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에요. 당신에게 한번 보여줄까요?'라는 식이다
"우리 손녀는 밥을 싹싹 긁어서 참 잘 먹어."
당시 2살이었던 아이는 할머니의 칭찬에 짜증을 내며 숟가락을 내던졌다.
이유를 모르는 어른들은 아이의 태도와 예의범절에 집중했다. 순수한 본성에 가까운 2살짜리 아이는 잘 먹고 있던 음식을 향한 자발성이 타인의 욕망으로 탈바꿈됨을 알아차렸다. 이듬해 사회성이 생긴 아이는 할머니의 수고와 관계를 생각하여 반응방식을 바꾸어 갔지만 말이다. 지속된 압력에 언젠가 뚜껑이 열리듯 아이의 저지레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었다.
1965년 미국에서 초판 된 부모 교육서의 고전 <부모와 아이사이> 책에서 칭찬에 대해 설명했다.
'잘못된 칭찬'을 받을수록 아이의 버릇이 더 나빠지는 것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길에 대해 불안감을 표현하는 아이 나름의 방법이다.
'넌 참 착한 애야'라는 말에 '나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에요. 당신에게 한번 보여줄까요?'라는 식이다. 영리하다, 똑똑하다는 등 상대에 대해 '판결'내리는 칭찬을 받았던 초등학생 아이가 역량을 크게 더욱 발휘해야 할 중고등 학생이 되면 도전하거나 배우는 데 있어서 꽁무니를 빼려는 태도는 자기가 누리고 있는 높은 '평가'에서 위험에 빠트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력이나 과정에 대해 칭찬받는 아이들은 어려운 과제에 더욱 끈질기게 매달리는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넌 참 훌륭한 아이다, 의젓하다, 네가 없으면 엄마가 어떻게 살겠니, 참 배려할 줄을 알아'라는 등의 말은 위협과 걱정을 안겨주는 말이다.
모습 자체로 '예쁘다'는 통상적인 말은 괜찮지만 자아의 뿌리가 확립되기 전 아이들에게 특별히 예쁜 외모 평가를 지속적으로 듣도록 하는 것은 은연중 나의 모습들 중 외모만 가치 있다는 생각을 줄 수 있다. 비슷하게는 '너는 음식은 참 잘해'라는 교묘한 칭찬은 안 하니만 못하게 되려 화를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충고, 설교, 판단, 평가하는 칭찬은 거부감을 일으킨다.
그저 칭찬이라면 다 좋은 줄 알아서 인정받고자 했고 또 남에게 칭찬하려고 노력했다.
'얘는 참 속이 깊어. 어른의 마음을 잘 헤아려.'라는 칭찬은 나를 힘겹게 만들었지만 '맏딸로서, 누나로서, 언니로서, 살림밑천으로서' 역할을 해냈을 때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달콤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로부터 흘러 들어와 가정의 일상을 지배한 능력주의는 특별한 뭔가를 해냈을 때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것을 넘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아들러식 대화법>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라다 아야코는 아예 '칭찬'을 하기보다 '용기를 북돋워주기'를 추천하였다. 아무리 부모와 자녀 사이일지라도 칭찬은 수평이 아닌 수직 구도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칭찬하는 사람은 '나는 너를 칭찬하는 위치에 있어'라는 심리를 내포하기도 한다. 부정성으로 자기애가 강한 부모는 자녀를 칭찬함으로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남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끌어올리기는 두말 할 것도 없다.
하루는 아이가 놀이방 정리를 하기 싫다며 짜증을 냈을 때 '용기 북돋워주기'를 해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한 카테고리를 먼저 선택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인형, 레고, 블록 중 손쉬운 인형을 선택했다. 엄마가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동안 아이가 인형을 치우기로 하고 나머지는 엄마랑 같이 하자고 말했다. 조금 후 아이는 인형을 다 치웠다고 내게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은 '잘했다, 똑똑하다, 잘 한다' 등 결과를 칭찬했다면 이제는 과정이나 그로 인해 느껴진 기쁜 감정이나 고마움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을 염두하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와, 아까보다 바닥이 더 깨끗해졌구나! 나머지 흩뿌려진 레고는 엄마랑 같이 치우자'
몇 주 뒤였다. 아이는 혼자서 버거워 보였던 놀이방을 스스로 싹 정리를 해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카테고리 별로 세세하게 분리해서 말이다. 사랑과 기다림의 힘은 요술항아리처럼 없던 에너지도 샘솟게 만들었다.
또한 수학 숙제를 하며 힘들어할 때도 응용해 볼 수 있었다.
아이가 문제를 하루에 10개씩 충분히 풀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8개만 풀고 만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제는 7개 풀기 참 힘겨워 했는데 오늘은 8개나 풀었구나.'
그러면 오래지 않아 아이 스스로 9개를 풀어볼까 하는 생각이란 게 들 때가 온다.
숙제를 했냐고 묻기보다, 아무 말 않거나 아이가 요청할 때 돕는 편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니 한 번씩 확인 삼아 물어보고 도울 게 있는지 살펴봐 주었다. 기분 좋은 지지를 통해 세워놓은 자기 효능감과 정서를 바탕으로 무엇이든 자신이 필요로 한 때에 박차고 나갈 힘이 생긴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사랑을 기반한 신뢰는 자신의 재능이나 공부를 넘어 사회생활을 하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무한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부모의 경우,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가 20개 풀 수 있는 능력치를 비교하는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다. 그러면 8~10개 풀 수 있었던 것 마저도 0개로 수렴하게 만드는 길이다. 지속된 비난과 채찍질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든다.한번 말할 때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시작을 망설이고 번아웃이나 무기력으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몸소 무기력과 번아웃을 경험한 나는 '이래 가지고 커서 무슨 일을 하겠니! 생각이란 놈을 머리에 탑재하고 살아라!'라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소리를 참아낼 수 있었다. 부모는 언제나 자녀를 믿었다고 말한다. 하라다 아야코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언어의 힘보다 중요한 건, 일상의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가 미치는 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예로 피아노 연습을 안 하고 학원에 갔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을 스스로 느껴봐야 한다.
'우리 아이는 말해 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안 할 거예요' 라고 한다면 자녀가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 시작된 건지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적 동기로 시작한 거라면 적당한 기간을 서로 조율하여 약속하고 그 기간까지는 공부를 이어나가기로 하면서 도중에 끈기와 긍정적인 언어로 이끌어 줄 수 있다. 한편으로 아이가 피아노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어떤 이에겐 올바른 칭찬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나의 경우 카르마를 역행해야 하는 '노력하는 자의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양육 법칙을 향해 달려가기 보다 부모와 자녀가 오늘의 사소한 칭찬과 감사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짜증을 내며 울 때 권유했던 심호흡은 내게 더 필요해 보였다.
오늘도 눈을 감고 감정 노폐물이 날숨과 함께 빠져나가는 명상을 해본다.
'아이를 키우지 않고 크는 걸 지켜볼 수 있는 힘을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