리. 환경적 요인이 훨씬 크지.' 남편 또한 아이에게 매우 자상한 아빠로 내가 자라 온 환경과 달라도 너무도 달랐지만 아이는 예민함을 손에 꽉 쥐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한달 내내 세차게 울었다. 이만한 노력이 없었다면 더 많이 울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비로소 나의 성격 형성이 오로지 부모님이 제공한 환경 때문 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이는 예민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지만 양상이 조금 달랐고 출생순서에 따른 막내 이점이 존재했다. 나의 엄마가 겪었을 힘듬도 종종 떠올렸다. 공감을 시도했다가 일찌감치 벽에 부딪쳤을 지라도.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우는 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갖고 있었다. 울면 좀 어떤가. 우는 아이 그대로 귀한 인간인 것을.


남편이 아닌 나를 닮은 딸아이는 나와 동일 시 되었다. (남편은 아이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빠의 딸이니 닮은 부분이 있을 수 밖에) 그 때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더욱 부족한 상태로 아기를 사랑했으니 구멍 난 독에 물 붓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을 보이는 체력과 출렁이는 호르몬에 친가와 시가에서 요구하는 딸과 며느리 역할과 비교, 아기의 건강을 과도하게 염려한 무례한 말들은 나를 더욱 무너지게 했다. 그러다가 다음 단계로 어른들의 말에 흔들리는 나 자신의 자존감에 의문이 들었다.


'이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 된거야. 첫 단추를 들여다 보자.

세상은 있는 그대로 존재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외부의 비난을 나의 것으로 흡수하지 않고 무례한 요구를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더라도 노력을 멈출 수가 없구나.'



첫째 아이의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난 후 돌봄을 해주시는 선생님과 짧은 면담시간을 가졌다.

아이에게서 엄마와 대화를 많이 나눈 아이들의 특징이 보인다면서 아이에게 너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학교 가서 조잘조잘 잔소리와 긴 설명을 늘어놓나 보다. 간단 명료하게 생각을 전달해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의견이 겹치니 확신이 들었다. 머리로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보다, 가슴으로 키우라는 여백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자연스럽지만 내면에서는 내내 힘을 주고 있는 '미지의 퍼즐'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심리학 교수 오제은은 누구라도 아름다운 출생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자신의 근간이고 뿌리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제왕절개를 통해 나를 출산하셨는데 응급 상황에 닥쳐 옛날 옛적 같았으면 산모가 벌써 죽었을 거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매우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그 속에는 내가 세상에 나오겠다고 엄마를 위험에 빠트린 못난 딸이 있을 뿐이었다. 들어도 들어도 자신의 출생 이야기를 자꾸 듣고 싶어하는 내 딸아이의 기쁨의 얼굴에서, 어쩌면 나의 탄생의 기쁨을 발견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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