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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Mar 24. 2024

74.근데, 인생을 꼭 즐겨야 할까?

<내 인생엔 즐거움은 없다. 만족만 있을 뿐.>


솔직히 사는 게 힘들고 피곤하기만 하다.

어차피 재미없게 사는 인생, 그저 성실한 생활에 집중하고 있다. 루틴대로 짜여진 일상에 해야 할 과제를 빼곡히 채워 넣는다. 

사람들이 그렇게 바쁘고 꽉 막혀 사는 게 무슨 낙이냐고 물을 때 "혼자 노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려도, 혼자 놀아도 사실 둘 다 재미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혼자 노는 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재미있어서라기보다 평화로움을 바라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재미보다 평온함이다.


빼곡한 일상의 과업들은 인생에 어떤 변수가 생겨도 잘 대응하여 해결할 수 있는 내공을 채워 넣는 시간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딱히 즐겁지 않으니 그다지 만남을 가지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피곤하다.

게다가 혼자 해야 할 인생의 숙제와 공부들이 많으니 따로 친분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여유도 없다. 

즐거움을 찾기보다 그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며 살 뿐.


사람들이 하도 "즐겨~"라고 하길래, 나도 좀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심만으로는 도무지 인생이 재밌게 즐겨지지 않는다. 

즐기기 위해 선택한 일들조차 나에게 숙제가 되곤 했다.

내가 손대는 모든 것은 나에게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준다. 즐기려고 시작한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잘 흘러가는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참 피곤하다.


매사에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며 나를 위로한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란 말을 한 사람들은 대체로 피하는 선택을 해버리고 즐거울 수 있다.(특히 회사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그들이 피해버린 그 일은 누가 하느냐? 

나는 피하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주변에서 힘들다고 행복을 찾아 갖다 버린 일까지 떠맡아 잘 보수해 가며 문제없이 만들어내느라 더없이 분노에 차 있다. 내 몸을 갈아 넣어 어떤 일을 잘 만들어가기 위해 몹시도 괴롭다.

그리고 늘 문제없이 꽤 잘 해내왔다.

행복도, 즐거움도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는데, 잘 해내느라 에너지를 다 쓴 나머지 즐길 에너지를 할당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꼭 어떤 일이든 즐겨야 할까?


내 생각에는 즐기기만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괴로워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이런 정신적인 부담이 있기에 늘 모든 것을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 해냈다. 


나에게 새로움은 설레는 것이 아니라 늘 두려운 일이었다. 

이것이 무엇을 못 즐기는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

내 손에 들어온 일들은 모두 빈틈없고 실패 없이 잘 이뤄내기 위해 별 것 아닌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했다.

즐김을 모조리 생략하고 본질에 집중해서 노력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피곤한 인생이지만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에 큰 장점인 '시험에 최적화된 인간'이다. 


결과중심 주의는 살아오며 꽤 좋은 점이 많다. 타인은 나의 능력, 스펙, 결과처럼 겉으로 가진 것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과정이 즐거웠건, 행복하건 아무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생활에서 과정적인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것은 일상을 충만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별달리 남는 게 없다. 

감정에 치우치면서 동시에 가시적인 결과가 수반되기는 어렵다. 

어떤 것을 잘 해내려면 감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실행에만 집중해야 한다.(오죽하면 최근 한 조사에서 MBTI F형 인간 중에 수능만점자는 없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MBTI 분석의 근래 기준이겠지만 T형 인간은 성과를 내기 참 좋다.)


내 일상이야 별다른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아 차갑고 무미건조하다. 일상에서 굳이? 왜? 싶은 대부분의 것들에 감정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있다.

그저 감정 쏙 빼고 할 일에 집중하는데, 이게 세월이 지나면 비교적 만족스럽다.

즐거운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때로는 즐기기만 했던 시간들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빼곡하게 채워진 일상의 노력이 쌓이면 어떤 결과가 남는다. 고군분투했던 괴로움은 노력했던 대견함으로 미화된다. 이것은 세월의 흐름을 타고 만족이라는 감정으로 남는다. 


