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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ul 21. 2024

지랄 총량의 법칙

아이고 내버려 둬~어릴 때 지랄을 다 해놔야 해!

읽기 전 공지 : 긴 이전 글을 나누고 새 글로 보완하였습니다. (중복)


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의 애씀처럼 3월의 봄 공동육아 어린이집 마당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이 할 것 없이 낯섦과 설렘으로 가득한 이곳은 많은 기대와 염려가 오고 갔다.

담임 선생님께 우리 아이가 어떻게 보일까,  왜 내 아이만 울고불고할까. 그때 선생님은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해 말씀하셨다.


"선생님, 우리 애가 울고불고 난리네요."

"우리 아이가 아침 체조를 따라 하지 않고 있네요~ "


툇마루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시던 원장 선생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이고, 내버려둬~~그냥. 아이들은 원래 울고불고해~ 그리고 선생님한테 억지로 인사시키지 않아도 돼요.

7살 되거나 때 되면 다 인사해요. 어릴 때 충분히 지랄을 해놔야 돼~ 지랄 총량의 법칙!


원숙한 선생님의 시선에 안정을 느끼니 엄마들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염려를 거두었다.

본성에 가까운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어른들의 아이 적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인 때, 온라인으로 이루어진 어린이집 부모 전체 모임이 있었다.

선생님과 부모들이 함께 육아 고민을 나누고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4살 엄마가 엄마가 손을 들고 말했다. 아는 지인에게도 인사를 잘하지 않는 아이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엄마는 아이의 때를 기다려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주변 어르신의 질타에 속상함을 토로했다. 그랬더니 7세 엄마가 손을 들어 자신의 아이 서진이와 동네 할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공유했다.


어린이집 옆 낮은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아담하고 예쁜 카페 마당에서의 일이다. 서진이는 그곳에서 자주 마주치는 단골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와도 언제나 묵묵부답이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1,2년이 지나서야 할아버지께 먼저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고 했다. 타고나게 조용한 기질을 가진 아이 모습에 매우 놀라웠지만 단연코 하루아침의 일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할아버지를 옆 테이블 손님으로 조금씩 보아 온 결과 안전하다는 판단과 간헐적이지만 기간을 둔 친숙한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린 아이 서진이 개인이 세상을 파악하는 속도였다. 그 사이 사회성도 길러 기쁜 마음으로 외면 세계를 향해 손길을 뻗었다. 스스로 터득한 소통 방식은 다른 관계에도 천천히 적용된다. 누가 시켜서 고개만 끄덕이는 '(안녕하) 세요' 노련한 인사는 세대 간 격세지감과 외로움을 안길 뿐이다. 말미에 선생님은 간단명료한 경륜의 지혜를 나누어 주셨다. 권위로서 한쪽에서 한쪽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닌 수평적인 소통은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고 귀감이 되었다.


이렇듯 삶은 지랄총량처럼 균형을 맞추어 가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인간미 넘치는 친구가 학생 때는 쌀쌀맞은 왕재수였다는 믿기지 않은 고백

- 낯선 사람 앞에서 말을 못 붙이며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군대 가서 변화를 이루었다는 남편의 말

- 피자를 절대 못 먹게 했던 엄마의 통제로 대학생이 돼서 맨날 피자만 먹었다는 친구의 말

- 어릴 땐 매우 순한 사람이었는데 어른이 돼서는 오히려 차도녀가 되었다는 친구의 말

- 내면 가득한 타자화로 인한 무기력과 공허함을 벗어던지고 '나'로서 살아가려는 나의 삶


마음뿐 아니라 몸 안팎의 균형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태열이 채 빠져나가지 않은 더운 아이는 날뛰고 있는데 체온이 낮은 노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 당장 자신이 추우니  아이도 추울 것이라 단정 짓고 옷을 두껍게 입도록 강요한다. 다리를 떠는 경우는 긴장 완화와 혈액순환을 위한 자가치유 중이라는 점 등이다. 단, 타인에게 불편감을 줄 수 있다는 주의점이 있다.


몸에 걸치는 장식 또는 물건을 소유하는 외형적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기도 한다.

나의 남편은 언제나 백팩을 메고 다닌다. 생각지도 못한 생활필수품이 나오기도 해서 놀랍다. (아이들과 나갈 때는 내려놓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매는 편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남편의 미술심리검사에서와 같이 나무그림에 뻥 뚫린 까만 큰 구멍은 '불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그 구멍을  내면으로는 부성애로 채우기도 하고 외면으로는 백팩으로 채웠다. 무턱대고 가방을 메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검색을 해봤다.


지랄 총량의 법칙

:지랄은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지랄 총량의 법칙은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한동대 법대 교수 김두식의 책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말


그렇다. 나는 어릴 때 지랄을 못했다.

계속 지랄하며 울다가 더 맞을라고. 게다가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총량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었으니까.

어릴 때 못한 지랄, 보통 사춘기 때 한다. 사춘기라는 좋은 기회를 늏쳤다면 경제나 가정 등 책임이 커진 오춘기에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K-화병 난다.


"너까지 엄마 힘들게 하면 안 되지."

"딸에게 이런 말도 못 하니. 그럼 나는 누구한테 말하니."


나만 알고, 나만 알아야 했던 크나큰 무게는 내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이어졌다.

"엄마한테만 전화하지 말고 아빠한테도 자주 전화해.

자식 교육 똑바로 안 시켰다고 엄마한테 그러잖아. 엄마를 봐서 아빠한테 전화드려"


압박이 목까지 차오르자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대소사 관련해서 엄마에게만 말할 거니 그렇게 아시라고 선포했다. 자녀 교육은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그대로 보고 배워 흡수하고 보답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부모를 사랑했고 우주였고 전부였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보낼 안부 문자를 위해 휴대폰을 열었다. 문자를 쓰던 중 예전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문자 리스트가 보였다. 쭉쭉 올려보니 다년간에 걸친 모든 메시지가 모두 욕과 협박이라 쓰던 문자를 도로 지웠다.


아버지는 어릴 적 못했던 ‘지랄’을 중년에 만취 상타로 할아버지에게 '지랄'을 하는 것을 내 눈으로 자주 목격했다. 현자들은 나의 몸과 마음 건강을 위하여 '용서'하라고 한다. 비록 잊히진 않을지라도.


뇌과학 연구에서도 깊은 용서를 겪은 사람의 염색체 텔로미어 길이가 길어지고 노화를 늦추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렇다고 용서가 곧 화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감정이든 억지로 '의도'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이 나를 챙겨주는 흐름 그대로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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