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나도 피어나길 바라며
오전 10시, 알람이 울리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터덜터덜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쭉 짜고 걸어 나와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는다. 평소라면 그 상태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양치를 하겠지만, 휴대폰은 자리에 두고 대신 베란다로 이어진 창문을 활짝 연다. 아직은 쌀쌀한 봄바람과 함께 여러 가지 향이 섞인 꽃내음이 방안으로 훅 들어온다. 오늘은 얼마나 더 자랐나. 허름한 나무 수납장 위에 일렬로 줄 선 채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식물들을 살펴본다. 너무 넋 놓고 구경했는지 양칫물이 바닥으로 뚝 떨어진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요즘 나의 ‘모닝 루틴’이다.
지난해 연말, 나는 TV에서 나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다가올 한 해가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되길 빌었다. 2020년에는 부디 지금과 달라져 있기를, 어디 가서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직장인이라는 답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나의 바람이 이뤄진 것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다만 내가 아니라 세상이 달라졌을 뿐. 전국에 전염병이 퍼졌고, 모두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준비하고 있는 상반기 공채가 하반기로 미뤄질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과 함께 기약 없는 백수 생활의 서막이 열렸다.
원래도 좁았지만 더 좁아진 취업문, 못 만난 지 100일이 다 되어가는 애인, 줄어든 알바 월급, 전염병 속에서 맞이한 생일, 방 안의 한숨 섞인 답답한 공기. 약 3개월간의 시간을 합친 것의 이름은 우울이었다. 나는 끝없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계속되는 무기력한 나날 속에 나를 바깥으로 이끈 것은 단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책은 제목만으로 내 발길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생전 식물에 관심도 없던 애가 꽃시장은 무슨. 몇 주 전쯤 종로 꽃시장으로 가는 길 엄마는 뜬금없다는 듯 말했다. 그건 그래. 빠르게 인정했다. 아는 꽃이라고는 장미나 개나리같이 전 국민이 모두 아는 꽃뿐이고, 아는 나무라고는 계절이 변할 때마다 찾아오는 벚나무나 단풍나무뿐인 한 마디로 '꽃알못'(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내가 식물을 기른다는 것이 뜬금없긴 하니까. 그렇지만 뜬금없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이 정도 뜬금없는 일은 놀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꽃시장에 도착하자마자 특유의 투박한 매력에 홀딱 빠진 나는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들었다. 직접 키운 채소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각종 쌈 채소와 대추토마토, 애호박 모종을 샀고, 기왕 눈요기할 꽃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 튤립, 해바라기, 패랭이를 구매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손이 묵직했다. 그제야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책임감은 있는 편이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새 식구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줬다. 급한 대로 스티로폼에 구멍을 뻥뻥 뚫어 흙을 쏟아 넣고 식물들을 옮겨 심은 뒤 물도 듬뿍 줬다. 집에 굴러다니던 스티로폼 위에서도 활짝 핀 튤립을 보니 살짝 미안했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으로 이사 가게 해줄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빛이 잘 드는 자리에 놔주는 것뿐이라, 위치 선정에 꽤 많은 열을 올리고 나서야 베란다를 나올 수 있었다. 딱히 한 건 없는데, 왠지 큰일을 한 기분이라 간만에 생기가 돌았다.
백수의 ‘부캐’인 가드너의 삶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그동안 새로 들어온 식구들은 나의 많은 점을 바꿔놓았다. 식물들의 상태를 계속해서 살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고, 반드시 꽃을 피우겠다는 이상한 도전 의식도 생겼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아침이 기다려진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꽃시장에 다녀온 지 사흘쯤 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꽃들에 물을 주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두 송이였던 패랭이가 세 송이로 늘어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꽃봉오리 하나가 밤사이 피어난 것이다. 으레 당연한 사실이 나는 왜 이리도 신기한지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다음날부터는 눈을 뜨면 베란다 창문부터 열어젖혔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잊은 채 허리를 굽혀 화분을 살폈다. 그러면 그 작은 생명들은 기대감에 부응하겠다는 듯 밤사이 쑥쑥 자란 모습으로 주인을 반겼다. 세 송이였던 패랭이는 어느덧 일곱 송이로 화분을 꽉 채웠고, 호박잎은 점점 커져 내 손바닥 크기를 훌쩍 뛰어넘었다. 싱그러운 아침이 몇 주간 이어지자 마음속에 기생하던 우울감은 힘없이 지고, 그 자리에 기쁨과 행복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왜 임이랑 작가가 괴로운 이들에게 식물을 추천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평생 봉오리 속에 꼭꼭 숨어있을 것만 같던 꽃송이가 활짝 피어난 것처럼 나도 언젠가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던 게 아닐까. 설령 저자의 의도가 그런 게 아니었더라도, 나는 패랭이로부터 그런 위안을 얻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대추토마토 이파리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노란 꽃송이를 발견했다. 이렇게 또 위로를 얻는다. 열매가 열릴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보다 활기찬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니 베란다 친구들도 건강하게 자라주길. 나도 힘내서 다시 시작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