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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17. 2024

46.부끄럽고 미안해서 요가수업을 못 간다고요??

<괜찮아요. 평가받으러 가는 것도 지적받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요가 지도자과정을 졸업한 지 4년이 되었다.

나는 요가지도자가 되지 않았고,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수료 이후 거의 매일 혼자 수련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설프고 부족한 점이 많다.

이번에 용기를 내어 다시 지도자 선생님의 워크샵을 신청했다.


오랜만에 선생님 앞에서 서려니 괜히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다면, 아직도 이렇게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동안 수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게으르게 살아온 것 같은 죄책감에, 수련을 멀리해 온 방탕(?)한 생활에 대한 죄송함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든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동안의 나의 생활과 수련이 한심해지기 시작한다.


요가는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지만, 세상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눈은 이미 높아져있다.

완성에 가까운 모습을 알기 때문에 자꾸 내 모습에서 부족한 점을 찾게 된다.

그렇게 선생님 앞에 서기 전까지 우리는 심리적으로 무척 위축이 된다.

‘그동안 조금 더 열심히 수련할걸.‘ 과거 수련의 시간들을 후회를 한다.

'그냥 가지 말까?' 나의 현재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수업을 듣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왜일까?

우리는 선생님께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선생님보다 잘할 수 있을까? 수련을 대하는 세월의 깊이가 다른데.

아마 선생님은 밥만 먹고 24시간 요가만 생각할 것이다. 꿈에서도 요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에겐 요가가 본업(?)이다.

왜냐하면 나도 밥만 먹고 24시간 내내 디자인만 생각하고 꿈에서도 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생계를 책임지는 생업이 있다. 보통의 사회인에게 요가는 아주 짧은 찰나의 하루 루틴일 뿐이다.


이 정도 짧은 투자로 남에겐커녕 스스로에게도 실력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요가에서 실력 인정이라는 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있는 욕구이므로 배제하기 힘든 감정이다.


우리는 요가 수업(워크샵)을 왜 들을까?


다양한 목적이 있겠지만, 더 나아지려고 워크샵을 간다. 스스로 점검하고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수업을 듣는 것이다.

물론 소문으로 듣던 000 선생의 실물을 영접해 보자는 마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참여하게 된다.

‘나 이만큼 성장했어요. 이렇게 잘해요.’라고 자랑하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단체 수련시간이니 나만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수업을 왜 받는지 그 목적에 집중해 보면 된다.

수업은 시험이 아니다. 내가 어떤 것을 증명해 낼 필요가 없다. 그저 편하게 가면 된다는 뜻.

학생에게는 빈틈없이 모든 시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의무가 없다. 자기 능력껏 수업에 참여하면 그만이다. 못한다고 한들 어쩌랴~배우러 왔는걸.

수업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강사의 몫이라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할까?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를 생각하면 늘 중압감에 시달렸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 나를 보러 왔으니, 매분 매초 오디오 비지 않고 의미 있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수업이 너무 빡세도 안되고 헐렁해도 안된다.

완급조절을 못한 초반에 좀 빡세서 항의가 꽤 있었다.


수업의 부담은 강사에게 더 크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생각해 보면 몇 수업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아주 작고 개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운영하는 교수는 이 수업의 흐름을 망쳐서는 안 되는 의무가 있다. 오늘의 분위기, 수업의 난이도,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 많은 변수 속에 이 수업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한다.

학생은 오늘 컨디션이 별로라 수업을 대충 들을 수 있지만, 교수는 내 컨디션과 무관하게 이 수업은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배우는 학생일 때가 제일 행복하다. 강단에 서면 얼마나 외로운지.

수업의 압박이 커질 때는, 군중 속 익명으로 앉아 있는 학생 무리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다시 요가 수업을 듣는 학생의 이야기로 돌아와,

수업의 존재 이유는 내게 필요한 어떤 지식을 채우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앞으로 더 나은 요가인이 되기 위해서다.

혼자서만 수련을 하다 보면 잘못된 버릇이 생길 수도 있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벽에 봉착할 때가 있다. 꼭 선생에게 배운다기 보다 수업을 통해 스스로 길을 찾기도 한다.


수련을 아주 천재적(?)으로 해내어 요가디피카(요가 교과서)만큼 완벽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배움이 필요하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분야들에 있어, 지식의 완성에는 종착지가 없다.

선생도 늘 공부하고, 지식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만약 이미 완성형이라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는 선생이라면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직 나는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의 자세는 배움을 얻고 성장하겠다는 자신만의 목표만 있으면 된다.

그 외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다. (사실 내가 눈치를 좀 잘 본다.)

