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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un 23. 2024

놀이터에 울려퍼진 나의 고함소리 (심리상담편)

"너~ 돌 던지지 말라고 했지!  엄마 어딨어~!!"

선생님 :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요?

나       : 하아... 정말 부들부들 화가 나는 일을 겪었어요.


나: 놀이터에서 아이 그네를 밀어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초등 2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애가 우리 쪽으로 돌 던지기 놀이를 하는 거예요. 타이르며 주의를 주었지요. 모래도 함께 쥐어 던졌는지 때마침 불어 온 바람을 만나 모래바람이 일으켜 저희를 뒤덮었고 제 눈 안에도 들어왔어요. 무척 화가 났지만 침착하고 엄한 목소리로 "얘야~ 사람들 있는 데로 돌 던지지 말아라~!"라고 했죠. 제 말은 먹히지 않았고 남자애는 한번 더 돌을 던졌는데 이번에는 제법 큰 돌이 제 아이 앞으로 딱 떨어졌어요. 이마에 맞았으면 어떡할 뻔했나 순간 화가 나 고함을 쳤습니다.


"너~ 돌 던지지 말라고 했지! 엄마 어딨어~!!"


그제야 시야에 없던 남자애 엄마가 어디선가 뛰어 돌아왔어요.

벤치에서 한참 이야기 나누더니 그 엄마는 남자애 손목을 잡아끌고 제게 와서 따졌습니다.


"제 지인 말로는 그쪽으로 돌을 던진 게 아니라는데, 엄마 없다고 애 놀래게 큰소리쳐도 되는 거예요?!

우리 애가 잘못한 일도 아니니 사과받으러 왔어요. 우리 애 권리를 지켜주게요!"


"정말 어이가 없네요. 그분은 잘못 정보를 흘리고 어디 가셨대요? 아이랑 한참 이야기 나누시길래 사과하러 오는 줄 알았네요. 엄마 없다고 소리친 게 아니라 진짜로 엄마가 어딨는지 물어본 거예요. 몇 번 주의를 줬는데도 계속 돌을 던졌고 돌이 저희 애 앞으로 딱 떨어졌어요. 사람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나       : 남자애 엄마는 사실 여부에 확신을 잃어갔지만 기존 기세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고, 제가 아이에게 소리 지른 것에만 집중해서 답답했어요. 그 남자애는 얼굴빛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안 됐기도 해서 남자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꼬마야, 아까 사람들 있는 쪽으로 돌 던지지 말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어, 너도 알지?

아줌마도 위험했던 상황에 너무 화가 나서 큰소리쳤던 거야. 놀라게 한 건 미안하지만 다음부턴 사람들 있는 쪽으로 돌 던지지 말아라~?!."


우리 아들을 천방지축 아이로 보는 거냐고 말했던 그 엄마는, 위협은 미안했다면서 옛다~사과를 던지고는 아들 손목을 끌고 휑 가버렸어요. 싸움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부들부들 화가 났죠.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이거든요. 그 후로 마주칠 때면 저 보란 듯이 갑자기 자기 아들을 깡패처럼 다루고 다그쳤어요. 자신이 이렇게 공격성 있는 사람이니 잘 보란 듯이요. 오히려 자신의 아이를 천방지축으로 여기고 막 대하는 사람은 그 엄마였어요.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희 아이 그네 옆자리에 그 남자애 친구들로 보이는  또래 여자애들이 그네를 타고 있었어요.

"어우야~ 모래 바람 다 맞잖아~." 꺅꺅 소리에 그 남자애는 더 자극을 받았었던 거고요. 돌을 던지는 폼이 야구선수 저리 가라였어요. 이성에게 스윙 실력을 뽐내며 관심을 끄는 모양 새였던 거죠. 외동아들 가진 그 엄마한테 다시 가서 또래 여자 애들에게 신체력을 과시하느라 내 말을 듣지도 않았던 거라고 말해줄 수도 없고요. 나원 참.


선생님 : 그러게요. 돌을 맞았으면 크게 다칠 뻔했네요. 긴장되고 힘든 상황에서도 놀란 아이 마음까지 토닥여 주셨네요. 오며 가며 마주친다고 했죠? 같은 동 사는 사람인데 오며 가며 불편할 바에 인사 나눌 기회가 생기면 아까 말하지 못한 내용도 전해 보세요. 권리를 지킨다며 따지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이 크고 마음이 여린 사람일 수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확 열려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어요.


