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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 Apr 14. 2020

떴다 떴다 마스크, 날아라 날아라!

국산 마스크 비행기 태우기 대작전


Ep1. 총체적 난국 글로벌 패밀리


얼마 전 업무차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큰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전화를 받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일전에 영상통화 앱 사용법을 알려줬는데 아직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연결됐다 끊기기를 몇 번, 어찌어찌 통화가 되었다. 엄마가 스피커폰을 눌렀는지 어깨 너머에 있는 나에게도 큰엄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들리니, 들려? 응! 언니 들려! 


이 정도면 안 들리는 게 이상한데... 휴대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엄마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래전 TV 프로그램 중 가족오락관에서 했던 게임이 떠올라 웃음을 꾹 참았다. 두 사람은 드디어 의사소통이 됐는지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휴대폰은 여전히 스피커폰 상태였다. 


엄마는 잘 지내냐며 먼저 안부 인사의 운을 띄웠다. 여기서 '잘 지내'는 늘 하던 인사말이기도 하지만 '이 시국'에 잘 지내냐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뉴스에서도 유럽이나 미국쪽 소식만 종종 나왔지, 우즈베키스탄은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엄마의 물음에 평소 같았음 '늘 똑같지 뭐' 하고 넘어갔을 큰엄마가 웬일로 길게 말을 늘어놨다. 듣자 하니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여긴 지금 봉쇄령이 내려진 상태야. 도시 간 이동도 금지됐고, 외출도 못 해."


어머, 어떡해. 엄마는 놀란 목소리로 탄식했다. 아주버님 일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니 일단은 무기한 재택근무라고 한다. 큰아빠와 함께 우즈벡으로 건너온 몇몇 동료들은 봉쇄되기 전 진작 한국으로 떠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일하던 동료 중에는 폐 질환에 걸려 끝내 사망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은 아닌데, 아무래도 여기 의료 시설이 여의치 않으니까... 큰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이런저런 힘빠지는 얘기를 나누다 어느새 화제는 미국에 사는 사촌언니 쪽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여기도 만만치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워 보인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숨죽여 전화 내용을 엿듣고 있던 나는 문득 지난해 말 태어난 사촌언니의 아기가 떠올랐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기는 어쩌냐며 한숨을 쉬었다. 전화기 너머로도 씁쓸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이렇다. 큰엄마와 큰아빠는 우즈벡에 봉쇄된 상태로 이도 저도 못하고, 사촌언니는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미국에서 마스크도 없이 전전긍긍, 그 와중에 사촌동생은 군대(물론 한국)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 한마디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서로 도울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상황. 엄마는 본인이 나서야겠단 생각이 들었는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마스크를 좀 보낼까?"




Ep2. 미국으로 마스크 보내도 되나요?


엄마는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싶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나 또한 같은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물론 마스크는 얼마든지 보내주고 싶었다. 보낼 수만 있다면 매일 아침 모니터 앞에서 '마켓팅'을 할 자신도 있었다. 집에 있는 것도 끌어 모아 탈탈 털어 보내주고 싶었다. 보낼 수만 있다면. 문제는, 어떻게 보내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근데 엄마... 해외로 마스크 보낼 줄 알아?"

"아니..?"

"지금 미국으로 마스크 보낼 수 있어?"

"글쎄...?"

"뉴스에서 마스크 해외로 못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쏟아지는 질문에 비해 다소 애매한 답변들만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추에이션은 해외로 마스크를 보내도 되는지조차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서 큰엄마에게 마스크를 보내줄 테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쳐놓은 그런 시추에이션..? 그렇구나. 그랬구나.


비로소 사태 파악이 된 두 모녀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래, 이럴 땐 검색이 답이다. 휴대폰으로 포털 앱을 켜서 일단 아무렇게나 검색을 시작했다. '미국 마스크 국제택배' '미국으로 마스크 보내도 되나요' '미국 kf94 마스크' '미국으로 마스크 얼마나' '마스크 국제택배 보내기' ... 정보의 바다를 타고 타다 보니 미국 유학생 카페부터 해외 맘카페까지 들어와 있었다.


찾아본 결과는 이러했다. 당시 기준 미국으로 마스크를 보낼 수 있긴 하지만 KF94 마스크는 직계가족만 보낼 수 있고 한 달 기준 최대 8장까지만 가능. 한 마디로 수령인과 사촌 관계인 나는 직계가 아니므로 KF94 마스크를 보낼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이미 엄마가 소셜커머스에서 KF94 마스크 10매를 지른 뒤였다. (그것도 매우 비싸게!) 그러게 다 알아보고 사라니까! 잔소리는 늘 나의 몫이다.


