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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창 Sep 11. 2016

평양냉면

그녀로부터 대비가 시작됐다. 그녀는 그녀 주변의 모든 것에 대척점에 있었다.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그곳에 와있는 건 아닐까 라는 판타지 소설같은 생각도 잠시했다. 그녀는 을지로에 있는 을지면옥에 있다. 오후 2시경, 참이슬 한 병과 평양냉면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는 못하고, 동공만 흔들어 그녀를 지켜봤다. 20대 초반? 인심써도 중반쯤이다. 그녀가 속한 상황 속에서 그녀가 제일 어렸다. 참이슬보다 어렸고, 평양냉면이 담긴 그릇보다 어렸다. 냉면집을 가득 채운 중년들보다 월등히 어렸다.

음식을 마주한 그녀의 에디튜드보다 그녀가 어렸다. 군더더기 없는 일련의 행위로 소주 뚜껑 따냈다. 오른손에 소주병과 왼손의 잔의 합도 좋았다. 손에서 술잔을 덜고, 냉면 그릇을 감싸들어 국물을 목구멍에 들이 부었다. 만족한 표정으로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 면을 풀어 헤치고, 처음보다 탁해진 국물을 다시 한번 마셨다.

첫번째 소주잔을 비웠다. 앞선 행위들이 그녀에게 소주를 마실 자격을 부여한다. 비운 잔을 지체없이 액체로 채웠다. 젓가락을 들어 몇가닥의 면을 들이켰다. 몇 가닥 안되는 면이 그녀의 입 속으로 빨려 드러가면서 가닥수가 줄었다. 마지막 면줄기가 사라질 때쯤 그녀의 양볼이 단단해졌다. 끈을 잡아당긴 복주머니 입구같은 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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