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생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빠저서는 안되는 건축자재들이 있다. 벽지 뒤편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는 '석고보드'라는 마감재이다. 한때는 저렴하다는 이유로 특정 제조국에서 수입된 석고보드를 사용해 신문에 오르기도 했지만 규정에 맞는 제품을 사용하면 놀란 거리가 일어날 이유가 없다. 과거, 자연환경과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하고 구조적으로 지붕을 받쳐주던 벽의 마감재는 돌이나 흙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 피부에 닿는 벽의 대용물이 모래와 시멘트를 섞은 재료(콘크리트)로 바뀌면서 쾌적한 환경을 위한 내부 마감용 재료가 필요해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종이 사이에 석고를 굳혀 만든 석고벽판이다.
고대로부터 석고는 향료 또는 오일, 연고 등을 넣는 항아리 등으로 사용...
오래전 부터 석고는 채색을 위한 바탕재였다. 이집트인들처럼 나무관에 석고를 입혀 채색을 하거나 피라미드 건축시 돌 사이를 이어주는 메꿈재로도 사용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포도주잔이 천연석고를 활용해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에서 그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석고는 넓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세를 지나 근대로 접어드는 시기 영국의 중심가에서 커다란 불이 일어나 많은 재산과 사상자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1966년, 런던 대화재 - 13,200채의 가옥이 소실되고 도시 인구 8만 명 중 7만 명이 피해를 본 화재) 이에 놀란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석고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어 오래된 목조건물의 벽을 석고로 미장하도록 하는 등, 화재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려 노력했다. 그 정도가 심했는지 이때 생겨난 단어가 Plaster of Paris(깁스붕대) 이다.
BC 7000전 터키 / BC 3000년전 네페를티티의 흉상 (이집트) / 런던 화재 이후 석고로 미장
오랜 시간 석고를 사용해오던 방식은 석고를 물에 개어 벽에 얇게 펴 바르 방법(습식공법)이었다. 석고보드가 지금과 같이 공장에서 하나의 완제픔으로 만들어져(건식공법)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조금 넘는다. 1918년 미국은 1차 대전에 참가하면서 군용주택을 지어 병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화재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 하면서 불에 강한 내부 마감재를 얻고자 했다. 석고보드는 그 선택에 충실했고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군에서 선호하는 건축자재가 되었다.
제2차 대전 이후, 삶에 대한 희망은 베이붐과 주택 붐을 만들게 되지만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로 대체할 만한 건축자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런 면에서 석고보드는 완성된 상품으로 운반과 숙련공이 필요 없는 시공성, 불에 잘 견디는 내화성, 소수 인력만으로도 공정을 마무할 수 있게 되면서 이 시기 매우 유용한 내부 마감재로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