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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06. 2024

6.모델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내 본질적인 모습을 찾고 있는 중>



직장생활은 도무지 아름다울 수도, 사람들을 사랑할 수도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일을 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는 순간은 언제나 칼날처럼 아프게만 다가왔다.

그래서 난 늘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고, 회사의 수많은 소식이나 소문을 안 보고 안 들었다.(그러려고 노력했다.)

사석에서의 만남을 자제했고 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사람은 필히 가까워지면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소문조차 날 슬프게 했다. 나에 대한 가십들이 자연스럽게 증발되기를 웅크린 채 견디고 기다렸었다.

나는 늘 사람들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나를 지켜보려고 애써왔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인간사이의 가까운 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하도록 예고되어 있다.


직장에서 회식 자리에 가는 것 또한 삶의 절망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다.

진실로 인간에 대한 신뢰의 마지막 희망까지 부숴버린다. 

주변과 거리를 좁히고 타인을 알아가는 것에는 많은 상처가 따른다. 그렇기에 나는 타인과 세상의 궁금증은 차단하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선택해 왔다. 남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며 미리 상처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회식자리 토크란, 평소 내가 안 궁금해왔던 주제다. 타인에 대한 험담, 정치질에 대한 비난, 암담한 미래와 정년에 대한 우울,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 그 외 평소 내가 몰랐던 수많은 가십과 소식들.

이 과부하 된 정보들은 인간에게 진절머리 느끼기 딱 좋다.

직장생활, 사람이 싫어진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괴로워한다. 

타인의 무책임과 무능을 동반한 일들을 수습하느라 일이 버겁다. 웃을 일이 전혀 없다. 웃긴커녕 화내거나 울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 동료들을 거리두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힘든 생활을 견디느라 나 자신을 상당히 괴롭히고 미워하는 날들이 많았다.

괴로운 나를 위로하거나 돌봐주지 못했다. 더욱 채찍질하며 잘 해내도록 푸쉬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 되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대상 그 자체가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없었다. 

무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분노와 증오를 참아낸 차가운 얼굴이었다.



아이처럼 웃어 본 것이 대체 언제일까?

경계하지 않고 사람 그 자체로 좋아하고 사랑해 본 적이 대체 언제였을까?


모델 클래스에서 나는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다시 찾고 있다. 

나는 요새 사랑꾼이 되고 있다.


단순히 모델이 되고 싶다거나 되어야겠다는 결심 보다 '행복한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고, 타인을 밀어내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안전한 상황이 좋다.

직장생활 중 난 모든 사람들을 경계하고 밀어냈다. 

그러나 요즘은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활짝 웃고 관심을 주고 농담을 한다. 농담조차 나누지 않고 타인을 칼차단 하던 나였다. 

나에게 다가올 여지를 0%로 세팅해 놨었다. 사람들과 대화, 시선 맞추기를 거부하고 사무실 지박령처럼 모니터만 바라본 Ai 인간이었다.


그러나 사랑꾼이 된 요즘, 나도 모르게 평소 모습이 미소 짓기가 디폴트가 되고 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모델 포즈 연습 시간에 수없이 웃다 보면 정말 행복해진다. 웃음을 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마음이 녹은 채 같이 수업을 듣는 모델 선생님(동기 언니들)과 아이처럼 웃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델은 내 몸으로 스스로 승부해야 하는 일이다. (아직 필드에 정식으로 나가보지 않아서 아닐수도 있지만.)

회사처럼 내 일을 남에게 떠넘기고, 그걸 타인이 해결하거나 수습해야 할 일이 전혀 없다. 

내가 못한다고 남이 대신 포즈를 잡아주고 표정을 지어질 수 없는 노릇이다. 오롯이 렌즈 앞에서 혼자 해내야 한다.

모델은 그래서 가장 원초적이고 정직한 업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내 몸을 잘 다루는 것이 관건이며 남이 대신해 줄 수 없으므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고 내가 수습하면 된다. 

남과 경쟁할 일이 없다. 나를 잘 다루어 자신의 최적을 찾고, 직접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홀로 카메라 앞에 서면, 모두들 자기와의 싸움을 안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델 선생님들과는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 

촬영이란 것은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다 함께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면 서로에게도 윈윈이다. 

혼자만 잘 될 수 없다. 함께 완성해 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자신의 포즈와 표정뿐만 아니라 촬영장의 분위기를 편안하고 즐겁게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아마추어 모델에게는 현장의 분위기가 실력을 발휘하는데 상당한 영향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진실로 이렇게 남이 잘 되길 기도한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남이 잘되라 기도할 시간은 없었다. 내가 잘 되기 바빠서...(기도는 커녕, 저주하지 않으면 다행.)


사실 직장생활은 더러운 일들이 참 많다. 오죽하면 드라마 '미생'정도면 진짜 아름다운 직장생활로 미화한 거라며 혀를 찰 정도. 직장 현실은 더 드라마다!

사회에서는 본인이 모자란데 스스로 성장할 생각이 없는 게으른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기가 성장하기보다 남을 끌어내리며 올라가는 목적을 달성한다. 


다 큰 성인인데 자기 조절도 못하고,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들을 많다는 것이 놀랍다. 학교였다면 이런 사람들은 무조건 낙오자로, 수능으로 필터링 됐겠지만 회사는 다르다. 이런 사람들이 꽤 평범하고 멀쩡한 척 직장생활에서 잘 나간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여 아무리 성실하게 직장생활에 임해도 그 업적이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게으르고 인격이 이상한 사람들이 승승장구할 때마다 난 세상을 원망했다.


