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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ul 29. 2024

물려주고 싶은 한 가지 유산

사람을 넘어뜨릴 수도 있고 일으킬 수도 있는 힘

연애시절 남편의 통화를 엿들었다. 즐거운 농담을 티키타카 주고받으면서도 예의를 차렸다.

"아니에요~ 저 안 주셔도 돼요. 정말 괜찮아요. 하하"


호의에 감사하지만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내용이었다. 통화를 마친 후 누구냐고 물어보니 아버지란다.

경상도분에 말수가 적은 분이라고 들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서로를 존중했고 상냥했다.


남편은 긍정의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까지도 그 언어방식은 지속되었다. 나와 다툼이 있을 때는 상대에게 탓을 돌리기보다 침착하고 단정한 톤으로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만 표현했다. 남편은 <비폭력대화> 책을 읽은 적이 없지만 누구보다 비폭력대화 방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출산 후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도 퇴근 후 고생 많았다는 한마디는 큰 위로가 되었다. 언어는 사람을 넘어뜨릴 수도 있고 일으킬 수도 있는 힘이 있다. 좋은 언어는 삶을 재생산한다.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준다. 지속할 에너지를 준다.


누군가 내게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집안의 '언어'라고 말하겠다.

때에 따라 부모의 권위가 담긴 단호함은 있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는 내 안에 들어앉아 무의식을 질질 끌고 다니는 부정 언어와 달리 신중한 언어를 골라서 들려주고 싶었다. 노력으로 인해 점점 부정의 언어가 줄어들고 있었지만 세상에서 들려오는 언어로부터 아이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었다. 특히 각종 위험한 뉴스거리를 유아동에게 일찍 상기시키는 할머니의 말이 그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 심리상담 때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은 나를 공감해 주시면서도 아이가 할머니의 말을 듣고 조심성을 갖게 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덧붙이셨다. 그로 인해 아이가 잘못 클 거라는 엄마의 '불안한 시선'이 더 해로울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할머니는 가끔 보지만 불안한 엄마와는 훨씬 밀접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나 나나 불안의 시선은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보고 느낀 대로 그대로 복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똑같이 생존을 위한 상황에서 불안보다 긍정의 언어로 자아실현과 그 이상을 이룬 민족이 있다.

바로 수천 년 동안 머물 나라 없이 떠돌았던 유대인이다. 그들은 아이와 언제 어디서 헤어지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사고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자리를 털고 터를 옮기더라도 지식을 저장할 공간은 머릿속 밖에 없었다. 노벨수상자의 22퍼센트를 차지하기도 하고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미국 억만장자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창업주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티키타카 즐거운 대화를 통해 지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전통적인 교육법 '하부르타' 토론놀이 교육법이 있었다. 가정 내 식탁에서부터 수평적인 태도로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고 질문한다. 하버드대 연구 자료에 의하면 주입식 보다 '하브루타'교육법의 학습효과가 14배나 높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불안의 언어보다 긍정의 언어로 교육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늘의 약속'이 있었다. 유대교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내면에 가득 찬 믿음과 사랑을 타인에게 베푸는 정신에서 무한한 힘이 나왔고 성공을 이끌었다.


이 토론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된다고 하면 말대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교사상의 장점인 '예의'를 갖추면서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선을 넘는 것이 자연스러운 참견의 민족에다가 지식과 지혜를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은 대화의 단절로 귀결되기 쉽다. 배움은 아랫사람에게서도 구할 수가 있으며 서로가 우호적인 방식을 유지하며 꾸준하게 대화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오은영박사도 말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말대꾸로 보이는 자기생각을 잘 말하는 아이였는데 부모님이 수치심을 주며 호되게 꾸짖지 않았던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권위가 있는 넉넉한 어른의 마음으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녀와 대화할 수 있다.


어려서는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갈수록 하부르타식 토론이 가능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자주 사용하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는 말은 당장 눈앞의 성과를 위한 방식이다. 아이가 독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장기적인 언어방식이 아니다. 심지어 아이가 생존의 위험에 처했을 때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직관과 사고력 회로가 녹슬어 있다면 매우 곤란하다. 한국 부모가 기다릴 수 있는 최대 3초가 지나지 않아 빨리빨리 대답 안 해?라는 언어와는 다르다. 꼭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닌 엄마인 내게도 필요한 언어방식이다. 뇌 가소성으로 인해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뇌가 뻥 뚫리는 듯한 확장이 이루어진다면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생길 것 같아 미래가 기대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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