인간이 한 단계 발전하고 성장하는 방법은 인생에서 주어진 과제를 잘 풀기 위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시간들이다. 미션을 순서대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도무지 즐거울 겨를이 없다.

나태함이나 나약함을 허용하지 않은 채 문제를 잘 해결하는 과정은 고도의 집중과 통제의 시간이다.

즐거움의 경지는 여유로운 순간이 아니라 결과의 만족스러움에서 얻게 된다.


여유 있는 대응이 즐기는 것이고, 노력은 괴로움이라고 이분화한다면 내게는 즐거움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다.

그러나 즐기거나 놀기만 한 것에 열매는 없지만 노력의 고통에는 성취가 있다.

결과론적 기준에서 즐김을 재해석해보자면, 즐거움이 몸으로 여유 있게 즐기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성취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모든 순간을 그렇게 비장하게 살 필요가 있냐고 하겠지만, 안 비장하기 조차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흐지부지 얼렁뚱땅 실수를 연발하며 일하는 동료를 눈질끈 감고 못 본 척해야 하고, 대충대충 엉망으로 흘러가는 일을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보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이것을 참아내는 것이 공짜가 아니라 인내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드는 에너지, 인내하느라 마음에 쓰지 않고, 몸소 해결하고 바로 잡는 것에 쓰는 게 낫다.

어차피 사는 것이 피로한데 그냥 하던 대로 안 즐겁게 최선을 다해볼까?


이런 성격을 타고난 사람은 그냥 생의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왜 매사 즐기지 못하는 진지하고 고독한 삶을 살까 생각하며 아쉬워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을 만족시키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사실 내 개인적 기준일뿐 그다지 높은 기준도 아님.)

나를 채찍질하고,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며,

감정을 절제하고,

모든 에너지를 아껴,

도망치고 싶을 때 버티고 해낼 수 있도록 외부 자극을 제한한다.


굳이 피곤하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남과 경쟁하지 않으며 남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의 싸움을 해야 하니 상당히 피곤하고 외로운 삶일 수 있다.


가볍게 살자고 결심해서 가볍고 별 볼 일 없이 내손에 쥔 일들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 또한 기쁨은 아닐 것이다.

'나 이번에 여유롭게 즐겼고, 압박 없이 할 일 미뤄서 기분 최고~.'가 아니라 내 미션이 망했네? 생각이 될 때... 기분은 더 망하고 있다.


그냥 매사 즐기지 못하지만, 결연한 각오로 모듯 것을 빈틈없이 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달려드는 것이 나다운 모습이다.

비장하게 살다 보니 모든 것이 진지하고 본격모드라 늘 긴장 속에 있게 되기 때문에 사는 게 하나도 재미가 없을 수 있다. 피곤해서 늘 혼자 쉬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러나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일까지 내 기준에서 흐트러짐 없이 잘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평온하기는 하다.


즐기자는 마음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태생적으로 느긋하게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다.

어차피 내 성격에 즐기며 살기는 힘들고, 완벽하게 정돈되어 유지되는 일상의 평온함을 선택해 버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다. 




심심해서 내 사주에 대한 서치를 많이 해보고 있다.(사주 공부라고 하기엔 본격 각 잡고 하는 거라, 공부보다는 서치 정도로 칭하고 싶다.)

나는 뱀의 날(을사일주)에 태어났기 때문에 늘 바쁘고 일에 치여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주의 불가항력인 힘이다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래도 무능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으니까. 모든 것을 내 기준 안에서 다 바르게 세팅해놓고 싶다.


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로운 투자다

그러다 보니 내 인생에 즐거움은 없다. 만족만 있을 뿐. 

내게 있는 것. 성취, 마무리, 만족, 나에 대한 확신.


즐거움? 관뚜껑 닫고나서부터 즐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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