나       : 맞아요.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너무 화가 나서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에요. 걸리는 게 있다면 1층 엘리베이터에서 그 남자애가 혼자 있었는데 제가 오니까 딴청을 피우며 안 탄다는 거예요. "너는 안 타니?" 물어봤는데 주눅 든 표정으로 안 탄대요. 자기 집 다니는 건데도 저를 마주칠까 마음이 참 불편할 거 같아요. 제 딴에는 제 아이들을 지킨다고 소리친 거지만요.


선생님 : 엄마는 아이를 '자켜줘야 한다'라고 생각하나요?


나       : 그렇죠. 아이들은 여린 존재인데 엄마가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줄까요.

저는 어린 시절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엄마가 전적으로 내 편을 들었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동네를 지나가던 중 저를 괴롭혔던 아이를 만나서 '엄마, 쟤가 나 괴롭힌 애야.'라고 하면 엄마는 오히려 그 친구 편을 들고 그 자리이서 저를 나무라셨어요. 가방에서 과자까지  꺼내서 건네주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씀하셨어요. 의도와 상관없이 엄마는 상대의 편을 든 겁니다. 저는 무척 무안했고 속이 상해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제비뽑기로 반에서 제일 싸움꾼이 제 짝이 되었어요. 그 애는 남자애들과 피가 나게 싸우기도 했고 담임 선생님도 발로 차며 대들었어요. 짝인 저도 자주 때렸고요. 극심한 스트레스로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자 저희 엄마는 학교로 찾아가서 저를 제외한 엄마, 선생님, 제 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고 급기야 하교길에 그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잘해주셨어요. 아이스크림빨이 끝나자, 너만 엄마 있냐 나도 엄마한테 이를 거라며 괴롭힘은 지속됐어요. 그 애는 저희 엄마를 만만하게 본 겁니다.


반면, 아버지는 반대였어요.

자녀에게는 가장 폭력적인 사람이면서 남이 자기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는 건 못 보는 사람이었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중 '저 친구가 나 괴롭히는 애야'라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 '너 내 딸 괴롭히면 죽는다'라고 고압적인 자세로 위협했어요. 중1 남동생을 집단 폭행한 남자아이들에 대해선 학교 반으로 들어가 가해자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 담임선생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간식도 나눠주며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듯 보였어요. 그러더니 아버지는 '얘들아 따로 이야기 좀 나눌까'하더니 비어있는 과학실로 가해자 학생들을 불러 놓고는 엎드려뻗쳐로 기합을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너 아저씨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아 몰라?라고 했고 그 뒤에는 무시무시한 어떠한 말로 위협했는지는 말씀해 주지 않았어요. 바람직한 방식은 절대 아니지만 내 편이 되어 주는 면에서는 엄마의 방식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우리 집은 참 중간이 없어요. 아버지에게 말하면 이 정도로 일이 커지니 다음부터 말을 안 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요.


선생님 : 다음부터는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면 혼자 어떻게 대처했나요?


나       : 어려움이 생기면 솔직하게 고민을 나누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기억들이 있고요. 어쨌거나 시간이 흘렀고 결국 볕 뜨는 날이 오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 아버지도 딸을 지켜준다고 했던 행동이었지만 곤란을 느꼈네요. 잔디아이님도 아이를 지켜준다고 개입을 한다면 아이들도 엄마에게 말을 못 하겠네요?


나       : .........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위험한 상항일 때는 엄마가 도와줘야 하는 것이 맞겠지요?


선생님 : 위험한 상황일 때는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아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위험은 사전에 막을 수 없어요. 위험은 겪은 후 일어나는데서 성장이 일어납니다. 아이는 어른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도 여러 가지 상황을 겪고 살아가겠죠.

아이를 '지켜준다'는 의미보다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것'의 의미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해요.


나       : 아.. 그렇군요. 그것이 옳은 방향성인 걸 몰랐어요.


