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의 때에, 자녀를 섬기는 법을 손수 알려주고 떠나셨던 것 같다
(띵동) "엄마를 돌보러 왔어요."
초인종 소리다. 엄마로 살며 지친 당신을 찾아온 누군가 이와 같은 말을 건넨다면?
영화 <툴리>에서 아기를 돌보러 온 야간 보모가 주인공 마를로에게 건넨 대사다. 마를로는 두 아이를 양육하며 셋째 아기를 출산한 엄마다. 정서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그녀에게 구원자가 나타났다. 줄거리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반전이나 극적인 메시지보다는 아주 현실적인 육아 루틴을 반복으로 보여주는 장면 그 자체에 있다.
영화 <툴리> 상황처럼 결코 잊을 수 없는 보모를 만난 적이 있다. 정부에서 돌봄을 지원하는 일명 '육아 도우미' 다. 50대 중후반 정도 연령의 돌봄 선생님은 반짝이는 눈과 예쁜 미소를 갖고 계셨다. 1층 현관 출입문에서 벨이 울리면 둘째 아기는 모니터로 보고 옹아리로 선생님을 반겼다. 그러면 숲 속의 새소리 같은 목소리 화답이 비상계단을 타고 우리 집 3층까지 영롱하게 울려 퍼졌다.
선생님을 위해 싱싱한 과일을 예쁜 접시에 담아 매일 준비했다. 우리 셋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첫째를 하원시키러 어린이집으로 나선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선생님은 퇴근하시는 루틴이었다. 아이와 하원하는 길에 놀이터에서 놀거나 바람을 쐬면 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여러 날이 쌓일수록 선생님에게 몰래 의지를 많이 했고 나의 이야기를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아닌 것에 대해서는 비판도 하며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세대를 넘어선 친구가 되었다. 나는 선생님을 아이의 외할머니라고 여기고 사랑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개척교회 목사님의 아내인 사모님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해주셨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지역 관할 돌봄 센터에서는 시스템 절차상 서류 미비를 근거로 돌봄 선생님의 건강검진을 재요청했다. 선생님은 귀찮은 상황에 푸념하셨지만 어쩔 수 없이 재검진을 받아야 하는 노릇이었다. 그때만 해도 좋은 나날이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 그 후, 어제와 똑같은 한낮에 휴대폰이 울렸다.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면서도 노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어요. 폐암 말기래요.....
나 진짜 아픈 데 없이 건강하잖아요. 별님 엄마.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있죠?
다른 병원에도 가보기로 했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오진이길 바랐지만 변함없는 결과에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잘못된 결과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남편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인데, 하나님은 도대체 뭐 하는 분이신 건가. 잡아가라는 귀신은 안 잡아가고 살아야 할 젊은 분에게 고통을 주셨다. 공정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라며! 단 하루 만에 현실을 비현실로 뒤바꾸는 것도 능력인가?? 이건 말이 안 돼도 한참 안 되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명함 사진을 보며 전해 들었던 영혼이 충만하고 멋지게 장성한 아들과 딸은 어떡하라고? 아내를 알뜰살뜰하게 챙기고 사랑하는 남편분은 어떡하라고!!!!??
원망과 눈물을 쏟고 나니, 엄마로서 자연의 섭리 앞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늘에 욕을 실컷 하고 나니, 무력하고 한심한 내 걱정이 이어졌다.
'제가 심했다고 생각지는 마세요.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저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세요.'
우주의 낮과 밤은 오차 없이 돌아가면서, 생명에게는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이 야만적인 것이었다.
선생님의 건강은 기적적으로 좋아지다 말다 하면서 3년 6개월 만에 생명의 빛이 하나님 곁으로 닿았다.
힘겨운 투병을 하시는 동안 나눠주신 말씀들이 떠오른다.
"항암 부작용으로 몸이 너무 힘들긴 했지만 내 마음은 정말 괜찮아요.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신기해요. 우리 딸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죠. 아들과 남편도 나 때문에 너무 힘드니 그게 미안하죠.... 나는 천국으로 가니까 두렵지 않아요. 내가 겪는 죽음의 과정을 통해 삶의 감사함, 소중함, 기쁨을 알게 되는데 쓰임 받고 싶어요. 그게 나의 사명이라 생각하니 감사해요. 별님 엄마 친구분 건강검진 결과가 괜찮다고 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는 아이들을 다 키웠잖아요. 6살짜리 아이를 둔 아이 엄마인데 내가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몰라요."
이런 자신의 상황에서도 남을 걱정하며 밤을 지새운 성생님의 살아 온 지난 날들이 궁금해졌다. 그 분의 마지막의 때와 내가 닿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툴리>에서도 '죽음'이 등장했다. 마를로가 툴리와 자신들을 위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가 크게 났다. 죽음의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난 마를로를 본 남편은 아내의 존재를 감사하게 되고 육아와 가정 일에도 적극 참여하며 가족의 통합을 이루어간다는 결말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비현실적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시나리오가 이어지고 나의 기대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가시거리에 있는 미래 정도를 추측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옆에서 선생님의 삶의 방식을 가늠해 보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답을 내리는 적은 거의 없으셨다. 조언이라면, 과거에 어린 자녀들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도 놓친 모습이 많아 그저 아쉽다고 하셨다. 과거 자신의 자녀를 만나듯, 선생님은 시종일관 둘째 아기를 바라보고, 만지고, 같은 옹알이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세운 본인의 무릎에 앉혀 깔깔 웃음을 나누었다.
당시의 나는, 자녀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는 게 가장 괴로웠다. 지금은 하루하루 직접 겪고 알아가야 채워진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에, 하도 답답해 하는 내게 들러 자녀를 섬기는 법을 손수 알려주고 떠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