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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Oct 17. 2020

해외 살이 6. 임신 종결

허무하게 끝나버린 첫 임신



#슬픈 예감은 왜 언제나 맞는 것일까...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임산부 치고는 높게 나온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조절해 주는 약을 꾸준히 먹고 건강 관리도 더 신경 써서 했다. 다시 한번 피검사도 하고..(여전히 피검사는 무섭더라ㅎㅎ)

버펄로 유기농 요구르트까지 먹어가며...ㅋㅋㅋㅋㅋ 버펄로 고기는 맛있는데 정말 요구르트는 비추하고 싶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운동을 조심히 하며 2주의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초음파 날, 딱 2주 후에 칼같이 다시 병원에 갔다. 그동안 병원은 다시 한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방문자 단속을 철저히 하면서 남편은 병원 입구에서 출입도 못하고 혼자서 계속해서 진료받고 했어야 했는데 

이번 초음파 역시 나 혼자 들어가게 되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아기..

의사는 굉장히 친절한 여선생님이셨고 떨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보는데 여전히 아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아기가 보여야 하는데... 아직도 보이 지를 않네요....

 걱정 말아요. 처음이고  하니까 다음번에 또 아기 가지면 되죠. 

이런 경우는 보통 착상이 잘 안돼서 그런 거라 예방하거나 조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죄책감 갖지 말고요. 다음번에 충분히 건강한 아기 가질 수 있으니 절대 걱정 말아요."


내내 밝은 목소리로 내게 용기를 준 선생님, 덕분에 마지막 초음파 검사는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건물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릴 남편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사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충격적이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그냥 멍~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병원을 나왔고 

남편은 강아지 같은 눈을 하고는 꼭 안아 주었다. 괜히 그 순간에 눈물이 핑~돌기는 했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하니까...


< 보고타 병원 응급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출처 : 인터넷 >


#응급실, 5분 만에 끝난 유산

산부인과 응급실은 바로 옆 병원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걸어서 3분 만에 도착, 다행히 응급실에서는 나를 보더니 남편도 함께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산부인과 응급실에는 한 5~6 사람이 앉아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고 번호표를 뽑아 우리도 앉으려고 하는데, 앉기도 전 바로 우리 차례가 되어 대기실에서 마음 추스를 새도 없이 의사를 만났다. 외국인(나)이 환자라니 남편도 예외적으로 같이 들어와도 된다고 하면서 의사는 잠시 수술 절차를 설명해 주고 수술실에는 나만 들어갔다.


 자궁에 알약을 삽입하는 유산으로 한다고 했다. 

아직 배아도 없었고 매우 초기라 콜롬비아에서는 이런 경우, 보통 약을 자궁에 삽입하는 식으로 유산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자궁에 알약을 삽입 한 5분은 걸렸나...? 그렇게 너무 빨라서 허무했던 유산 시술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토닥토닥>


#멍 때린 부부

진통에 대비할 약 등을 사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약 삽입 후 몇 시간이 지나고 피가 나오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집에 오자마자 침대로 가서 푹 쉬기 시작했다. 

3~6시간 후부터 피가 보이며 진통이 시작되는데 다른 증상으로는 열이 나거나, 설사가 있거나 등이 있지만 나는 피가 나오면서 진통만 있었다. 진통은 생리통보다도 심하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주 잠깐 한 10분 정도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프고 하더니 생리통 정도 아니 그보다 덜한 진통을 느꼈다. 

입맛은 없고 잠이 쏟아져 밤 8시, 9시에 바로 잠이 들었다. 

분명 의사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건만 집에 막상 돌아오니 나는 물론 남편도 지침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바보인가....

나는 넋이 나갔었지만 마지막까지 침착하던 남편도 사실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지침서를 따로 받은 것이 있어서 지침서를 읽어보며 편안히 침대에서 뒹굴~

즐거운 영화를 보면서 잠이 들었다. 


<그냥 알약,  썼던 약과는 관련이 없는 약임, 이미지 출처 : 인터넷 >

#자궁으로 알약 삽입식 유산이란...

알약을 자궁에 삽입하여 임산을 종결하는 유산, 이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을 해 찾기가 쉽지가 않았어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시술 당시는 알 3~4개 정도를 자궁으로 직접 삽입하는 것이 끝, 

3~6시간 후부터 출혈이 시작된다. 이후 24시간 이내에 좀 커다란 핏덩이와 임산 불순물이 배출된다. 