저번에 또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요. 덩치가 크고 드세 보이는 또래 남자애가 제 아이가 타고 있던 그넷줄을 덥석 잡는 거예요. 그랬더니 제 아이는 그네에서 내려와 스르르 다른 곳으로 피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남자애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꼬마야, 먼저 타고 있었던 거니 기다렸다가 차례차례 타자~!"

그래야 그 남자애도 규칙을 알게 되고 제 아이도 그네를 뺏기지 않을 수 있죠. 이런 건 어른이 가르쳐줘야 되겠지요?


선생님 : 아이가 여러 상황들을 접하며 스스로 터득할 일이에요. 왜 엄마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나       : 억울하게 그네를 빼앗기는 모습이 안 됐잖아요. 이런거야말로 자기 권리를 찾을 줄 알아야죠. 쭈구리된 거 같고요.


선생님 : 권리를 빼앗기고 빼앗아야 하는 구도네요. 엄마가 아이를 쭈구리로 보고 있네요. 아이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가 됐고요. 엄마가 다 개입하고 해결해 주면 아이는 진짜 쭈구리가 되죠. 억울함도 겪어봐야 다음번에 어떻게 대처할지 다짐도 하고 자신을 지킬 공격성도 이끌어 내고 조절하는 힘이 생기죠.

아이가 엄마보다 지혜롭네요. 자기보다 드세보이고 자기 몸도 제어 안 되는 아이를 피한 건 현명한 판단이에요. 정보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맞섰다가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와 부모의 마음을 파악하여 도움을 청할지 말지 결정해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상당수 아이들은 '공격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을 지키는 공격성은 스스로 키우는 거예요. 조금 건드려 봤는데 공격성을 발휘 못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똥을 피해야 할 때는 피하고 공격성을 발휘해야 할 때는 발휘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 해요. 정말 필요할 때는 부모나 선생님에게 도움 요청을 하도록 가르쳐 줘야 하고요.


나       : 그렇군요. 억압과 폭력 앞에 무력하고 억울했던 마음이 제 아이에게 투영된 것 같아요.

복합적인 면들이 많네요. 상황들을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심리상담을 마치고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른들과는 다른 순수한 본능의 세계에 대해 말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개입을 줄인다고 줄였지만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도의 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행한 부모님의 해결방식이 내 입장에선 극과 극으로 치우쳐 보이는 것처럼 나의 행동이 내 아이들에게 상식적이거나 중간이 아닐 때도 있겠지. 내가 겪은 야생이 혹독했다고 아이들의 경험을 제한할 수 없거늘. 비교적 가장 안전한 인간 세계를 연습해 볼 수 있는 때는 아이 인생에서 가장 어린 '지금'일 수도 잇겠다 싶었다.


집에 와서 돌을 던진 그 남자 꼬마애를 떠올려 보았다.

EBS가 제작한 책 <아이의 사생활>에 따르면 여자 아이의 뇌량은 남자아이보다 10퍼센트 더 두텁고 넓기에 좌뇌 우뇌 연결이 긴밀하고 효율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 간에 소통이 원활하고 멀티태스킹이 더욱 가능하다고 했다. 돌을 던졌던 그 남자애는 멀티태스킹 능력보다는 한 가지에 몰입과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나의 지침이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목표대상이 또래 여자아이들이었으니 남성호르몬 분출로 가장 매력적인 스윙으로 신체력을 과시하는 본능에 충실한 아이였던 것이다.

책의 지침대로라면 그 아이 앞으로 직접 걸어가서 눈을 마주 보고 "모래바람이 눈에 들어가서 눈이 아프구나. 저 나무 쪽을 향해서 돌을 던져 줄래."라고 했어야 한다.


그런 상상을 하며 혼자 피식대다 말고, 내가 되고 싶은 부모상을 떠올려 본다.

아이가 즐겁게 세상을 살다가 부모에게 어렵지 않게 고민을 꺼낼 수 있고 부모는 전적으로 아이들 편이 되어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는 든든함이다. 그러려면 당장의 어려움에 흔들리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성장의 본질을 바라봐야지 생각했다. 오늘도 애가 나를 키운다.



그림영역

: 아들은 없지만 남편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말해본다.

"오늘 오후 5시까지 분리수거 버려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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