말은 뱉어버렸고, 큰엄마에게는 덕분에 고맙다는 카톡이 날아왔다. 엄마조차 미처 생각 못 한 걸 작은 엄마가 챙겨준다며. 엄마는 답장으로 뭘 그러냐고 괜찮다며 환하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마스크를 미국으로 보내야만 한다!




Ep3. 국산 마스크 비행기 태우기 대작전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알아볼 게 한둘이 아니었다. 어떤 곳은 된다고 하고, 어디는 또 안 된다고 하고,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검색하다 지친 나는 반포기 상태로 잠이 들었고 인터넷보다 발로 뛰는 게 편한 엄마는 다음날 동네 우체국을 다녀왔다. 택배를 보낼 박스도 함께 사 왔다.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온 모양인지 엄마의 목소리는 전날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면마스크는 괜찮대. 면마스크는 보내도 돼. 집에 있는 거 보내면 될 것 같아. 열심히 설명하는 엄마의 손에 포스트잇 한 장이 들려있었다. 거기에는 'cotten mask'라고 큼직하게 적혀있었다. 


"다행이네. 근데 엄마, e가 아니라 o."

"아무튼 직원이 이렇게 쓰면 된대."


장난스러운 말투로 잘못 적힌 알파벳 철자를 고쳐주자 엄마는 딴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종이 한 장이 더있었다. EMS 통관신청서였다. 아마 우체국 직원이 인터넷에 서툰 엄마를 배려해 종이 신청서를 준 듯했다. 노트북을 열고 신청서에 적혀있는 주소를 검색하자 EMS나 국제우편을 신청하는 우체국 사이트가 떴다. 회원가입을 하고 '국제우편 스마트접수' 버튼을 누르니 종이 신청서에 적혀있는 양식이 그대로 나타났다. 어디보자...


음.. 오... 아.. 예...


'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요즘 뭐만 하면 단어 앞에 '스마트'가 붙는데 웬만큼 스마트하지 않고서는 이용하기가 힘든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가. 일단 채워야 하는 대부분의 항목들이 영어였다. 보내는 쪽과 받는 쪽 정보를 모두 영어로 입력해야 했다. 후다닥하고 넷플릭스 보려고 했는데! 내 야심 찬 계획이 물거품으로 변해가는 게 보였다. 다행히 큰엄마가 사촌언니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미리 보내준 덕분에 1단계는 얼추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세관신고서였다. 여기서 30분 넘게 까먹은 것 같다. 내용품명과 순중량, 상품분류번호, 가격 등 적어야 할 게 꽤 많았다. 내용품명에 'cotton mask'를 적고 집에 있는 저울로 마스크 무게를 재서 순중량을 채워 넣었다. 문제는 상품분류번호였다. 마스크 상품코드를 적으라는데, 면마스크가 1류에서 97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당연히 알 길이 없었다.


또다시 검색과 인내의 시간. 잘 참아왔던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온 것은 몇 번을 검색해도 일회용 마스크 상품코드만 나왔을 때였다. 결국 전날 알아둔 유학생 카페 찬스를 써서 면마스크 상품코드를 알아냈다. 여기까지 하니 진이 다 빠졌다. 새삼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대단해 보였다. 매번 이렇게 힘들게 물건을 주고받는다는 거 아니야! 세관신고서 작성까지 마치고 나니 그다음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했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신청만 하면 끝이었다. 




Ep4. 무사 도착을 기원하며


다음날 면마스크 여러 매가 담긴 박스와 통관신청서를 들고 동네 우체국을 방문했다. 엄마는 뭐가 그리도 걱정인지 박스에 테이프를 몇 번이고 꽁꽁 둘렀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말에 그제야 테이프 뜯는 손을 멈췄다. 번호표가 불리고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인터넷 접수를 해놔서 그런지 막상 가서는 할 게 없었다. 


"다 되셨어요."

"끝난 거예요? 가면 돼요?"

"네. 다 되셨어요."


창구에서 물품 확인하고 박스 무게만 잰 것 같은데 다 됐다는 말과 함께 휴대폰 메시지가 울렸다. [중량은 330g이며, 요금은 25170원이 결제되었습니다. 고객님의 EMS가 접수되었습니다.] 와우, 스마트한 세상이다. 직원에게 박스를 떠넘기다시피 건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체국을 나왔다.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우체국으로부터 톡이 하나 와있었다. 보낸 택배의 국제 항공운송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메세지였다. 국제택배, 까짓거 별거 아니네! 속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잘 간 게 맞는지 아직도 조마조마하긴 하다. 


미국으로 마스크를 보냈다. 일단은 보내긴 보냈다. 대륙 너머에 있는 아기가 마스크를 받아보려면 아직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 할 테지만, 그래도 우리집 마스크가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해본다. 이제는 무사히 도착하길 바랄 뿐이다. 떴다 떴다 마스크, 날아라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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