그런 사람들과 맞대응하려면 나도 양심을 버린 채 비윤리적이고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게으르게 성공하는 편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인격조차 괴물로 변해간다. 

내 눈에는 편법의 권모술수에 힘 쏟는 건 한심하게 보일 뿐이다. 

게으르게 얻은 텅 빈 성공은 잠깐 가지는 가짜 허상일 뿐. 게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정말 추한 괴물이 된지 전혀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오히려 그 시간에 진짜 자기 실력을 만드는 것이 언젠가 진실로 내 손에 남을 능력이라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만 집중하고 고독하기로 했다. 게다가 스스로 푸쉬하며 내실을 다지면 사람이 스스로 성찰하여 겸손하고 깊어진다. 진짜 실력과 인격만이 나의 본질 아닐까?


은퇴 후 허무해진다는 사람들, 본질을 만드는 것에 소홀했던 것이다. 회사라는 갑옷을 벗고 나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건 본인 탓이다. 특히 우리처럼 대기업 종사자들은 재직 중에 자신의 무능은 모른 채 스스로 신처럼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은근 무례하고 이상한 갑질도 많다.(본인은 모름.)

여기서 벗어나 맨 몸으로 세상에 나설 때야 말로 진짜 자기 실력이고 본질적인 모습이다.


내가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나와 경쟁하고, 나에게 집중하여, 나를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델이라는 분야는 스스로와 경쟁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아름다운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와 경쟁하기는 내 적성인데? 모델과 나는 잘 안 맞을 것 같지만, 의외로 이런 점에서 나에게 최적이었다. 

혼자 고군분투하고 나의 내면과 싸우기는 내 전문이다.


내 몸으로 정직하게 카메라 앞에서 승부해야 한다. 

렌즈 앞에서는 거짓도 사기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 몸에 새겨진 모습 그 자체로 정직하게 드러난다.

내가 한 만큼, 몸에 지닌 경험만큼 정직한 결과와 대가를 얻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정직하고 담백한 프로세스가 몹시 마음에 든다.


회사에서는 웃을 일이 없다. 웃는다고 해도 가짜 웃음이다.

그러나 모델 포징 연습을 한다는 것은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웃는(비록 연출된 모습이지만) 나를 보게 한다.

렌즈 앞에서 가짜 웃음은 티가 난다. 어색하다.

잘 웃기 위해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주로 고양이를 상상하며, 카메라 앞에서 난 진짜로 행복해서 웃는다.

내가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인지 처음 깨달았다.


자꾸 웃고 싶어서,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모델 생활 자체에 빠져들고 있다. 어쩌면 이 일들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내 본질적인 모습을 찾는 일들이 아닐까?

내가 모델이 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지금 가장 행복한 내 모습을 찾고 있는 자체로 너무나 중요한 시간들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유능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행복하고 즐겁기가 힘들었다.

언제나 '지금은 일을 잘 해내는 것에 집중'하라며 즐거움은 먼 미래로 미루고 있었다. 나는 행복하고 즐거울 방법을 모조리 까먹었다. 

일상은 차갑고 우울 베이스로 채워졌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 중에 행복한 시간은 크게 많지 않았다. 언젠가의 행복을 기약하며 즐거운 많은 일상의 순간들을 통으로 날렸다.

타인이나 나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과 감사를 느끼지 못했다. 경계의 대상이기만 했다.

그저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보람을 느끼는 그 힘'을 원동력으로 유능한 나를 만들자는 각오로 인생을 견디기에 전력을 다해왔다.


그러나 모델 클래스를 통해서 요즘 나는 행복한 시간을 상상하고 즐거운 얼굴을 찾아가는데 전력을 다 하고 있다.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사랑하게 된다.

웃는 내 모습이 좋아서 모델 포즈와 표정 연습을 하는 것이 행복해진다.

이 업계에서는 웃는 것이 장점이 된다.

회사에서는 실없이 웃으면 사람이 우습고 한심해 보여 이용당하기 딱 좋다.

하지만 모델에게는 함박웃음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숨겨왔던 미소 능력을 마구 방출하는 중이다. 

나 웃는데 재능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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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요새는 무표정과 시크한 표정 짓기가 어려울 정도다.



사람들과 모여 신세한탄을 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미래가 별로 암담하지 않단 말이야ㅜㅜ 

나에게 집중하며 매일 성실하게 나의 심신과 일상을 가꾸고 있으므로, 남들의 푸념은 자신을 방치한 죄가 아닐까라는 생각조차 든다. 

게으르게 걱정만 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 미안합니다.


진실로, 자신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돌보고 만들어 간다면 나이 먹는 것이 두렵다거나 은퇴가 걱정될 일은 없다. 그냥 집중해야 할 오늘이 있을 뿐이다.

사실 오늘 해결해야 할 일도 수백만 가지인데 미래까지 끌어와서 괴로워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오늘의 성실은 미래의 안정감으로 보답할 테니까. 미래는 내 손에 달려있다.

걱정이 된다면 제발 몸을 움직여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채워가세요. 푸념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그 한탄의 시간이 모여 세월이 지나면, 진짜 그때의 걱정이 현실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니까요?

일어나서 자신을 찾으세요~ 성실하게 채워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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