24시간이 지나서도 소식이 없다면 의사에 문의하거나 병원에 가야 한다. 

이후 하루 이틀 정도는 꽤 많은 양의 출혈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하루 정도 하고 출혈양이 줄었다. 

그리고  5일 정도 더 출혈이 있어서 총 7일 정도 생리하는 것처럼 출혈을 하기도 한다. 

더 빨리 출혈이 멈추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3,4일 만에 멈췄어도 불순물이 배출되는 것이 가장 중용한 부분이기에 부산물만 배출되었다면 응급실 갈 정도로 시급한 진료가 필요한 것은 고 한다.  

나의 경우는 어떤 날은 출혈이 있었다 없었다 왔다 갔다 했는데 그렇게 총 5일 정도 출혈을 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초음파를 통해 유산 부산물이 잘 빠져나갔는지 확인한다. 


< 초음파 했던 메디컬 센터 >

#7일 후 초음파 검사 

떨리는 마음으로 초음파 검사를 갔다. 이번에는 집에서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가게 됐다.

이 예약 과정에서 조금 애를 먹었는데, 인터넷, 전화 다 시스템 에러가 나서 ㅠㅜ (전화는 자동 응답 시스템이다) 초음파 예약하나 하는데 고생을 좀 했다. (정말, 다시 한번 콜롬비아에서 공보험은 무조건 비추이다.) 

임신이 종결되는 바람에 사보험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냥 공보험에서 만난 주치의로 마무리를 짓는 게 편할 것 같아 마지막까지 공보험 서비스를 이용했다. 

어쨌든 주치의가 직접 진료서를 인터넷으로 작성해줘서 전화상 간단 진료를 마치고 초음파를 하러 갔다. 

메디컬 센터는 좀 작긴 했지만 남편을 막지도 않았고 사람도 1,2 사람밖에 없어 처음으로 예약시간에 딱 맞게 초음파를 마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초음파 자체가 길어지긴 했는데 나이가 지긋한 남선생님은 꼼꼼하게 자궁을 살피는 것 같았다. 

침대에서 내려오자 의사 선생님은 깨끗하게 다 배출되었다며 어서 회복해서 또 이쁜 아기를 가지라고 다독여주었다. 


<달달 구리 기다려라~>

#드디어 마음의 평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진정한 마음의 정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서야 입맛이 돌기 시작, 점심을 먹었건만 배가 고팠다. 얼마 전 한국에서 돌아온 나의 어린 친구는 군것질거리까지 가져다주어서 거의 두 달 만에 단 것을 먹었다. 짧았던 임신 기간이었지만 과자류는 일절 먹지 않았었고 유산 후도 단 것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여 먹지 않았는데  공식상 임신 종결이 끝났으니 갑자기 그런 달달 구리 한 것들이 마구 당겼다. 배불리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보고타 교외 여행지들도 검색해 보며 오랜만에 발 뻗고 편히 잠이 들었다. 


< 놀러 갈 테다!>

#유산 후 아픈 마음 달래기 임신 전 버킷 리스트 작성! 

나의 경우는 너무 초기였어서 감히 이런 내용을 쓰기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경우는 임신을 다시 계획할 수 있는 아프지만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임신 전부터 식단 관리도 하고 비타민과 엽산 등도 먹어서 좀 더 튼튼한 몸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임신 때문에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기로 했다. 

술, 커피, 달달 구리, 연어회...

물론 많이는 아니겠지만 ㅎㅎ 다시 먹게 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가질 수 있는 남편과의 때로는 럭셔리한 때로는 힘든 여행까지... 아이가 있으면 하지 못할 것들에 대한 버킷 리스트도 적어 보았다. ㅎㅎ


그리고 지금 당분간은 2주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넷플릭스만 줄곧 보고 그림도 그리고 쓸데없는 유튜브 영상들도 보고 책도 보고 하며... 다시는 없을 이런 꿀 같은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유산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아기를 잃은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정말 운명과도 같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운명은 노력으로도 개척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임신과 출산은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것은 아기와 부모의 극적인 운명의 만남이 아닐까? 

엄마, 아빠만의 운명이 아니라 아기의 운명도 더해지는 것이 바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유산을 엄마가 부끄럽게 여기고 죄책감을 갖는 것이야 말로

 다시 내게 운명처럼 올 예쁜 아기에게 예의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일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그 과정에서 배웠고 깨달은 것들도 있다. 

무엇보다  생명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진심으로 알게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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