현재 잘 하든 못하든 수업의 진행과 전~~~혀 상관이 없다. (사실 내가 실패를 받아들이는데 좀 취약한 인간이다.)


내 동작이 남에게나 수업에 피해를 줄리 만무하다.(하다가 못하겠다면 그냥 앉아서 남들 하는거 구경이나 하고 쉬어도 된다. 아쉬탕가를 배울때는 2시간동안 남들 하는것을 눈으로만 보고 배우는 시간도 있었다.)

솔직히 내 동작 하나가 수업에 무슨 해를 끼치겠는가? 그저 자신의 두려움일 뿐이다.

오히려 하면 안 되는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도 있고 스스로 그걸 깨닫게되어 고치면 일거양득.


물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거나 속상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현재를 이렇게라도 직시할 기회가 없으면 앞으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한다.

영어학원에만 등록하려고 해도 레벨 테스트를 하며 현재 실력을 낱낱이 까발려야 한다. 자존심 팍 구긴다.

그러나 내 현재를 알아야 앞으로 갈 수 있는 출발선을 얻게 된다.

우리는 잘할 때가 아니라, 부족한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다시 한번 삶의 방향성을 그리게 된다.



내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우수성이나 재능이 아니었다.

학생의 현재가 완성형이길 기대한 적도 없다.

내 수업을 통해서 그들이 미래를 그리는 방향성을 주는 것이 목표였다.(물론 학자금을 냈고 필수과목이라 수강을 했겠지만 그들도 그 방향성을 목표로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앞서간 사람들의 지식과 의견, 그들이 현재 서 있는 위치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찾기도 한다. 학습은 어떤 것을 완벽하게 체득하는 것 이상으로, 앞으로 무엇을 더 배워야 할지 스스로 미션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사실 매일 수련했어도 부끄럽다. 이 성실함의 결과가 아직도 이 상태라서 더 부끄럽다. 매일의 수련 때문에 오히려 자괴감에 빠지고 있다.

차라리 그동안 바빠서 수련을 못했다며 변명을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 아니겠는가?

내 수준과 한계를 용기 내어 직시할 때다. (무슨 워크샵 하나에 이렇게 비장하냐 하겠지만.)


아주 예전, 지도자 수료 전이었다. 일반인으로 000 선생의 첫 워크샵을 참가할 때는 별다른 부담감이 없었다.

과거와 비교할 내 실력의 지표가 없었고, 수준을 잘 보이게 포장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님은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날 나는 가볍게 워크샵을 갔다.


그러나 이제는 부담이 많이 간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히려 성장해 갈수록 앞으로의 과제가 잘 보이고, 지금 내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고.

진짜 초보는 부담이 없다. 이런 부담을 이해하는 우리는 초보는 아니라는 것으로 정신승리 해보자.



그래도 두렵다면, 이것이 위로가 될까?

요가 수련은 그래도 단체 수업이다. 골프레슨은 1:1로 이루어진다. 도망칠 곳이 없다.

강사님은 1시간 동안 나만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래서 매주 골프 레슨을 가기 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이 뭘 그렇게까지 괴로워하냐며 어이없는 한마디를 했다.

“못하니까 배우러 가지. 잘해봐. 골프 프로강사는 뭘 먹고사냐?”


그러나 내 마음은 이거다. 지난주에 알려준 건데, 내 몸이 아직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이렇게 더디게 성장하고 변화가 거의 없는 모습에 얼마나 좌절하시겠냐며.

사실 제일 괴로운 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도 못하는 나를 가장 한심하게 여긴 스스로가 만든 부담감이라 생각한다. 내가 날 봐도 한심한데 남도 같은 맘으로 한심하게 볼걸 생각하니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다시 내가 교수일 때로 빙의해 보니 아직 학생이 못한다고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그렇게 금방 바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수십 번 했던 얘긴데도 ?_?이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이럴 때도 그냥 더 알려줘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우리는 늘 결과를 만들어내기에 조급한 마음이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전문 분야에는 시간투자와 세월이 많이 필요하다. 괜히 프로의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골프레슨이 두려울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내가 이렇게 못하니 세상에는 초보도 있고, 아마추어도 있고, 프로도 있고. 그래서 프로의 영역은 더욱 빛나겠지. 누구나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분야라면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가 됐겠냐고.

진입장벽이 낮은 카테고리보다 챌린지가 있을수록 어떤 분야든 매력이 배가된다.


매번 레슨이 시작되기 전에 강사님이 같은 질문 하신다. 별뜻 없겠지만 나는 너무 고민이 된다.

“연습 좀 열심히 하셨나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잘 못 친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한다.

“네, 열심히(는) 연습했습니다. 못 쳐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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